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의 나라, 대한민국

2015.11.30 20:54 입력 2015.11.30 21:01 수정
조호연 논설위원

이제 대한민국은 대단히 위험한 나라가 되었다. 언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가 공습해 올지 모른다. 수많은 시민 시위대가 고스란히 이슬람국가(IS) 전사가 된 나라를 그냥 둘 리 없다.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이 공식 확인한 사안이니 부인하기도 어렵다. IS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자기들이 ‘악의 연합’으로 지목한 나라에 전사가 많다니 놀랄 일 아닌가. 북한은 ‘종북좌파’가 죄다 IS전사로 탈바꿈했으니 아쉬워할 것 같다. 종북좌파 시비로 먹고살던 정부, 여당의 좋은 날도 지나갔다.

[경향의 눈] IS의 나라, 대한민국

정부의 의도는 거의 성공했다. ‘민중총궐기대회’의 메아리는 사라졌다. 대신 폭력 시비가 뉴스가 되었다. 정부의 방식은 간단했다. 위헌인 차벽을 설치한 뒤 일부 시위대가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자 폭력집회로 규정한 것이다. 이번에는 폭력 장면만을 부각시킨 종편의 활약이 컸다. 정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복면금지법을 추진하고, 5일로 예정된 2차 민중궐기대회를 사전에 불법으로 규정했다. 대회가 열리면 시위하고 막고 충돌하고 폭력집회로 모는 익숙한 패턴이 가동될 것이다. IS는 전사 모집에 힘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삼류국가가 되어간다. 미국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민을 IS 전사로 비유한 것에 경악했다. 서울을 방문한 네덜란드인은 “한국이 민주국가인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뉴욕타임스는 비판자를 억압하는 박 대통령이 한국의 평판에 가장 큰 위험이라고 썼다. 이것은 한국과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36년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기사로 인해 의원제명을 당했다. 이것이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다시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면 안된다.

민중총궐기 대회는 대선공약 준수 촉구 집회였다. 농민 참가자의 호소는 쌀값 인상이었다. 박 대통령이 80㎏당 17만원 하던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대선 후 쌀값은 해마다 떨어져 지금은 15만원대이다. 노동자는 정부의 ‘쉬운 해고’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10대 대선공약’ 중 6번째 항목 ‘해고요건 강화’를 겨냥한 것이다. 비정규직 참가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행을 촉구했다. 모두들 대통령과 여당이 표만 얻은 뒤 내팽개친 대선공약을 실천하라고 외친 것이다. 폭력집회로 침소봉대하지 말고 성찰하는 자세로 먼저 대선공약집부터 읽어볼 일이다.

정부, 여당이 민중대회를 폭력집회로 낙인찍는 것은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다. 13만 집회 참가자 중 극소수만이 폭력에 가담한 것을 폭력집회라고 할 양이면 새누리당은 ‘성범죄당’ ‘막말당’이란 매도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위대에 총을 쏴도 된다는 식으로 발언한 의원, 성폭력을 저지른 의원이 있었으니 그렇게 불러도 억울할 게 없을 것이다.

원래 경찰은 집회를 보장하고 시위대를 보호해야 한다. 시위대의 목소리가 좀 더 널리 울려퍼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모범적 집회문화로 거론하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경찰이 이 같은 역할을 다한다. 시위대의 폴리스라인 준수나 공권력의 권위 인정은 여기서 나온다. 처음부터 집회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통제하고 금지하면서 정상적인 집회문화를 기대하는 것이 비정상이다. 68세 늙은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보름 넘게 사경을 헤매는 비극이 발생하는 현실을 부정할 셈인가. 그는 경찰을 위협할 만한 아무런 흉기도 없이 혼자 있다가 졸지에 일을 당했다. 물대포의 강도는 시속 160㎞ 야구공의 위력과 같은 세기였다고 한다. 경찰은 ‘살인 경찰’로 불려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국민 생명과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이나 총리가 “회복을 빈다”는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는 현실이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는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정권이 국민의 뜻을 대표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대놓고 추진하는 것이 명백한 증좌이다. 이 같은 정권의 독단과 오만의 기원을 좇아가보면 섬뜩한 유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현행 헌법 제1조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유신헌법 제1조2항은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돼 있다.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정권의 전유물이라는 얘기가 된다. 한국은 6공화국 헌법을 따르는 국민과 유신헌법을 신봉하는 정부·여당으로 나뉘어 있다. 과거가 현재더러 시간을 거슬러 회귀하라고 강제하는 격이다. 우리는 헌법을 따르고 보호받는다. 하지만 헌법이 훼손되지 않게 수호할 책무도 있다. 헌법 수호에 실패하자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삶이 팍팍해진 과거를 교훈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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