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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법원 “망원동 수재는 인재” 판결 

2010.08.01 21:33 입력 2010.08.02 01:04 수정 서영찬 기자

6년 소송 주민 승리 마침표

“망원동 수재(水災)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1990년 8월2일 대법원은 6년 가까이 이어진 ‘망원동 수재 사건’ 소송에 마침표를 찍었다. 수해를 입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주민 22명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민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주심 대법관은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대표였다.

한강변에 위치한 망원동 주민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만 쏟아지면 가슴을 졸였다. 이 일대가 단골 침수지역이었기 때문이다. 84년 9월 초에도 망원동은 물에 잠겼다. 330㎜가 넘는 집중호우에 망원동 유수지(배수지) 펌프장 수문이 붕괴돼 1만8000여가구가 물에 잠기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강이 역류해 발생한 침수피해였다.

망원동 주민들은 피해 한 달 뒤 유수지 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망원동 수해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라 서울시와 건설사의 유수지 시공·관리 잘못으로 초래된 인재라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었다. 1심 재판은 3년간 이어졌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지연작전을 펼쳐 빈축을 샀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시효인 3년을 어떻게 해서라도 넘기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원동 주민들은 1심에서 승리를 거뒀고 항소심도 주민의 손을 들어줬다.

이 재판을 지켜본 다른 망원동 주민들이 줄줄이 소송에 나섰다.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낸 주민은 1만2000여명에 이르렀다. 결국 서울시는 이들에게 모두 53억2000여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서울시는 그러나 책임문제만큼은 눈 감아버렸다. 관련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징계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 측은 사고 발생 후 2년이 지나 어쩔 수 없다며 징계시효 타령만 했다.

망원동 수재사건 소송에서 주민들이 승리를 거두기까지는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집단소송을 사실상 기획해 망원동 주민을 설득했으며 다른 인권변호사들의 참여도 이끌었다. 박승서, 이세중, 박원순 변호사 등이 변론을 맡았다. 조영래는 “책임회피를 일삼는 공권력의 타성에 제동을 걸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망원동 수재사건 소송은 시국사건에 국한돼 있던 인권변호사들의 활동을 집단 민사소송 분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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