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전환의 시간을 위하여

2018.05.07 20:51
백원담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장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한반도 정세와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 한·중관계 전망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는 중국 친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나 역시 최근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입장, 그리고 중국 지식계의 시각과 방향에 대한 한·중 토론이 긴요하다고 판단하던 차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중토론이 가능했던 것은 촛불혁명 이후 그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양국 간 축적된 다양한 문제(사드는 물론이고 특히 중·미 간 경제·군사안보적 갈등 속에서 전향적 활로 찾기로 북한의 비핵화 경로 개입 필요성 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이번 회동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왕후이(汪暉) 교수 등은 중국 지식계와 정치사회 전반을 한국 사회의 활기와 접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아울러 한반도-아시아-세계의 전환적 계기를 이끌 새로운 관계상 수립을 위해 한·중 지식계가 지속적으로 사상대화를 할 것을 제의했다.

[시론]다른 전환의 시간을 위하여

한국전쟁 이래 가장 위험스러운 전쟁위기 속에서 남북한 주도의 극적 전환으로 남북 정상이 65년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긴 하루의 동행과 평화선언을 이룬 감격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반도 분단체제라는 어둠의 시간들. 나의 기억 속에 그것은 7·4남북공동성명의 충격에서 시작됐다. 흑백 TV 속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에 반공 일체로 혹독하게 훈육되었던 어린 우리는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의 우리 또래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그 46년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다. 분단 모순의 극복과 도전, 굴절의 역사로 점철되었고 이제 발본적 전환이라는 절체절명의 계기를 맞았다.

혹자는 그 시간성을 “박정희 정부에서 채택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이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남북연합’안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이어졌고, 다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8년 판문점선언까지 46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연속성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4·27선언에 담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과 통일방안이 박정희-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계승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전대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노태우 정권의 남북연합론이 ‘한반도 현실에 부합하는 방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6·15선언 당시 김대중 정부의 ‘남북연합’과 김정일 정권의 ‘낮은 단계 연방제’로 대응하였던 것을 토대로 실현가능한 경로로서 ‘남북연합’론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 핵심은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통해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상호 경제발전의 기초하에 남북 간 경제격차 감소로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체제 간 통일을 준비해가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을 연결하는 남북대륙철도 개통, 환동해권 경제협력벨트와 서해권 경제협력벨트 등 경제네트워크 확장과 이를 토대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남북연합론은 과연 어떤 사회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것인가. 종북프레임의 무력한 보수세력을 안는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미·중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가능한 해결 경로의 모색이라는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지난 46년 동안 남북관계가 모두 국가 수뇌부들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추동되었고 어떠한 사회적 수렴과정이나 민간 주도 통일 경로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정권교체에 따라 남북관계가 부침을 반복해온 지난 역정이 이를 입증한다.

한편 남한에서 냉전의 시간은 곧 권력과 자본의 시간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국가 주도이든, 자본이 주도하든 “더 이상 ‘바깥’은 없는” 자본의 세계화기획 일환일 수 있다. 한반도 분단 문제는 단지 미·소 냉전체제로의 편제로 인한 민족분단만이 아니다. 냉전분단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분단모순을 격화시켜왔다. 따라서 그 모순에 정박된 민중적 삶의 해결, 사회적 해방통일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촛불항쟁이 열어낸 직접적 민주주의의 정치사회공간을 한반도 해방통일의 상(象)과 경로, 다양한 주체를 일구어내는 생산적 논의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진정한 해방통일의 노선을 세우는 사상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세계화, 다원평등과 평화의 세계 구성을 추동해내는 중요한 계기이자 동력이 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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