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그 후 100년

2014.06.26 20:29 입력 2014.06.26 21:16 수정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6월28일은 사라예보의 총성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정확히 100년째 되는 날이다. 산업화된 국민국가들이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총력전을 벌인 이 처절한 전쟁은 19세기 유럽에 평화를 가져다준 세력균형체제를 파괴하고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한 유럽 중심 질서에 종지부를 찍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기성 대국들의 동반 하락 속에 비유럽 신흥세력인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으로 부상하고 일본이 동아시아질서를 주도하며 공산주의국가가 탄생하는 거대한 변환을 가져왔다. 이 전쟁이 100년 후 동아시아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정동칼럼]1차 세계대전, 그 후 100년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4년 중·일관계를 1914년 영·독관계에 비유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영국의 기자가 던진 “일본과 중국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는가”란 질문에 아베 총리는 영국과 독일이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치렀음을 상기시키며 경제적 상호의존이 깊은 중국과 일본은 전쟁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기 때문에 양국은 군사당국을 포함한 소통채널을 긴밀하게 유지하여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 간 관계를 당시 독일과 영국으로 비유하여 패권전이와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논하는 국제정치 분석가들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의 경우는 중·일관계를 과거 영·독관계와 비교한 것인데 어쨌든 중요한 점은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되더라도 안보갈등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의 전망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간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전쟁에 따른 교역의 중단이 초래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양국 내 평화세력이 힘을 얻을 것이라 보았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안보영역으로 긍정적 전이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져다줄 것이란 논리이다.

그러나 100년 전 현실은 달랐다. 독일은 영국이 경제비용을 우려하여 유화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전격적인 군사행동으로 이득을 취한 후 협상에 나선다는 희망적 판단을 내렸으나 막상 영국 내에서 전이효과는 없었다. 독일과 자유무역을 견지하는 영국의 상업적 이익은 강력했지만 전쟁을 불사하는 안보정책을 넘지는 못하였다.

박근혜 정부가 동북아의 현실을 “아시아 패러독스”로 부르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처럼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되어 있으나 안보갈등이 병존하는 즉, 전이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모순적 상황 때문이다. 한·중·일 간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안보적 긴장과 갈등은 이미 표출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해양에서 지정학적 대립과 갈등을 연출하고 있으며 한·일관계는 최악의 감정적 대립상태이다. 역사문제는 안보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무역과 금융 등 비안보 이슈들의 과잉안보화를 가져오고 있다. 중·일 및 한·일 사이에 경제, 문화 교류는 축소경향을 보이고 있다. 역사문제와 안보문제가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에 오히려 부정적 전이효과를 미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패러독스 해소 전략은 신뢰 외교이다. 신뢰가 부족한 동북아 지역에 협력의 관행을 쌓아가고 이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여러 정상회담에서 반복하였다. 어느 세월에 협력의 관행을 쌓아갈 지, 당면한 안보 현실을 고려하면 한가롭기 짝이 없다.

아베 총리는 일촉즉발의 군사적 상황 통제메커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제1차 대전의 경험에서 도출된 국제정치이론과 동떨어진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박한 안보환경에서는 자유주의적 전이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학계의 정설을 도외시한 채, 협력이 용이한 비전통 연성안보 이슈(재난구호, 사이버안보, 에너지 기후변화 등)에서 다자간 협력의 관행을 축적하여 전이효과를 기해 역내 평화와 협력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당장 안보 갈등과 역사 갈등을 관리하는 다자메커니즘을 초보적으로라도 짜나가는 동시에, 강대국들 간의 안보협력을 최대한 도모하고 군사력의 역할을 축소하며 보편적 가치를 지역에서 실현하도록 다자안보협력의 전략을 세워야 할 외교당국은 언제까지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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