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한국과 대만의 교육문제

2024.02.14 20:30 입력 2024.02.14 20:31 수정

현대사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걸어온 두 국가의 교육 현상은 서로 비슷할까? 이 질문에 힌트를 줄 수 있는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다. 두 국가를 비교해보면 교육 문제가 결코 한 사회의 구조적 특징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은 인구와 국토 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절반도 채 되지 않지만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엄령 통치 아래 있었다. 한국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바로 그해에 대만은 38년간 이어지던 계엄령을 해제하였고, 문민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직선제를 통해 첫 번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경제적으로도 두 나라 모두 국가주도 경제개발을 통해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했으며, 이후 나란히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해가고 있다. 2022년에는 대만의 당해 1인당 GDP가 3만2756달러로 한국의 3만2410달러를 넘어섰는데, 이것은 2003년 한국이 대만을 추월한 이후 처음이다.

당면한 사회문제들도 비슷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령화와 저출산, 신도시 개발과 부동산 가치 급등,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지방소멸, 노동시장 이중화와 심화되는 사회양극화, 그리고 청년 실업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그들도 가지고 있다.

두 국가의 이러한 유사점은 교육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두 국가 모두 권위주의 해체 이후 국가주의 교육의 틀을 벗고 자율화, 분권화, 시장화의 길을 걷게 된다. 1995년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과 같은 방식의 개혁을 대만은 1994년 이후 급속히 추진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대학 팽창과 이후 통폐합 과정이다. 대만 출신 노벨상 수상자인 리위안저는 대만의 교육개혁을 선도하면서 “모든 사람이 대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대학 수는 78개에서 145개로 급증했다. 반면, 지난 10년 동안 대만의 대학 입학자 수는 16% 감소하였는데, 대학 간 통폐합 속도는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대학 입학자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 열기는 여전하다. 대만도 국립대만대학, 국립청화대, 국립교통대, 국립정치대 등 소위 대만 기업이 선호하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열기는 여전한데, 타이완 뉴스(Taiwan News)는 대학입학지정과목고시(AST)를 치르는 응시생의 27%가 n수생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대만의 사회양극화는 교육경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TSMC 등 대만 실리콘 기업들이 위치한 신주시 북쪽에는 이들 기업의 고소득 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신개발도시 주베이가 있다. 아침마다 신도시에서 구도시로 출근하는 차량 행렬은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들은 자식들에 대한 과도한 교육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며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나선다.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중국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학교를 선호하며, 좋은 학군에 보내려고 미리 근처에 집을 사 둔다. 학원에 대한 수요도 주로 신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공립학교와 달리 사립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이 인정되면서, 신흥 사립학교들이 급부상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의 자사고 혹은 특목고 등을 연상시킨다.

대학입시에서도 우리나라에 학종과 수시 전형처럼 대만에는 포트폴리오 추천 전형이 대세가 되고 있는데, 그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잘 챙겨주는 사립학교와 사교육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입시정책이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만 다시 과거의 학력고사 중심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교육에서 나타나는 민영화, 시장화의 바람을 타고 사회양극화가 교육양극화를 부추기는 양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만의 사회양극화 정도는 아직까지 한국보다 낮지만 교육을 매개한 가속화 추세는 결코 무시하기 어렵다.

요컨대, 한국과 대만의 이러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회, 경제, 교육의 양상들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우리만의 특이한 병리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발전 방향과 사회적 가치 공유방식이 만들어내는 보편적 패턴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유사한 사회경제적 양상을 공유한 국가들에서는 동일한 교육문제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교육만 뜯어고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다. 왜 대만은 그 심각성이 우리보다 덜한 것일까?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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