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감옥과 2025년 최저임금

최근 진보적인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적인 현상으로 고착된 불평등 심화가 상당 부분 부자들의 불로소득 증가에 따른 귀결이라는 주장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타인이 생산적 활동을 통해 창조한 가치로부터 이자, 배당, 임대료, 자본이득 등의 명목으로 ‘추출’(뽑아냄)해 취하는 소득이 불로소득이다. 그 추출의 과정에서는 대개 공급이 제한된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나 통제권이 활용되므로 불로소득은 또한 현대적 개념으로 확장된 ‘지대’에 해당한다.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적지 않은 곤궁이 그 지대의 과도함에 수반된 고비용 구조로부터 연유한다는 생각에는 일리가 있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발간한 한국 물가수준 특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식료품 가격과 주거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높게 나타난 결과도 따지고 보면 핵심 원인은 지대에 있다. 유통마진이나 집값, 땅값이 독과점 도매상이나 건물주가 누리는 지대인 탓이다. 그들이 더 많은 지대를 누린다고 농산물 생산이 늘어날 리 없고 주거의 질이 나아질 리 없다. 그들이 더 누릴수록 생산자는 원가가 오르고 노동자는 임금이 묶이고 소비자는 생계비 부담이 커질 따름이다.

지대에 눌린 한국 도시가구의 생활물가 구조에서 전통적으로 생계비 부담을 덜어준 요소는 상대적으로 낮게 매겨진 공공요금과 저렴한 서비스 물가였다. 저렴한 서비스 물가는 서비스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으로 이어진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작년 9월 발표한 2021년 국제비교 결과에 따르면 서비스업 중에서도 유통·운수·음식숙박업은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이 OECD 대비 65%에 불과해 비교대상 36개국 가운데 31위였다. 장시간 노동 탓에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더 낮다. 우리 사회가 사람의 품이 드는 서비스에 대해 가치를 인색하게 평가하는 까닭에 낮게 계산되는 것이다.

서비스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지대 부담은 또한 한국 자영업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 공개된 2022년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는 경영 애로 요인(복수응답)으로 임차료가 14%가 나왔고 이자를 포함한 부채상환은 10%가 나왔다. 과당경쟁, 상권 쇠퇴, 원재료비와 같은 시장 요인 다음으로 줄곧 지대 부담이 꼽혀온 셈이다. 한편 최저임금은 2022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경영 애로 요인으로 답하지 않았다. 2019년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82%였다.

다시 최저임금의 계절이다. 한국통계학회가 제시한 작년 비혼 단신 노동자 월 실태생계비 246만원에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2.6%만 적용해도 2024년 생계비는 252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저임금은 206만원밖에 안 된다. 그렇게 사회적 생존권을 공식적으로 부정당한 노동자들은 비유컨대 음식이 내려오는 영화 <플랫폼> 속 수직 감옥의 맨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본 축적 과정에서 유리된 ‘과잉인구’가 되어 임차료, 가맹수수료, 이자와 온갖 금융비용, 온라인플랫폼 수수료 등 지대의 추출 대상으로 내몰리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수직 감옥 속 위치는 어쩌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바로 위층일 듯하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는 최저임금 문제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지대를 탐하는 이들과 대자본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볼모로 삼아 최저임금의 제도 취지를 무력화하고 인상 폭을 최소화하느라 혈안이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자영업자한테서 불로소득을 조금이라도 더 뽑아낼 수 있고 하청 중소기업을 조금이라도 더 쥐어짤 수 있어서일까. 그러나 지대 혁파 없이 과연 한국의 서비스업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러고도 영세자영업자들이 제 노력의 정당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함께 수탈당하는 아래층 노동자들과의 연대 없이 불로소득을 제한하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현실의 수직 감옥은 영락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불로소득 자본주의인데 말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지대 향유 계급이 사회적으로 기생충 같은 존재여서 산업의 번영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경제적으로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세기가 낳은 위대한 경제학자의 그러한 인식은 오늘도 여전히 진실의 단면을 포착한다. 정부가 불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가운데 부자들의 속임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는 그 순간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앤드루 세이어 책의 경고만큼 말이다. 2025년 최저임금 투쟁이 불로소득 자본주의에 맞서는 사회 대개혁의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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