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이 ‘논두렁 시계’ 언론보도 조작했다니

2015.02.25 21:16 입력 2015.02.25 21:23 수정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경향신문 취재진과 만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불거진 이른바 ‘논두렁 시계’ 진술은 국가정보원이 조작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명품시계를 “바깥에 버렸다더라”고 진술했지만 “논두렁에 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바꿔 언론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고, 그를 막다른 길로 내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국정원은 일단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사 최고책임자의 고백이란 점에서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 내용을 조작, 언론에 제공해 여론을 호도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검찰은 당장 의혹의 실체적 규명을 위한 수사에 착수하기 바란다. 국회도 진상 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국정원의 당시 행태가 “공작 수준에 가까웠다”고도 했다. 국정원이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정치 공작 차원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했다는 얘기다. 직원 몇몇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 성격이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직원이 수사팀을 찾아와 “‘시계 부분은 보도되도록 하자’고 제안해 거부했는데, 이후 ‘논두렁 시계’ 보도가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국정원의 최고책임자는 원세훈 전 원장이다. 원 전 원장은 이미 댓글달기를 통한 대선 여론 조작을 꾀한 혐의로 공직선거법상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에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도대체 국정원의 탈선이 어디까지 진행된 건지 모를 일이다. ‘원세훈 국정원’은 현직 대통령의 대선은 물론 전직 대통령 수사에도 개입함으로써 또다시 정보기관의 정치중립 의무를 저버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게 됐다. 원 전 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상과 정권 차원의 개입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국정원은 내부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 수사나 국회 조사와는 별개로 조직의 명운을 건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이 전 중수부장과 당시 검찰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시 ‘노무현 수사’는 진행 상황이 연일 공개되면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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