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자실이 후진적?

2007.06.03 18:04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최근 한국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이렇게 말했다. 정보공개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최일선 기능을 축소화하는 것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는 얘기였다.

일본 종합지의 한 중견 기자는 노무현 정권의 언론 대응을 “독재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무런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이 때문에 오히려 사태의 뒷편에 감춰진 정치적 의도를 더 궁금해했다.

한국의 기자실 문제가 일본에서도 화제다. 특히 국정홍보처가 해외 사례를 들며 ‘일본은 후진적’이라고 꼬집으면서 관심은 더욱 크다.

그러나 일본 언론인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각국마다 특색이 있는 언론 환경을 선진이니, 후진이니 하는 이분법적 잣대로 구분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기자실의 역사는 100년을 넘는다. 1890년 의회 출입기자들이 만든 것이 시초다. 일본 팽창기때는 ‘대본영(大本營)의 나팔수’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전후(戰後) 사정은 다르다. 일본 언론은 과거 교훈을 바탕으로 요즘도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 설정을 수시로 점검한다.

물론 일본 사회에도 기자실 논쟁은 존재한다. 폐지론자들은 기자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관언 유착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또 폐지가 당국 발표 기사를 줄이고, 탐사보도 기회를 늘림으로써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탐사보도는 기자들의 보도자세와 행동 양식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기자실과는 무관하다는 점 때문에 호응은 없는 상태다.

일본 기자들은 오히려 기자실이 공권력이 보유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공간이며, 이들 정보가 탐사보도의 원천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기자실이 없어질 경우 사이비 기자들이 판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프레스룸 형태로 운영되는 미국에서는 보수계 뉴스사이트 기자가 가명으로 백악관을 출입하고, 불법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오히려 기자실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 신문협회는 지난해 3월 공기관의 기자실 설치를 ‘책무’로 규정했다. 국민의 알 권리 대응에는 보도기관·공공기관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상시 이용 가능한 기자실의 존재가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고, 숨겨진 정보를 발굴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법원 판단도 있다. 1992년 교토(京都)지법은 교도부의 기자실 설치와 관련한 소송에서 ‘기자실 설치는 공용에 해당하며, 행정재산의 목적내 사용’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도 1958년 대장성(현 재무성) 통달로 기자실을 ‘국가의 업무 수행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시설’로 못박았다.

배타적, 특권의식이라는 사회의 비판에는 언론계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정노력을 통해 개선중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일본 신문협회는 기자실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현대는 정보범람 시대다. 행정부나 공기관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의적인 정보를 발신하고 있다. 보도 윤리를 근거로, 취재가 뒷받침된 정확한 정보가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기자실은 공권력에 정보공개를 압박하는 전위조직이다”

〈박용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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