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와 총선, 그리고 연금개혁

민심은 천심이다. 오래된 말이지만 노동개혁, 연금개혁과 같은 주요 사회개혁 논의가 안개에 싸인 채 총선을 몇달 앞둔 상황에서는 이 말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부가 반드시 임기 안에 해내겠다고 천명한 연금개혁은 미래 한국사회의 질,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 개혁 향배에 따라 보통의 시민이 어떻게 일하고 은퇴 후에는 어떤 노후를 보낼 것인가가 달라진다. 나아가 이 개혁은 세대 간, 계층 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상상하는 대로의 민주주의라면 주요 정치세력은 책임 있는 개혁안을 내놓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확장되며, 수많은 토론과 의견수렴 등을 통해 정책 방안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개혁을 해내겠다고 천명한 대통령은 물론 어느 정치세력도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며칠 전 정부는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장수준을 높일 것인가 재정을 강화할 것인가, 연금개혁의 향배를 둘러싼 뉴스가 쏟아졌지만 이제는 조용하다. 역시 뉴스는 휘발성이 강하다. 연금개혁에 대한 인내심 강한 침묵은 정권 초기 ‘주 69시간 노동’안을 둘러싼 논란을 겪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거 전에 다시 그런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

연금개혁에 대한 이런 태도는 정치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공복으로서 민의를 충실히 수렴하여 이를 사회개혁에 잘 반영하겠다는 낮은 자세라면 환영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인 종합운영계획은 90페이지가 넘는데 이 중 유일하게 계획으로 밝힌 것은 ‘국회와 협업을 통해 공론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내내 국민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민의 수렴을 안 한 것이 아니다. 종합운영계획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부가 실시한 국민연금개혁 방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에 대한 선호가 전체 응답자의 38%로 가장 많다. ‘덜 내고 덜 받는 개혁’을 선호한다는 비율은 23.4%, ‘더 내고 그대로 받는 개혁’에 대한 지지는 21%이다.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에 대한 고른 접근에 대한 국민 요구가 큰 것이다. 이는 국민 대다수의 핵심 노후소득보장 수단이 국민연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각종 사회조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는 국민연금 인식 및 선호의 세대 간 차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50대는 물론 20대에서도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다는 것이다. 물론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에 대한 선호도의 연령대별 차이는 존재한다.

또한 직업집단별 인터뷰 결과는 보험료 인상 시 보험료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는 조치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 나라에서 연금보험료를 올릴 때 보험료 상향분에 대한 과감한 조세혜택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직장인들의 목소리 중 하나인 근로소득 외 금융소득 등 다양한 소득으로 연금보험료 수입원을 넓히자는 주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기반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장기적으로 GDP의 30%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민연금 재원에 대한 다른 접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 재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뉴스는 휘발되지만, 밥벌이를 하는 보통의 시민들의 삶은 이어진다. 민의를 강조하는 정부의 겸손함은 선거를 앞둔 몇달간의 것인가. 선거 후에도 이어질까? 민의는 국민연금 개혁에 어떻게 반영될까?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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