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핀란드화(化)

2022.02.09 20:45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연합뉴스

북유럽의 핀란드에는 아픈 과거사가 있다. 스웨덴과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오래 받았던 핀란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독립을 이뤄냈다. 그러나 1939년 소련의 침공으로 ‘겨울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핀란드는 인근 서방국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소련에서 독립하는 데 도움을 준 독일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국토의 10% 이상을 넘겨주며 소련과 우호협력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그 눈치를 봐야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소련에 불편한 뉴스를 자체 검열했다. 소련의 환심을 얻기 위해 대선을 늦추는 일까지 있었다.

핀란드의 이런 행보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경멸적인 말로 남았다. 1960년대 서독의 보수 정치인들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을 핀란드에 빗대 비꼬면서 널리 알려졌다. 핀란드인들은 이 말을 모욕적으로 여기지만 하나의 생존전략인 점도 분명하다. 소련과 국경을 맞댄 나라 중 위성국으로 전락하지 않고 독립국 지위를 지킨 유일한 나라가 핀란드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대변동>에서 핀란드가 소련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응한 덕분에 부흥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강소국의 비결이 핀란드화였던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법으로 ‘핀란드화’가 제기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수행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하는 것이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마크롱은 이튿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 아이디어가 논의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교류할 수 있는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 전쟁을 막자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는 냉혹한 현실이다. 독립국이라는 명분을 고수할지, 자존심을 굽히고 생존을 선택할지 결정은 우크라이나에 달렸다. 어느 경우든 우크라이나 국민이 뜻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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