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블라터 사퇴, FIFA 개혁의 시발점 돼야

2015.06.03 21:17 입력 2015.06.03 21:37 수정

코트디부아르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을 통과한 2005년 10월, 동료들과 함께 본선 진출을 자축하던 디디에 드로그바는 중계방송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단 일주일 만이라도 내전을 멈춰달라”고 외쳤다. 이 호소로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은 1주일간 휴전했다. 정부군과 반군은 마침내 2007년 평화협정을 맺었다. 드로그바의 호소는 유엔 회원국(193개국)보다 많은 가입협회(209개)를 자랑하는 축구의 역할과 가치를 보여준 사례이다. 인류가 야만적인 전쟁 대신 축구를 통해 갈등의 마음을 풀고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 손잡고 평화와 화합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축구의 메시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축구의 ‘심장부’(국제축구연맹·FIFA)가 실상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지난해 2018 러시아 및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의 비리의혹을 조사한 이른바 ‘가르시아 보고서’가 나왔지만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급기야 FIFA 총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27일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FIFA 주요 인사들이 체포됐다. 그럼에도 FIFA 부패의 몸통으로 지목된 블라터는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수사망이 좁혀오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어제 자진사퇴했다. 관련자들의 혐의는 공갈, 온라인 금융사기, 돈세탁 공모, 탈세, 국외계좌 운영 등 47개에 이른다. FIFA는 마피아와 마약 카르텔을 방불케 하는 부패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FIFA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6조3000억원의 수익(현금 1조6000억원 포함)을 올렸지만 세금을 내지 않았다. 비영리단체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라터 회장의 연봉과 활동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블라터는 수익금의 일부를 ‘축구발전금’ 형태로 각국 협회에 나눠주는 방식으로 지지세력을 넓혔다. 게다가 지금까지 개최지를 결정하는 집행위원이 불과 24명이었다. 13표만 얻으면 되니 거액의 뇌물이 난무했던 것이다.

러시아 등 일부에선 미 연방수사국(FBI) 등 미국의 수사당국이 이번 수사를 벌이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계기로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축구와 FIFA가 신뢰를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뜻깊은 일이다. 블라터 자진사퇴가 FIFA 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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