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유사시’ 한국 참전 요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19.10.29 20:48 입력 2019.10.29 20:49 수정

한·미 군당국이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에 맞춰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새로운 제안을 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규정하고 있는 이 각서의 문구를 ‘한반도 및 미국의 유사시’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 미국이 문구 변경을 제의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미국 유사시’라는 표현이 들어가도 일각에서 우려하듯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외 지역에까지 한국군을 자동 파병하는 것은 아니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 요구에 이은 미국의 뜬금없는 제안이 당혹스럽다.

한미상호방위조약(3조)은 한미연합사 작전 지역을 ‘태평양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의 제안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한국 측이 문구를 변경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이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에 파병할 경우 미·중의 패권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빌미도 제공해서는 안된다. 미국 측은 전작권 이후 한·미 공동 대응을 더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이 맡아도 지금처럼 주한미군을 철저히 지키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으로 발사했을 때를 고려해 ‘미국 유사시’라고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새로 ‘미국 유사시’란 표현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유사시 양국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개입하도록 돼 있다. 미국이 이 문구를 고집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위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군 당국은 이번 각서 개정을 협의한 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SCM) 때 양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국방부는 기존 각서의 틀을 견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이유로 한국군이 태평양 이외 지역으로 자동 파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안보 정책을 둘러싸고 상궤에서 벗어나는 제안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데 당국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무슨 제안을 하는지 시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존 안보 정책의 틀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동맹의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에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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