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실험, ‘노동자 행복’

2019.05.08 20:38 입력 2019.05.08 20:39 수정
김종훈 논설위원

“구성원 자체의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얼마 전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회사의 목표를 행복으로 바꾼다면 경제적 가치가 조금 희생되더라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상하이포럼에서는 “이제는 고도 성장기에 묻고 넘겨왔던 문제들을 치유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경향의 눈]최태원의 실험, ‘노동자 행복’

그는 올해 SK그룹 구성원들과 100차례 만나겠다고 했다. ‘행복토크’다. 이미 40여 차례 진행됐다. 그는 행복토크에서 구성원을 ‘한솥밥을 먹는 식구 공동체’로 정의했다. “나(노동자)의 개념이 확장되면 우리가 된다. 우리의 가족이 구성원이 되고, 협력업체도 되고, 고객·주주 등 외부로 확장된다”고 했다. 구성원은 노동자요, 고객이요, 국민이다. SK그룹은 지난해 매출 158조원을 기록했고 직원 수는 9만4000여명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기업의 이윤보다 노동자, 국민의 행복에 더 높은 가치를 두자”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례적이다.

그의 말은 진심일까. 그는 분식회계와 횡령 등 혐의로 두 차례 수감생활을 했다. 계열사인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으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정규직으로 품은 협력업체 간접고용 노동자 4500여명 중 상당수는 낮은 임금 등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SK텔레콤이 인수한 보안경비업체 NSOK 등 일부 그룹 자회사 직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노동자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진실에 눈감고, 차별이 여전하다면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

그의 실험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갈 기회는 남아 있다. 그의 ‘식구공동체 행복론’이 느닷없이 ‘툭’ 튀어나온 주장도 아니다.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상생노사’는 임금의 일부를 모아 협력·하청업체 직원 임금 인상에 사용하거나, 소외계층을 지원한다. SK그룹 각 계열사가 보유한 유·무형 자산을 사회와 공유하는 ‘공유인프라’도 구축 중이다. 그는 또 ‘사회적 가치’ 신봉자다. 2014년 옥중에서 쓴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에서 “개인이 아닌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사회적 가치론은 사회적기업으로 확장된다. “빈곤, 고용, 환경 등의 해결은 정부 또는 비영리단체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맞춤형 해결사’로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절실하다”며 ‘10만 사회적기업가 양성’을 주장했다. 사회적기업은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육성 중이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기업은 조금 다르다. 이익도 내는 기업이다.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돈도 번다니 그게 가능할까.

그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가치 평가 기준을 만들어 측정을 시도한다. 재무제표의 하단은 특정 기간 동안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보여준다. 그 아래칸에 사회적 가치의 값을 매겨, 기업이 얼마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정부와 기업이 제공한다면, 사회적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단언한다. 남을 더 배려하는 이타적 사회적기업가가 확산되는 ‘백색효과(가치 있는 일을 하려는 생각이 전염되는 효과)’가 활발해져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에 그치지 않는다. 행동한다. 행복도시락, 행복한 학교, 행복 전통마을 등 8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계열사 중 MRO코리아는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로 전환했다. 행복나래는 지난해 1조원 넘는 매출로 200여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카이스트에 사회적기업가 양성 과정을 후원, 지금까지 100명 가까운 사회적기업가를 배출했다. 사회적 가치의 개념 정립을 위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사회적 가치 측정 도구도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SPC(Social Progress Credit)라는 인센티브 지원제를 시행, 사회에 기여한 가치만큼 지원하고 있다. 임직원 평가에도 사회적 가치를 50% 반영한다. 재작년에는 회사 정강을 개정, 이윤을 빼고 대신 사회적 가치를 넣었다. 그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성원 즉 노동자의 행복에까지 사회적 가치 추구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오는 6월에 구성원들과의 100차례 ‘행복토크’를 통해 완성된 ‘행복지도’를 내놓겠다고 선포한 터다.

최태원의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그가 변심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SK케미칼 사태나, 자회사들의 역차별 문제 등의 해결책도 내놓을 것으로 믿는다. 제2·제3의, 아니 ‘10만의 최태원’이 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기업가와 노동자, 국민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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