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리춘구를 아시나요

2013.11.03 21:32 입력 2013.11.03 21:47 수정
이정 | 소설가·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10여년 전 문화교류 관계로 평양에 간 김에 <도라지꽃>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북한 안내원에게 간청해 고려호텔 강당에서 일행과 함께 보았다. 1987년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 영화축전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영화다. 1990년 뉴욕에서 열린 남북영화예술제에 출품된 뒤에는 남한에도 널리 알려졌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학가에서의 이 영화 상영을 경찰력을 동원해 가로막았다. 어떤 영화길래 그럴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이 영화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북한의 교과서적인 내용과 인물의 정형화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예술적 측면에서 비교적 잘 형상화된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리춘구다. 1942년생인 그는 1977년 영화 <열관리공>을 발표한 이래 무려 2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써서 모두 영화화시켰다. <도라지꽃> <심장에 남는 사람> 등이 그 중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사한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곡은 남한 노래방에서까지 불리고 있다. 그는 수년 전까지 북한의 영화문학창작사 사장을 지냈다. 북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평이 그를 따라다녔다.

[기고]리춘구를 아시나요

그런 그가 2008년에 투옥됐다고 한다. 탈북작가들의 모임인 망명북한펜센터가 최근 국제펜에 보고한 ‘북한 투옥작가 현황’에 의하면 그가 집필한 시나리오에 대해 김정일이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하자, ‘그래도 영화문학이야 제가 지도자 동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기야 하겠습니까’라고 반발했단다. 격분한 김정일이 ‘잡아넣으라’고 했고, 직후 그는 사라졌다. 유능한 작가 한 사람이 절대권력자에 의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

망명북한펜센터의 보고서에는 10여명의 투옥작가 명단이 올라 있다. 2007년에는 정상급 소설가로 꼽히는 김진성이 투옥됐다. 김진성은 장편소설 <첫 기슭에서>로 이름을 떨쳤다. 용천역 폭발사건에 당시 철도상과 함께 연루되었다는 풍문이 나돈다고 했다. 1992년에는 4·15문학창작사 단장인 소설가 현승걸과 최학수가 투옥됐다. 최학수는 술자리에서 ‘언제면 우리도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말했는데, 현승걸이 ‘계속 이러기야 하겠나. 기다려 보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라고 대꾸했다. 이 대화가 신고되어 함경남도 요덕에 있는 15호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것이다. 뒤에 최학수는 석방되었지만, 현승걸은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상에 대해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한의 실제 모습에는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의 머릿속으로 그려낸 북한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거 남한의 독재정권이 국민들에게 북한을 악의적으로 묘사해 전파하려 했다는 의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북한에 대해 가르쳤던 것들이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실이었다. 되레 북한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보다 더 나쁜 정황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춘구 등 투옥작가들에 대한 보고에 우리 문단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 설마 그럴 리야, 생각하는 것일까. 김지하, 황석영 등 우리 작가들이 투옥되었을 때 많은 나라들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나서 우리 정부에 이 분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한국의 인권탄압을 우려했다. 북한조차 석방운동에 가세했다. 물론 북한은 투옥작가에 대한 인권 차원의 관심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한 행동이었다.

얼마전 서울에서 열린 북한 투옥작가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마리안 프레이저 국제펜 투옥작가위원장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다.

미얀마의 한 투옥시인은 국제펜의 공개 구명 캠페인 이후 그가 수감된 교도소로 수많은 편지가 답지했다. 교도소 측은 국제사회의 증대된 관심 때문에 그에 대한 처우를 개선했다. 또 투옥시인 자신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우리 문단은 북한의 투옥작가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작가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북한 투옥작가들이 잊혀진 사람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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