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공화국’의 역설

2024.01.23 20:00 입력 2024.01.23 20:01 수정

[이진우의 거리두기] ‘위선 공화국’의 역설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너희들 사이에서는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많은 사람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아저씨>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의 대사이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날아든 이선균의 사망 소식으로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좋아했던 연기자 한 명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더해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관음증에 걸린 우리 사회의 위선이 그를 죽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혹시 ‘위선 공화국’이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을 목적에 두고 터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민낯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약 혐의 수사를 받던 한 인기 연기인이 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함의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도 분명해 보인다. 강압 수사를 진행한 적이 없고 모든 것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사해왔다는 경찰의 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은 바로 ‘공개성’ 때문이다.

혐의 사실이 확실하지 않음에도 이름과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사건 관계인을 미리 약속된 시간에 맞춰 포토라인에 세우는 공개 소환 방식은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발가벗긴다. 비공개로 소환했다가 그 장면이 폭로되면 오히려 피의자에게 손해라고 생각하여 비공개 소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경찰의 답변은 궤변에 가까운 위선이다. 겉으로는 피의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피의자의 권리와 인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선하거나 도덕적인 체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한다. 겉과 속이 다른 것도 위선이고, 자신의 실제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 행동한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위선이다. 경찰의 실제 목적은 우리 사회의 긴박한 문제로 떠오른 마약 사범을 수사하고 검거하여 해당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마약 혐의가 있는 유명한 인기 연예인을 전시하듯이 대중에 공개하는 보여주기 수사가 마약과의 전쟁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는가?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적인 대화와 유족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언장조차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샅샅이 보도하는 공영방송의 행태는 도덕적 위선의 극치이다.

과도한 도덕적 요구의 부메랑

위선의 핵심은 이미지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을 가상 또는 이미지라고 한다. 남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비난하고 결국에는 남의 인생을 난도질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위선의 전형이다. 우리는 물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그것이 도덕적이라고 확신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약속을 저버리고 거짓말도 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미지를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한다면, 결국 그에게는 다른 존재가 되는 일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일관성 없이 겉으로만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인 척 행동한다면, 그의 이미지는 종종 남을 기만한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가상이 실제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을 포착한 마키아벨리는 “대중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경우에 그들은 실재보다도 이미지에 더욱 좌우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자기 마음대로 재단함으로써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내세운 것은 위선이다.

내가 우리 사회를 ‘위선 공화국’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른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도덕하면서도 마치 도덕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해야 마치 자신이 비난할 만한 도덕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행위, 자신이 선한 것처럼 내보이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실수와 흠결에 관대할 터인데 모든 일에 각박한 태도, ‘내로남불’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모질기 짝이 없는 자기중심주의는 모두 위선이 무성하게 자랄 훌륭한 밑거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삶을 주조했던 유교의 도덕적 토대는 이미 붕괴한 지 오래인데, 우리는 여전히 유교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공인의 도덕적 행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우리가 도덕적이라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왜곡 현상은 공인이라는 개념에도 적용된다. 공인은 본래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이제 공인은 그 이미지가 널리 알려진 공개된 인물을 가리킨다. 공적인 일이란 ‘모든 사람의 삶과 관련된 활동’으로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와 성직자, 그리고 정치인이 대표적인 공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지의 강도가 공인을 결정한다. 연예나 스포츠 분야 따위에서 인지도가 높은 셀럽도 공인으로 여겨진다.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유명 인사는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인이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스포츠인이어야 한다. 배우가 연기만 잘해서는 안 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연기인이어야 한다. 그 이름과 이미지가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면 모두 도덕적이어야 한다.

도덕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야

그들은 모두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의 도그마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한다. 혹여나 어릴 적 실수가 드러나면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영영 매장될 수도 있는 까닭에 이미지 관리는 평생 이뤄져야 한다. 개인이 숨 쉴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철저하게 독단적인 도덕사회이다.

문제는 도덕성에 대한 과도한 요구가 본의 아니게 위선을 낳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추구하는 도덕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도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겉으로라도 도덕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과도한 요구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역할 사이의 괴리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높은 도덕성 기준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이며, 개인의 이미지와 겉모습이 종종 개인의 진실성을 은폐하는 문화를 조성한다. 위선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과도한 도덕성의 요구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정치적 위선에서 나타난다. 정치 영역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미지를 유지하라는 압력은 정치인의 진정한 동기와 행동을 가리는 가면을 채택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주의를 밥 먹듯이 주장하는 사람이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비민주적 태도를 보이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정치인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수직적 관계로 세우는 광경을 목도하면, 우리는 ‘정치적 위선’의 역설을 간파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 실제의 모습을 평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상의 이미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생각하고 드러내는 자기기만의 위선이 발생한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도덕적 순수성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위선을 조장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 남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간과함으로써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남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 할수록 자신이 더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위선의 역설은 진정한 도덕적 담론을 억압한다.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강렬하게 요구하면서도 무엇이 도덕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위선적인 사회는 은연중에 도덕적 기대를 달성할 수 없다는 냉소주의를 낳을 수 있다.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나만 옳고 도덕적이라는 독단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공동의 도덕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첫걸음은 아무도 몰라도 되는 사적인 일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공적인 일을 구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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