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새우외교’에서 벗어나는 길

2015.04.02 20:39 입력 2015.04.02 21:04 수정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며칠 전 정부의 외교수장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입지가 딜레마라기보다는 축복이라 하여 논란을 일으키고, 대통령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 호들갑을 떨 필요 없다며 옹호에 나섰다. 한국이 두 고래 사이에서 의기양양한 새우인지 눈치 보는 새우인지는 모르겠으나 줄지어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에 이어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가입을 둘러싼 결정 등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역대급이라 하는데 왜 두 국가 사이에서 힘든 선택의 순간이 반복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동칼럼]한국이 ‘새우외교’에서 벗어나는 길

한국은 영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줄지어 AIIB 가입 선언을 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덜 보면서 가입 선언을 할 수 있었고, 사드의 경우 중국의 강경 일변도 압력이 역효과를 내면서 미국 편으로 선회하기 용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TPP는 이달말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대타결을 선언하게 되면 이 메가톤급 FTA가 일거에 지역질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므로 한국은 비교적 용이하게 승차할 길이 열릴 것이다.

이 모든 경우, 한국은 후수로 따라가는 형국이어서 당장의 정치적 부담은 덜게 되겠지만 자국의 전략적 가치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AIIB는 마감일에 임박해 뒤따라 들어감으로써 이 기구의 거버넌스와 운영에서 목소리를 낼 여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사드는 갑과 을이 뒤바뀌어서 우리의 안보적 필요보다 미국과 중국의 국익이 더 크게 부각되는 희한한 상황이 됐다. 2010년부터 미국이 권유해 온 TPP의 경우, 2013년 가을 한국의 교섭 참여 의사에 대해 미국이 일본과의 타결 이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한국은 4월말 미·일 정상회담이 획정하는 주요 기준을 받고 교섭에 참여할 신세가 되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AIIB와 TPP에 가입하고 사드 배치를 결정한다고 미·중 사이에 낀 중견국의 딜레마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양국과의 관계가 더없이 좋아도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양강이 동아시아 지역을 분단하지 않도록 촘촘히 네트워크로 엮는 지역비전과 추진전략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은 지역 안정과 협력에 아직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한·중·일 협력이 정체되면서 좀처럼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있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신실크로드·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완전히 가려졌으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에 역부족이다. 그 근저에는 북한 및 일본과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 네트워크상에서 링크(연결)가 결여된 곳은 전통적으로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그리고 중·일관계이다. 이른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으로서 전략적 목적으로 한두 개 링크를 추가해 연결함으로써 채워질 수 있는 공백을 의미한다.

한국이 서로 연결돼 있지 않은 두 국가를 연결해줄 수 있다면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해 정보이득과 사회적 자본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북·미와 중·일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공백을 한국이 메워주는 중개자 역할을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북한 및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오히려 한국이 구조적 공백의 당사자가 돼버렸다. 사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북한과의 악화된 관계 때문에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악화 속에서 일본은 한국이 친중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중국은 한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협력체제로부터 이탈시키고자 해 미국을 곤혹스럽게 한다. 북한과 일본은 한국을 두 고래 사이의 새우 신세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이 새우외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명하다. 북한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다음 동아시아의 구조적 공백을 메우는 네트워크 중개외교로써 동아시아를 엮는 공생과 번영의 질서 건축의 주요 행위자로 거듭나야 한다. 미·중의 도전을 축복으로 여기는 외교수장의 기개는 네트워크적 마인드에 기반을 둔 건축술로 재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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