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적 과거읽기, 과거적 현재읽기

2015.04.05 21:03 입력 2015.04.05 21:28 수정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1. 1637년 정축년 설날 아침, “임금은 멍석 한가운데로 나아”가 춤을 추었다. 피란처인 남한산성을 청나라 군대가 포위한 상황에서 “조선의 국왕이 북경을 향하여 명의 천자에게 올리는 망궐례(望闕禮)”였다. 청의 황제가 이 광경을 보고 부하에게, “저것이 무엇이냐”, 묻는다. 황제는 “명에게”, “북경 쪽으로”를 되뇐다. 포를 쏘아 제압할 것을 제안하자, 황제는 “저들을 살려서 대면하려 한다”, “발포를 금한다”고 명령한다.

[정동칼럼]현재적 과거읽기, 과거적 현재읽기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장면이다. 김훈은 책의 첫머리에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적고 있다. <남한산성>이 역사가 아니라 저자가 재구성한 허구란 의미의 강조다. 그러나 소설로만 읽을 때도 독자는 소설이란 담론의 현실구성 능력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소설은 독자에게 현재적 과거읽기를 하게 한다. 정축년 음력 1월30일 조선의 임금은 남한산성을 내려와 한강변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 예를 하게 된다. 명의 쇠퇴와 청의 부상 시기에 청은 조선과 명의 연합을 저지하고자 했고, 결국 군사적 개입을 통해 조선의 굴복을 얻어냈다. 창경궁으로 귀환한 조선의 임금 인조는 명의 연호를 폐지하고 청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 <남한산성>의 저 춤추는 장면은, “세모에 영신의 예를 갖춤은 적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고 “동방의 예법을 보여서 저들이 이웃임을 스스로 알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지키려는 신성화된 사대의 관성으로 읽힌다.

#2. 1880년 6월 예조참의 김홍집은 수행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개항과 같은 한·일관계의 쟁점을 둘러싼 타협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의 황준센(黃遵憲)에게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조일문 역주)이란 책을 받아 조정에 올리게 된다.

이 책이 조선에 준 국제관계 비책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친(親)중국 하고 결(結)일본 하며, 연(聯)미국 하라는 것이었다. 이 외교노선은 황준센 개인의 의견처럼 포장했지만, 청나라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사의조선책략>의 노선에 대한 반발이 1881년 영남의 유생 1만여명이 김홍집의 탄핵을 요구하며 연명한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였다. 유생들에게 친중국은 불변의 노선이었다.

“대저 중국이란 우리가 신하로서 섬기는 바이오며… 그러하온데 이제 무엇을 더 친할 것이 있겠나이까”라고 말한다. “일본이란 우리에게 매어 있던 나라”고, “미국이란 우리가 본래 모르던 나라”며,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는 혐의(嫌疑)가 없는 나라”로 ‘영남만인소’는 정리한다. “러시아·미국·일본은 같은 오랑캐”이고, “겹겹이 막힌 국경을 넘고 만리바다를 건너서 순치의 외교를 맺었다는 일은 들어보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영남만인소’의 절정이다. 비장함과 절실함이 깃들어 있는 ‘영남만인소’에서 다시금 명이든 청이든 중국에 대한 신성화된 사대의 관성을 읽는다.

#3. 2015년 3월 한국의 외교적 쟁점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도입과 중국의 신실크로드 발전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한 추진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여부였다. 한국의 외교적 주저가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게끔 하는 형국이었다. 여당 대표의 제안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미국의 사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보는 미국의 핵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중국과는 경제교류를 하자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논리였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는 냉전적 관성은 자칫 한국에 두 번의 춤을 추게 할 수도 있다. 외교부 장관의 담론은 냉전적 관성을 넘어선 듯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질문하게끔 하는 지정학적 조건을 “딜레마가 아닌 축복”으로 묘사한다. “19세기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심지어 사대주의적 시각에서 우리 역량과 잠재력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그 담론에 같이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다자안보협력과 다자경제협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외교전략과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 한, 지정학적 조건을 수용하며 냉전적 관성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17세기와 19세기의 신성화된 사대의 관성을 반추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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