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대통령이다!

2015.12.07 20:52 입력 2015.12.07 23:30 수정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본디 바탕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다 안다. 때론 그 변화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연말에 이 말을 떠올린 것은 문득 3년 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얽힌 일화가 상기되어서다.

2012년 대선 때 정치부장으로 일하면서 신문사를 방문한 박근혜 후보를 맞이한 적이 있다. 2004년 천막당사 시절 당 대표였던 박 후보를 취재한 이후 수년이 흘러 서먹한 데다, 경직된 분위기를 푼답시고 “지난 2007년 대선 때(이명박 후보와 경선)는 박 후보와 우리 신문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됐죠?”라고 농담조로 던졌다. 박 후보의 말이 바로 나왔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그대로인데 그럼 경향이 변한 거네요.” 웃음이 터졌다. 아니, 정말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경향의 눈] 박근혜는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선이 다 끝나고 박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언론인 초청 간담회에 갔을 때 비로소 느꼈다. 회사를 방문했을 때 박 후보가 반사적으로 던졌던 “경향이 변했잖아요”라는 말이 사실은 그 무서운 ‘레이저’였다는 것을. 그리고 간담회를 마친 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멀리서 나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시선을 쏘아대는 것을 보고서야 나의 판단이 나이브했고, ‘박 대통령도 변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취재할 때 지금처럼 변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후보자로 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편집국을 돌며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난 뒤 한 후배는 “박 후보가 너무 여린 것 아니냐”고 했다. 박 대통령을 잘못 읽은 것이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요즘 박 대통령 주변을 보면서다. 초창기에 박 대통령을 모셨던 측근들의 상당수가 떠났다. 서청원 의원 등을 빼면 원조친박은 거의 없다. 친박인사로 불렸던 한 정치인도 지난달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식 개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도 놀랐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퇴임 후까지 영향력을 미치려고)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 변함이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나라를 통치하는 자리다. 권력을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권력을 맡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지며 통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해준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의 책임에는 3권분립에 따른 수평적 책임과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통치권력에 대해 압박을 가해 권력을 견제하는 수직적 책임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 하기도 버겁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찍혀나가는 순간 여당은 이미 견제 능력을 상실했다. 수평적 책임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다수의 국민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건 리더십이 아니다. 권위주의 리더십도 지난 딕테이터십(dictatorship)이다. 지금 상황을 ‘신종 쿠데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시기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책임을 지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선거 시기에 즈음한 책임, 선거가 없을 때의 책임이다. 선거에 즈음한 책임은 지키기 쉽다. 아무리 강력한 통치자라도 당선 후 곧바로 돌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본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처럼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일 경우,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레임덕을 만나기 십상이다. 그것에서도 박 대통령은 예외다. 탁월한 선거 능력 덕분이다.

위임 범위를 어기는 통치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책임을 묻는 방법은 선거다. 통치자가 거부하면 투표를 통해 국민이 강제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선거의 여왕’은 이미 모든 정치 스케줄을 내년 총선에 맞추기 시작했다. 입바른 소리 하는 ‘원박’ 유승민을 내쫓은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마음대로 부리는 것도, 국정은 어찌 됐든지 간에 측근들을 총선에 내보내는 것도 다 이를 위한 것이다. 어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불러놓고 내년 총선 때 얼굴을 못 들 만큼 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이 원하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박 대통령은 이미 너무 많이 했다.

사람이 그렇듯 국가도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복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박근혜는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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