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왕으로 살고 싶나요?

손바닥에 ‘王’(왕)이란 글자를 새기면서까지 왕이 되길 원했던 그는 국민주권 국가의 왕이 되었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부정평가가 60% 수치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협 없는 제왕의 길을 고집한다. 민심을 읽는 것이 정치이고, 배반한 민심엔 하늘도 군주를 버린다고 맹자는 말한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조선의 왕도 독단의 정치를 고집하진 않았다. 왕과 신하의 적절한 대립과 갈등, 협력과 경쟁을 통해 조선은 500년 이상을 이어올 수 있었다.

화합과 다독거림이 없는 화난 얼굴. 시시때때로 어퍼컷을 날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민심을 어루만지며, 국민 대통합을 이뤄야 하는 책무는 어디 가고, 대통령 입에서 나온 “가짜뉴스” “날조” “허위선동” 등의 거친 언어가 대한민국 사회를 갈라치고, 양극화시킨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선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한마디로 희생자 가족과 슬픔에 젖은 국민의 가슴을 후벼판다. 지금까지 누구 하나 참사의 책임을 사과하는 정부 관료가 없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외치는, 눈밭 언 땅에서 벌이는 유가족의 오체투지가 눈물겹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근원물가지수와 인플레이션 품목 변화율,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고용 증가율, 주가 수익률 등을 바탕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별 순위를 매겼다. 우리나라는 그리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가 견지해 온 건전재정 기조하에서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순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어둡기만 하다.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 2017년 이후 5년간의 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이 16.2%를 기록해 세계 1위를 나타냈고, 올해 2분기 말 가계부채 비율은 101.7%를 기록했다. 중국, 일본, 미국의 60~70%대 수준과 비교하면 꽤 높은 수치다. 늘어난 부채와 고금리는 서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순댓국과 소주 한 병 기울일 여유조차 힘들고, 적금과 보험을 깨서 살아야 하는 고달픈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대통령 배우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 의혹을 받는가 하면, 고가의 명품가방 수수 논란이 있는데도, ‘법치주의’를 외치던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반법치행위 엄단’을 내뱉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이를 몰카 공작이라 에두르며,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되었다. 용산 출장소란 별칭의 여당 또한 존재감 없기는 마찬가지다.

엑스포 유치 참패 후 기업 총수를 대동한 떡볶이 먹방은 참 유치했다. 한·미·일 3국의 밀착 외교는 다변화하는 국제정세에서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친목계를 방불케 하는 정부 인사는 탕평이 무색했다. 정녕 왕이 되고자 했다면 조선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지금의 난국도 조선의 역사에선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간략히 되짚어 본다.

성종은 왕비가 내조하는 공이 없고 투기하는 마음이 강하고 덕이 없어 폐위하고 사약까지 내렸다. 광해군은 내치와 외교에 능했다. 대동법을 시행하여 집집이 부과하던 세금을 토지에 부과하여 지주의 부담은 늘리고 서민의 부담은 줄여 주었다. 명(明)과의 외교는 유지하되, 신생국 후금(後金·청)을 자극하지 않는 절묘한 실리 외교 덕분에, 조선은 후금의 침략을 피할 수 있었다. 광해군 이후 인조가 보인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의 결과는 정묘년과 병자년 두 번의 호란을 가져왔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강경파 인물을 배제하고, 두루 화합하는 탕평인사를 실시했다. 영조는 평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며 서민 군주로 남았다.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정파나 신분에 구별 없이 인재를 모아 개혁 정치를 구현했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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