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이후

2009.07.10 23:59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어제 김해 봉화산 정토원에서 열렸다. 고인의 유골은 사저 인근 야산에 안장됐다. 추모 동영상 모음집과 참여정부 5년 등 두 종류 8장의 DVD가 함께 묻혔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언에 따라 가로 2m, 세로 2.5m, 높이 40㎝의 비석이 세워졌다.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새겼다. 아무리 좋은 문장을 쓰더라도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되돌아보건대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 이후 49일은 ‘바보 노무현’의 부활이라 할 만한 사회 현상을 낳았다. 국민장 기간 중 500만여명의 조문객 행렬을 넘어 사회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역주행하는 민주주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민생, 파국에 직면한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염원이었다. 실종된 시대 정신과 가치에 대한 회한이었다. 다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기 위한 외침이었다. 고인은 ‘소외된 자와 서민들의 친구’로 거듭났다.

그러나 정작 변한 것은 없다. 민주주의의 퇴행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서울광장은 다시 닫혔고, 덕수궁앞 시민분향소는 우익 단체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현 정권은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 1만7000여명을 모두 징계하겠다고 덤비고, 인권 후퇴에 경종을 울린 국가인권위원장은 사실상 쫓겨났다. 생존권 투쟁을 하다 희생된 용산참사의 6인은 170일이 지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 정권은 아직껏 유감이나 사과 한 마디 없다. 한 원로 지식인은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섰다”고 개탄하기까지 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분출된 국정쇄신 촉구에 대한 답이라는 게 ‘서민 대통령’으로 포장한 공안정치의 강화다. 부자감세로 바닥난 재정을 채우기 위해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방안이 모색 중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신분 고착화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재벌과 친여 언론에 방송을 떠안기는 미디어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불통(不通), 불치(不治)의 시대다. 민주주의의 노래를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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