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촹신(創新) 바람’

2007.05.27 17:54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단골 슈퍼마켓이 있다. 시장에서 흥정하기 귀찮아 자주 찾는 이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다. 1·2층을 잇는 복도에 라면이나 생수를 늘어놓았다가 다시 쌀과 밀가루 포대를 놓는 식이다. 눈에 익었다하면 점포내 레이아웃과 제품 배치를 바꾸고 있었다.

비단 슈퍼마켓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요즘 ‘창신(創新·중국어 발음으로는 ‘촹신’) 바람’이 불고 있다. 창신은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전인 현대 한어(漢語·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오래된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하면 ‘이노베이션’, 우리말로 옮기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수 이정현의 노래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가 나타내는 것처럼 중국은 혁신과 변화의 물결이 모든 분야를 강타하고 있다. 중국 토종 브랜드의 대표주자인 체리(奇瑞·중국어 발음으로는 ‘치루이’)자동차의 진이보 판매담당 부사장은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를 하더라도 바꿔야 한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 후발 주자로 다국적 기업에 도전장을 던진 이 기업으로서는 ‘변화만이 살길’이라는 교훈을 절감하고 있었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중부지방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에서 열린 ‘국제 휘상(徽商)대회’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휘상은 명나라와 청나라 중국 상업계를 지배했던 휘주 지방(지금의 안후이성 황산) 출신의 상인들을 일컫는다. 대회 개막식에서도 변화를 실감했다. 18일 오전 9시8분부터 28분까지 20분 동안 진행된 행사는 간소화 그 자체였다.

행사 내내 참석자들은 물론 귀빈들도 의자없이 서 있었다. 구슈롄(顧秀蓮) 전인대 부위원장과 저우톄눙(周鐵農) 정협 부주석이 국가 지도자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구 부위원장이 간단한 개막 선포를 했을 뿐이다.

중국에서 행사를 하면 ‘의식(儀式)에 얽매여 연설을 잔뜩 길게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지방 현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이 바뀌고 있었다. 일찌감치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여파로 개혁개방이 지지부진하던 1992년 1월, 남부 경제특구를 돌아보는 도중 “회의를 줄여라. 말을 적게 하고, 일을 많이 하라”는 지시를 한 바 있었다.

중국이 혁신에 몰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의욕이나 희망에 불타오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고대 중국 사상가 장자(莊子)는 무한한 사물의 변화 가능성을 일깨우기 위해 ‘겨우 한 자 되는 채찍도 매일 그 반씩을 잘라 나가면 만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갈파한 바 있다. 중국의 저력은 각 도시마다 높이 서 있는 타워 크레인의 건설 현장만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이든 바꿔보려는 ‘창신’의 노력이다.

<홍인표 특파원/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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