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떤 ‘K’ 사용법

2023.02.16 03:00 입력 2023.02.16 03:01 수정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방탄소년단(BTS)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워내며 급성장한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이수만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이는 회사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한국이라는 로컬을 기반으로 한 두 회사의 합병은 모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반대한다는 SM 경영진의 공식 입장 발표와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포스트 BTS’를 준비해야 한다는 K팝 시장 및 관계자들, 미디어 산업과 언론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에 대해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면서 영화시장의 다양성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 공룡의 탄생은 과거 SM, YG, JYP 등 초기 K팝의 독창성과 실험 정신을 확보하고 경쟁하며 진화하던 체제에서 K팝 뮤직신(music scene)의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약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비판이 생성되기도 한다. 한류로 시작되어 신한류를 거쳐 오늘날 K컬처와 K콘텐츠로 명명되는 이 초국적이며 글로컬한 문화현상의 기원과 전개, 발전 방향이 문화적 혼성성(cultural hybridity)에 기댄 문화산업의 혼종화 전략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이 설 자리는 좁아 보인다.

그 이유는 한류 현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본 초기 담론장의 지형과는 달리, 오늘날 ‘K’ 현상은 한국 정부와 기업, 언론의 이해관계가 공모하는 지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새마을운동’식의 국가주도형 문화정책 혹은 산업의 양상과는 구별되는 요소를 지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국뽕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늘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집단지성적 요소에 의해 글로벌 미디어정경(mediascape)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생성된 이 독특한 문화현상을 정부의 톱다운식 정책이나 기획, 기업 마케팅의 산물로 환원하기에 이는 이미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수용 방식을 경유한 지구적인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논문 제목처럼 ‘K’는 ‘확장하고 경합하는’ 새로운 현상(박소정, 2022)이며 그런 면에서 이전의 한류와는 또 다른 경제적,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일하는 대학에 다니는 다양한 국가의 교환학생이나 대학원에 진학한 유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개별적인 콘텐츠나 아티스트를 좋아할 뿐, ‘K’라 명명된 모든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또 드라마는 좋아해도 K팝엔 별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많고, K팝 중에서도 특정 그룹만 좋아하기도 한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등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스릴러 장르 대신, 미국의 주류 시장에 안착하는 데엔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 로맨스물을 선호하는 수용자도 다수 존재한다.

이를 두고, K푸드와 K뷰티, K패션 등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해주길 바라는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투영된 사회적 상상이다. 그럼에도 국가주의 및 경제적 이해관계와 공모한 언론은 이를 “K콘텐츠에 빠진 할리우드” “만화강국 뒤흔든 K웹툰” “K컬처, K푸드 열풍 타고… K식당, 글로벌 미식계 강자로 부상” 등의 일방향적 언술로 규정하고 재생산한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의 팬덤이 BTS의 그것과 겹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는 개별적이고 분화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것이 ‘K’ 현상의 특성이자 그런 방식으로만 문화 다양성과 범인류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사회비판적 K콘텐츠의 유사한 메시지나 장르적 클리셰의 반복, 또는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을 위한 클러스터(cluster)화 작업보다 더 효과적으로 ‘K’를 경합하는 가운데 확장시키며 지속 가능하게 할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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