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에 쏙 ‘쌈’

2024.06.13 20:49 입력 2024.06.13 20:57 수정

“상추가 좋으면 씻는 재미가 있어. 아기 같아서.”

상추를 내밀던 고깃집 사장님이 혼잣말인 듯 한마디 하신다. 나온 상추를 씹다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최고였다. 어디서 이런 상추가 났어요! 하고 감탄하니 수줍게 반응하신다. “사 온 거 아녜요. 친구가 텃밭에서 키운 거예요.” 이어 덧붙이셨다. “상추가 좋으면 아기 씻기는 것 같아. 내가 애를 둘 키웠어.” 나는 기어코 ‘아기 같다’의 속뜻을 캐물었다. 잠시 갸웃하던 사장님의 말씀이 이랬다. 좋은 상추는, 정말 보드라운데, 그러면서도 적당히 버티는 힘이 있고, 한 줌 쥐는 손아귀의 맛이 있고, 내 손끝 타고 씻는 대로 깨끗해지니 그 때문에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직업이 병이다. 멋진 관능 표현을 만나며 귀가 번쩍한다. 연하고 부드럽되 씹는 맛이 있고, 달보드레하면서도 쌉싸래한 가운데 채소다운 풍미가 감도는 이 상추는 씻는 재미까지 있었구나. 동네 고깃집에서 상추를 얻어먹으며 생각했다. 한반도의 여름을 지나며, 쌈 없이 어쩔 뻔했어.

고마운 상추며 쌈을 둘러싼 기록은 뜻밖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사소절(士小節)> 같은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교양 있는 사람(士)’의 ‘일상생활 예절(小節)’을 시시콜콜 거론하고, 이것만은 지키라고 신신당부한 <사소절>에 따르면, 쌈은 이렇게 싸야 한다. “상추(苣萵)·취(馬蹄菜)·김(海苔) 따위로 쌈을 쌀 때 손바닥에 바로 놓고 싸지 말라. 단정하지 못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 신칙한다.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은 꼴 하지 말라”고. 그러니 숟가락으로 밥을 떠 동그랗게 뭉쳐, 젓가락으로 상추 등을 덮어 싸라고 했다. 이런 당부는 20세기 전반까지도 이어졌다.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이 1930년대에 펴낸 <일일활용조선요리제법> 속의 상추쌈 싸 먹는 법은 이렇다. “먹을 때에는 손에 놓고 하지 말고 젓가락으로만 먹도록 할 것이니 밥 위에 고추장을 조금 놓고 상춧잎을 젓가락으로 한 잎씩 집어서 밥 위에 놓고 젓가락으로 밥을 싸 잡아서 먹는 것이 좋으니라.” 이런 문단은 뒤집어 독해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법 교양 있다는 사람일지라도, 쌈 앞에서는 입 한껏 벌리고, 눈 부릅뜨고, 목구멍 열 만큼 열고, 볼때기 미어터지는 꼴을 사양하지 않았다는 말이겠다.

쌈을 싸는 손은 직관적으로 안다. 쌈은 체면 차릴 것 없이 먹는 음식이다. 쌈은 손에서 쌈을 이루어, 그대로 입으로 가야 한다. 밀어 넣어야 한다. 교양이고 뭐고 일단 볼때기 미어터져야 제맛이다. 오늘날의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귀양살이 한 적 있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그곳 농민의 한 끼를 이렇게 노래했다. “상춧잎에 보리밥 둥글게 싸 삼키고는( 苣葉團包麥飯呑)/ 고추장에 파뿌리 찍어 먹는다(合同椒醬與葱根).” 이렇게 한 끼 해치우고, 장기의 농민들은 밭으로, 논으로, 가자미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보니 고추장도 눈에 박힌다. 쌈에는 역시 별미장이다. 고단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쌈에다가는 고추장과 같은 귀한 별미장을 양보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름을 건넜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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