선거는 괴벨스를 원한다

2023.08.29 20:30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의 80%가 반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깔아뭉개면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 위원장은 “MB정권 괴벨스”라고 불리기까지 한 인물이다.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 시절 언론장악을 통한 유대인 척결 선동으로 악명이 높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 위원장이 “가짜뉴스 척결과 언론 공정화의 적임자”라는 옹호와 “내년 총선을 위한 언론장악 노림수”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옹호와 비판 중 비판이 논리적으로 더 견고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우선 경제학 특유의 ‘우울한’ 연구 결과에 근거하면 선거는 괴벨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치시대 라디오에 대한 실증연구를 보면 미디어는 선거에서의 영향력이 제법 크다. 괴벨스가 주도한 반유대인 선동은 나치의 득표율을 높였다. 또 나치체제가 들어선 이후 지속적인 선동은 원래 반유대인 정서가 강했던 지역의 반유대인 정서를 더욱 강화시켰으나 그렇지 않았던 곳에서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정권의 지지층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울한 것은 이게 단지 1930년대에 벌어진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선 조작 가짜뉴스로 유명한 미국 폭스뉴스는 조지 부시와 앨 고어의 재검표 소동이 벌어졌던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 공화당의 지지층을 응집시키는 쪽으로 말이다.

이런 고도의 정치논리는 제쳐두고라도 이 위원장이 내세우는 “가짜뉴스 척결과 언론 공정화”라는 명분은 그럴듯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위원장 스스로 언급한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의 난센스다.

언론의 편향(bias)은 대부분 정치적 편향과 연관되는데 사설·칼럼 등 논조의 편향, 특정 정치집단에 유리 또는 불리한 기사의 숫자, 사실의 악의적 왜곡 등이다. 논조와 기사 등에 기초한 여러 실증 연구들은 미국 언론에 편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편향, 워싱턴타임스는 공화당 편향이다.

그럼 한국 언론은 어떤가? 당연히 편향이 존재한다. 이 위원장의 모순은 여기에 있다. 그의 “공산당 기관지” 발언은 화살이 진보 언론을 향해 있음을 보여주는 데 반해 보수 언론은 중립적·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가짜뉴스의 정점인 ‘사실의 왜곡’에 대한 태도이다. 기존 진보 언론도 사실의 왜곡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속보-이준석, 조국 딸 조민 11월 결혼!! 난리 났네요’라는 제목의 한 유튜브 영상은 “조민이 정치인 이준석의 아기 임신 8개월 차”라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유튜브 세상에서는 악의적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데 윤석열 정권은 오히려 보수 유튜버를 요직에 기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은 언론의 편향이 왜 생기는가에 대한 관점이 없다. 여러 경제학 연구들은 두 가지를 주목한다. 하나는 수요 측면, 즉 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언론이 ‘영합(pandering)’하기 때문에 편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주요 독자가 보수면 보수 편향, 진보면 진보 편향인데 이는 돈을 벌어야 하는 언론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독자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논조와 기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에선 독자 대신 광고를 주목해왔다. 언론사 매출의 대부분이 광고여서 광고주인 재벌과 재벌 총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총수 개인을 언론이 도와주는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 현안에 대한 언론의 관점이 재벌이라는 경제권력의 보수적 선호에 수렴하는 결과가 나온다.

또 하나는 공급 측면인데, 언론사의 소유구조가 언론의 편향을 만든다. 예를 들어 언론사 사주, 그리고 언론사 사주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스크의 정치적 성향이 논조와 기사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결국 언론사의 지배주주가 경제권력 또는 정치권력이라면 각각 그에 따르는 편향이 생기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즉 공영방송의 지배주주가 정부여서 친정부적이 된다고 해서 민영화하는 것이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 구축이라고 여기는 것은 단선적인 발상이다.

총선 승리가 목적인 권력은 언론 장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언론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냥 정권의 사익 추구일 뿐이다. 나치 독일 시절 언론은 민주주의 붕괴와 극우 파시즘 체제로의 전환에 일조했고, 정치적 양극화를 강화했다.

언론의 사실 왜곡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언론의 진보와 보수로의 적당한 편향, 공영과 민영 언론의 적절한 조합은 일종의 균형이다. 윤석열 정권에선 괴벨스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을 괴벨스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봤자 결국은 괴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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