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의 탄생과 농촌돌봄

<6시 내 고향>은 30년째 농촌을 주제로 하는 KBS의 대표 장수프로그램이다. 인기 코너인 ‘청년회장이 간다’는 코미디언 손헌수씨가 승용차 ‘붕붕이’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농촌 주민들을 집까지 바래다주며 현장 토크를 이어간다. 출연자는 마을에 도착해서는 농사일이나 간단한 집수리를 돕곤 한다. 이 코너에서 파생한 프로그램인 <일꾼의 탄생>이 정규프로그램으로 2년 넘게 순항 중이다. 마을의 사정을 잘 아는 이장이나 부녀회장이 시급한 상황에 놓인 주민들의 일을 먼저 하도록 주선을 하는데, 주로 초고령 독거노인, 장애인 가족과 함께 사는 노부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의 일을 출연진이 돕는 것이 프로그램의 고갱이다.

작업 내용은 몸이 아파 방치된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영농폐기물 처리와 집수리인 경우가 많다. 전등 교체를 하고, 물이 새는 싱크대의 수전을 조이고, 삭아서 구멍이 뚫린 방충망 교체나 ‘뽁뽁이’를 창문에 붙이기도 한다. 어떤 노인들은 문틀이 틀어져 몇년 내내 문이 닫히지 않은 채로 지내기도 하고 심지어 고장난 세탁기를 치우지 못해 통행에 방해가 되어도 치울 사람이 없어서 부탁을 하기도 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집수리를 자기 돈으로 해결해야지 왜 농사일도 아니고 공짜로 해달라 하느냐며 비난도 한다. 혹은 농촌에서 이웃의 전등 하나 고쳐주지 않느냐는 남의 속도 모르는 말도 가끔 나온다. 도시에서도 하지 않는 일을 농촌에서는 인심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통념일 뿐이다. 마을의 리더인 이장, 부녀회장도 팔순을 목전에 둔 노인이고 각자의 생계가 엄중하다. 게다가 뭐라도 고치려면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외진 마을까지 사람 부르는 일이 도시처럼 쉽지 않다. 자손들은 대체 무얼 하느라 늙은 부모를 보살피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부모를 보살필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이 확연히 느껴지곤 한다.

고령의 농촌 주민들의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버스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 정도는 다녔으면 좋겠고, 더 절실한 것은 버스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살던 곳과 멀리 떨어진 요양시설로 보내지지 않았으면 한다. 급하게 식용유 한 병 살 수 있는 소매점이 유지되거나 만물상 트럭이라도 정기적으로 방문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생활 서비스와 신체 돌봄에 대한 요구가 과한 것일까?

무엇보다 이런 생활과 돌봄서비스의 공백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이 먼저 겪고 있을 뿐 조만간 도시에도 닥칠 문제다. 드물게 마을에 청년이 있으면 ‘동네 일꾼’이 되거나 ‘동네 며느리’가 될 때가 있다. 여전히 대면사회이고 상황이 안타까워 이집 저집 다니며 생활을 보조하지만, 자기의 생계를 꾸리기도 벅찬데 동네의 자잘한 일을 언제까지 무상으로 메워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 공급 등을 시장에만 맡기자면 농촌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앙정부에만 의존하면 지역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은 약해진다. 이에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걸맞게 먹거리, 의료, 생활 돌봄을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에 대한 논의가 농촌에서 활발하다. 통합돌봄은 시장성이 약해도 필수재의 성격이 강하여 사회적기업이나 마을기업과 협동조합 유형의 ‘사회적경제’가 알맞다. 현 정부도 지역사회에 기반하는 사회적경제를 활용한 돌봄서비스 고도화를 100대 국정과제로 내세우더니 이제는 돌봄서비스의 시장화와 산업화, 경쟁 도입을 우선해야 한다며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철물점도 멀고 전등 하나 갈아 줄 사람도 없는 농촌에 돌봄서비스의 시장이 언제 만들어지고 산업화되겠는가. 차라리 버스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다 ‘청년회장’을 만나 ‘붕붕이’ 탈 날을 기다리는 것이 빨라 보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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