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집단 기준 완화, 경제민주화 역행 우려된다

2016.06.09 20:57 입력 2016.06.09 21:04 수정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대기업집단 기준을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카카오, 셀트리온 등 자산 10조원 미만인 민간 기업집단 25곳이 대기업집단에서 빠져 상호출자 및 신규 순환출자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같은 그룹 내 기업들이 서로 출자하거나, 돌려가면서 출자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채무보증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공정위가 공기업도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키로 함에 따라 한국전력 등 공기업 12곳이 빠지게 됐다. 대기업집단 기준 완화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줄기찬 요구를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통한 경제민주화 대선 공약은 계속 빈말에 그치고 있다.

대기업집단 기준 완화는 대기업들의 투자 족쇄를 풀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경제력 집중 심화와 중소기업, 골목상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카카오, 하림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택시, 대리운전, 계란유통업 등 골목상권 위주로 진출함에 따라 중소상인들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민 경제를 살리고 양극화를 풀려면 경제민주화가 필수적이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꿔 총수일가의 사리사욕을 막고 계열사 일감 밀어주기 등 불공정거래를 없애야 한다. 이번 조치는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함에도 박 대통령이 지난 4월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자 급물살을 탔다. 선진국들은 상법·금융법·세법 등을 통해 대기업들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만 지나치게 규제를 가하고 있다는 식의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와 공시의무 규제는 자산 5조원 기준을 유지키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재벌들의 탐욕을 억제할 수 없다. 대기업들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한 경우가 많았다. 법령 개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전횡을 막기 위한 보완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각 산업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대기업집단 기준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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