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이상의 구성원이 존재해야 하므로, 우리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집단을 인식하고 그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아이들은 3세 정도만 되어도 집단을 인식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하고, 각 집단에 대한 다른 선호도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 ‘본능적인’ 집단 선호도는 자신이 속한 그룹을 최우선으로 하며 진행된다.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집단에 속하는 것에 대한 안정감을 가지게 되는 시기도 이때이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집단 선호도에 따른 불안감과 안정감이 고착화되어 극단화되는 경우, 자칫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집단에 소속되면서 주어지는 안정감은 쉽게 타 집단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이러한 ‘타 집단 전체에 대한 반감’을 ‘편견’이라 해석했으며, 이 편견이 확산되는 과정을 5단계로 분석한 바 있다.
1단계는 적대적 발언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비난부터 집단에서 발견되는 특성 등을 비꼬는 가벼운 농담까지의 모든 수위가 포함된다. 2단계는 회피다. 역시 여기에도 노골적인 인종 분리 정책부터 특정 지역에 외부인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이유로 이를 방문하기를 꺼리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 더욱 편견이 강화되면 3단계인 차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가 속한 집단 외의 다른 집단은 나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이때의 차별 역시 법적으로 권리를 차등하는 제도적 차별부터 은근한 미시적 차별까지 다양한 수위를 아우른다. 사회적 성공을 이뤄낸 여성들의 인터뷰에 흔히 따라붙는 가사와 육아의 고충을 묻는 질문 같은 것도 그렇다. 성공한 남성들에게 이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면 다음 단계인 타 집단에 대한 물리적 폭력 행사와 집단 전체에 대한 절멸의 단계까지 확장될 수 있다.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외국인에 대한 이유 없는 폭행과 공격,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인종 청소의 그림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편견의 뿌리와 범위가 그만큼 깊고 넓게 퍼져나갔다는 증거다.
범죄학 분야의 권위자이자 혐오 범죄 연구 허브인 ‘해이트랩(HateLab)’의 수장인 매슈 윌리엄스는 저서 <혐오의 과학>을 통해, 특정 집단에 맹목적인 편견을 가지는 것은 생물학적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문명화 과정을 거친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이 지점이 미묘하다. 편견과 이에 따르는 혐오는 자연스러우나, 관용적 시선으로 시작해 이해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학습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지만, 이를 위해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은 배워야 한다. 이를 배운 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도 상당한 시간 동안 내 것이 아닌 음식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식으로 본능을 누르는 것에는 정신적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편견과 혐오도 마찬가지다. 문명화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매우 큰 정신적 품이 든다는 것이다. 본능에 따르는 것은 문명의 규칙을 지키는 일에 비해 더 직관적이고 수월하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미 인류가 이룩한 사회 구조는 본능적인 집단이 아니라, 지극히 인위적이고 문명화된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신들이 구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미 고찰화된 문명화 시스템에 맞는 규칙을 배울 필요가 있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정신적 비용을 지불할 마음가짐도 함께 지녀야 한다. 편견에 편견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자체를 바꿀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때의 대응 역시도 편견의 모든 단계가 그렇듯이 개인의 일상적인 생각의 변환부터 강제성을 담보한 제도적 규제까지 다양한 수위와 범위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방식으로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비용과 품이 많이 들겠지만, 그것이 인류라는 가장 커다란 집단과 이에 속하는 구성원들 모두의 안정과 안전을 보장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