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의 안방마님’김성녀

2006.04.02 17:45

[사람속으로]‘마당극의 안방마님’김성녀

배우(俳優)는 인간(人)이 아닌(非) 신과 교감하는 사람이라 했다. 무대 위 수많은 인생을 경험하면서 신의 영역을 넘나든다. 많은 배우들은 그런 맛에 평생 무대를 떠나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죽을 수 있는 배우야말로 가장 행복한 배우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돈도 뭣도 안되는 배우의 길을 걷는 사람은 이제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배우라고 우기는 이는 많아도 배우로 인정받는 이들은 드물기 때문이다. 김성녀씨(56·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학과장·사진)는 인정받는 배우 중의 하나다.

‘마당극의 안방마님’인 그는 지난해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에 출연,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남편 손진책씨(59·극단 미추 대표)가 연출하고, 아내는 연기인생 30년 만에 처음으로 1인극에 도전했다. 무대 위에서 김씨는 5살난 딸과 어머니역은 물론 벽속의 아버지와 경찰, 이웃집 사람들, 딸의 남자친구, 사위 등 1인다역을 소화했다. 간간이 섞이는 춤과 노래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관객과 비평가의 호평 속에 ‘벽속의 요정’은 동아연극상과 예술인상, 비평가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내로라하는 중견여배우들과 겨뤄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뜻깊었다. 아내는 남편이 준 결혼 30주년 선물이라 했다.

그가 남편 손씨와 함께 이 나라 마당극의 역사를 써내려온 극단 미추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극단 미추의 역사 속에 김씨는 미추 마당극을 대표하는 배우로, 극단 살림을 도맡아 하는 미추산방의 안방마님으로 20년을 살아왔다. 무대 밖에서도 일인다역에 익숙해진 그를 만났다. 그날도 경기 안성에 있는 학교에서 세차례에 걸친 정기공연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에 두 아이의 엄마, 극단대표의 마누라, 학교의 학과장, 배우에 이르기까지 무대 밖에서도 여전히 일인다역이죠. 아플 틈도 없어요. 즐거우니까 하는 거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어머니는 195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여성국극단의 주인공 박옥진 여사다. 또 동생 성애씨는 판소리 명창 오정숙의 뒤를 잇는 소리꾼이다. 그가 남편을 만난 건 30년전 극단 민예의 사무실이었다.

“음악극 ‘한네의 승천’ 주인공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그 유명한 허규 선생이 손수 하회탈을 깎고 계셨죠. 그때 연출자라며 소개받은 더벅머리 총각이 손진책씨였어요. 그땐 머리숱이 많았거든요. 별다른 오디션 절차도 없이 덜컥 주인공을 맡으라고 해서 사이비 극단인 줄 알았다니까요.”

두 사람은 그로부터 1년 뒤 결혼해서 30년을 살아왔다. 아니 30년동안 함께 연극계 동지로 지내왔다고 해야 옳다. 극단 미추의 모태가 된 손진책 연출연구소를 차릴 때도, 극단 미추를 출범시킬 때도 그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있는 돌반지와 결혼반지 등 패물을 내다팔고, 방송일 등 외도까지 하면서 남편을 도왔다.

“제 연기인생에 세 분의 스승이자 동지가 있어요. 그 중 한 분이 남편이고, 또 한 분은 박범훈씨(현 중앙대 총장), 그리고 국수호씨(중앙대 무용과)죠. 그들은 각각 나의 연기선생, 음악선생, 무용선생입니다.”

마당놀이는 “우리도 한국적 뮤지컬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연출가 손진책, 작곡가 박범훈, 작가 김지일씨에 의해 시작됐다. 또 무대 위에는 김성녀-윤문식-김종엽이라는 트리오 배우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마당극은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당놀이 하면 자연스럽게 극단 미추, 김성녀와 윤문식이 떠오를 정도로 그 인기를 독점해왔죠. 그러나 마당놀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닙니다. 한국적인 가락과 정서에 대한 이해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죠.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까지 마음놓고 펼쳐보일 수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음악극입니다.”

김씨는 마당극을 통해 화술과 연기, 춤과 노래실력을 다져왔다. 모노드라마에서 일인다역을 하면서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도 마당극에서 다진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81년 손진책 연출연구소 시절 ‘허생전’을 무대에 올린 이후 지난해 ‘삼국지’와 ‘마포 황부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2,600여회나 무대에 올랐다. 김씨는 그 대부분의 무대에서 제갈공명, 홍길동 등 남성배역에서부터 심청과 별주부 마누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그런데 마당놀이로 단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어요. 반면에 번역극 무대에만 서면 상복이 터지죠. 좀 억울하기도 해요. 1년에 900여편의 크고 작은 번역뮤지컬이 무대에 오르지만 창작뮤지컬은 10편 내외입니다. 우리것을 되살리자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험난하죠.”

얼마전 중국 경극의 원류인 곤극을 보러 베이징에 다녀온 그는 곤극 보존을 위한 중국 정부의 투자를 보고 내심 놀랐다.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면 외국에 나가서도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우리 것을 철저히 공부하는 길만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가르친다. 김씨는 다행히도 젊은 학생들이 우리 전통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진지하다고 말한다.

“연극이 하고 싶으면 우유배달을 해서라도 연극무대에 서라고 얘기합니다. 연극배우가 돈을 못버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거든요. 영혼의 곳간을 채우듯 자신을 채워놓고 있으면 언젠가는 거둬들일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의 어머니가 전통을, 그가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을 해왔다면 그의 딸 지원씨(30)는 현대적인 뮤지컬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영국 런던의 매킨토시 프로덕션 소속 배우인 지원씨는 현재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지지역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저희 딸이 배우로서 개성은 있어요. 그런데 춤과 연기는 엄마를 닮아 곧잘 하는데 노래는 음치인 아빠를 닮아서 다소 성량이 부족하죠. 선진 뮤지컬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와서 한국적 뮤지컬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재원이 됐으면 합니다.”

전재산을 털어 경기 양주시 백석읍에 마당놀이 전용연습장이자 두 부부의 거처인 미추산방을 차린 김씨는 그곳의 곳간열쇠를 관리하는 안주인이자 대표배우다. 한달에 쌀 한가마씩 먹어치우는 단원들의 심리상태까지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무대에 서면서도 그는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내일모레면 환갑이 되는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톡톡 튀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끝없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즐겁게 살아야죠.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그 시간에 무대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배우러 다녔어요. 또 젊은 친구들과 더불어 같이 밤샘도 하고 땀도 흘리잖아요. 배우에겐 나이가 무의미합니다.”

〈오광수 기획취재부장·사진 김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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