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산다는 죄

2014.04.21 20:49
하승수 | 변호사

21일 오후 뉴스를 보니 구조자 174명, 희생자 64명, 실종자 238명이라는 숫자가 뜬다. 지난 16일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에 수시로 이 숫자를 확인하지만, 구조자 숫자는 변하지 않고 희생자 숫자만 늘어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 직후 TV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배가 기울고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에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시론]이 땅에서 산다는 죄

사고 이후 며칠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구조소식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소식은 없다. 무기력감, 슬픔, 분노 같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이런데,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과 분노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사회계약론을 따르든, 그 어떤 정치이론을 따르든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부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여객선으로 운항할 수 있는 배의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해, 18년이 넘은 낡은 배를 수입해 운항할 수 있게 한 것은 정부이다. 그런 선박을 개조할 수 있게 하고, 선박안전점검도 비상대비 훈련도 부실한 채 운항할 수 있게 한 것도 정부다. 비정규직인 선장과 승무원들이 배를 운항하게 하고, 안개가 짙은 날에 예정시간을 넘겨서 출항하게 한 것도 정부다.

이런 정부의 책임은 온데간데없다. 물론 사고가 나자 무책임하게 승객들을 버린 선장과 승무원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처벌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은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뭘 했나? 규제 완화를 외쳤을 뿐, 안전대책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그런 자신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몇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사고대응 과정도 의문투성이다 보니 여러 얘기들이 떠도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런 얘기들을 유언비어로 때려잡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사고대응 과정의 의문점들을 투명하게 밝히려는 노력은 없다.

경기도 교육청과 단원고 측의 주장에 따르면, 최초 신고 접수시간으로 알려진 때로부터 40여분 전에 이미 해경이 이상징후를 포착해서 단원고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징후를 포착한 뒤에 해경이 뭘 했는지가 의문이다.

해경이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도착한 후에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뭘 했는지도 의문이다. 배 안에 수많은 목숨이 갇혀 있는데도, 왜 배 안의 승객들을 구조하겠다는 생각조차 못했는지 납득이 잘 안된다.

이런 의문들에 대해 솔직하고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은 것이 시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잘못했다고 하고,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실수를 했으면 실수했다고 하면 좋겠다. 관련된 본인들이 그렇게 못한다면, 그 얘기를 하도록 만드는 게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이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은 현장을 한번 방문한 후에 호통만 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20일 새벽에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구조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절망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를 방문하겠다고 하는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를 막기 위해 경찰까지 동원해서 차량과 사람의 통행을 막는 일까지 벌였다. 비통에 빠진 국민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 것을 청와대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결사 저지하는 것이 총리의 역할인가? 이런 나라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부실한 제도, 무분별한 규제완화론,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정, 엉터리 재난대응체계, 그리고 스스로는 책임지지 않고 투명한 정보공개와 소통조차 거부하는 권력. 이 때문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영령들이 너무 많다.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로 숨진 19명의 어린 목숨들, 지난 2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부산외대 학생들. 그리고 지금 진도 앞바다의 차가운 물 위를 떠돌 영령들.

이 땅에서 태어난 게 억울하고, 이 땅에서 자식을 낳아 기른 것이 억울하고, 이 땅에서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그런 억울함이 다시는 없도록 하려면 근본에서부터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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