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형 집에서, 추석은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 해 됐다. 친지들도 여럿 모인다. 그 추석상엔 금칙을 정했다. 정치 얘기 않기로…. 소주 떨어져 슈퍼 갔다 오는 길, 어느 집에선 대낮부터 정치 언쟁이 붙었다. 툭 웃음이 터졌다. 하나, 두더지게임 같은 게 정치다. 술 한 순배 돌 때마다 “그런데~” 하며 튀어나오고, “그만요~” 하며 덮는 두 이름이 있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이재명이 기사회생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 하고, 검찰이 “무기징역감”이라고 호언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구속이 필요한 혐의로도 안 본 것이다. 2년 가까이 서울·수원·성남 검찰이 달려온 먼지털기 수사도 제동이 걸렸다. 대장동 사건은 이제껏 ‘428억 뇌물 약정’은 기소 못하고 배임죄 ‘고의’는 비워둔 채 막 재판이 시작됐다. 이재명의 영장 기각엔 세 뜻이 담긴다. 일방향이던 ‘검찰의 시간’이 유무죄 다투는 ‘법정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체포동의 내상이 적잖으나 방탄 굴레는 덜었으며, 제1야당 주도권을 다시 쥐었다. 1심이든 가처분이든 영장심사든 ‘정치인 이재명’은 법원의 첫 결정이 중요했다. 새옹지마 된 9월 격동에서 이재명은 판정승, 검찰은 완패했다.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저 거대한 장벽을 함께 손잡고 넘어갑시다.” 단식 회복 중인 9일, 이재명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차에 올라 ‘단합’에 힘줬다. 진보 논객들이 제언하고 평론가들이 예상한 대로다. 달리할 방도도 없다. 문제는 선거 뒤일 게다. 한숨 돌렸어도, 이재명에겐 외압·내압이 차올라 있다. 밖엔 사법리스크·체포동의안 불씨가 살아 있고, 안으론 ‘수박’(비명계 멸칭)을 척결하자는 강성 지지층이 분기(憤氣)해 있다. 그의 착점은 어디일까. 다시 쥔 화두처럼, 통합이길 권한다. 역대로, 선거는 쪼개지고 순혈을 고집한 쪽이 졌다. 혁신하고 외연 넓힌 쪽이 이겼다. 2012년 ‘혁신 비대위’로 1당 되고, 4년 뒤 ‘진박 감별’하다 진 박근혜가 그랬다. 쪼개져 이긴 건 2004년 ‘개혁·전자·전국정당’ 기치 들고 대통령 탄핵풍을 업은 열린우리당뿐이다. 이재명은 서랍 속에 넣어뒀을 혁신위 공천안을 꺼내보라. 공직윤리 위반자를 배제하고, 하위 30% 감점하고, 중진은 험지 출마하고, 기후·고령화·지역소멸 전문가를 등용하란 권고가 있었다. 경쟁력으로, 혁신·헌신·시스템 공천을 하란 것이다. 작년 8월 당대표 수락연설 일성은 “이기는 야당”이었다. 그 결자해지가 이재명과 당의 몫이 됐다.
심리적 내전은 여당도 거세다. 대통령 위세에 눌려 있을 뿐이다. 당 사무총장 경고는 던져졌다. “노를 거꾸로 젓고 구멍 내는 승객은 (총선에) 승선하지 못한다.” 그 선이 유승민일지 이준석일지 누구일지 설왕설래한다. 30%대 대통령 지지율에서 보듯, 서울·부산시장 보선-대선-지방선거를 3연승한 ‘보수·중도’ 연합은 깨졌다. 그래도 용산·검찰엔 총선 곁눈질하는 이가 즐비하단다. 여의도엔 ‘금태섭 효과’란 게 있다. 경선시켜서 정리하는 걸 통칭한다. 여든 야든 순순히 승복할 비주류는 없다. 그 내전은 강서에서 진 쪽부터 커질 게다.
해서, 묻게 된다. 왜 10월의 강서 선거판을 여권은 키운 걸까. 나라를 잘 끌고 왔다 하면 오판이고, 이재명 구속 그 후를 그렸다면 헛물켰다. 선거 앞의 정치는 몸 낮추고 착해진다. 그것도 당·정·대는 거꾸로 갔다. 대법원이 유죄 때린 보선 유책자를 대통령이 사면했고, 여당은 그를 공천했다. 자당 귀책사유로 치러지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는 형해화됐다. 그 오만이 ‘작지만 큰’ 전국선거를 불러왔다. 그 와중에, 대통령이 지핀 이념전은 ‘매크로 장난’일 듯한 포털 축구 응원클릭까지 국기문란이라 겨누고, 국민 다수가 등돌린 ‘신원식·유인촌·김행 개각’을 밀어붙이고, 검찰의 윤석열 사단 인사를 2년째 이어갔다. 다 ‘하이키’(High-Key)다. 그뿐인가. 민생 지표가 온통 바닥이다. 그 여름의 수해·잼버리 참사, 일 오염수 저자세, 홍범도·양평고속도로·해병대 수사가 가을 국감을 달군다. 여권이 진다면, 그 책임의 9할은 대통령실·여당이 져야 한다.
한강이 흘러내리는 서울 서쪽 평원, 50만 강서의 선택이 임박했다. 사전투표율은 최고(22.64%)를 찍었다. 그 쟁투에서 총선과 정치가 리셋된다. 윤석열표 국정도 변곡점을 맞는다. ‘정권 심판 대 야당 심판’, 어느 쪽일까. 이긴 쪽, 진 쪽은 무슨 말로 시작할까. 그 민심의 철퇴와 엇가는 쪽은 더 큰 소용돌이에 빠질 게다. 국회의원·서울시장 뽑는 것도 아닌데, 뜨겁다. 정치사에 남을 구청장 선거, 오늘 그 뚜껑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