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은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정부, 개식용 철폐할 때”

2023.05.23 20:35 입력 2023.05.23 20:36 수정

‘동물권 변호사’ 박주연

박주연 변호사가 지난 16일 경향신문 여다향에서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법이 동물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될지라도 행정부가 단속을 소홀히 하거나 사법부가 법을 제대로 해석·처벌하지 않는다면 법 개정은 무의미해진다”고 밝혔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박주연 변호사가 지난 16일 경향신문 여다향에서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법이 동물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될지라도 행정부가 단속을 소홀히 하거나 사법부가 법을 제대로 해석·처벌하지 않는다면 법 개정은 무의미해진다”고 밝혔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1985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2011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군부대 이전 반대 집회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동원된, 능지처참을 당한 새끼 돼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동물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변호사가 된 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고자 말 못하는 동물들 대신 열심히 뛰었다. 동물권 단체 카라와 함께 법 개정 연구 및 제안 활동을 했고, 2017년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을 공동 설립했다. 현재도 동물권 증진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물건이 아니다>를 출간했다. 반려견 고미·래미의 집사다.

동물권 강화가 사람의 복지서 뺏자는 게 아냐…인간 문제 모두 해결한 뒤에 논의하자는 주장은 억지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 개선하지 않는 한 학대는 반복…법 개정안 심사 미뤄져 답답
‘동물판 n번방’ 사건은 파급력 크고 모방범죄 야기…결국엔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번질 수도
개정된 ‘보호법’, 정당한 사유없이 동물 죽이는 것 금지…학대로 처벌 근거 마련에 큰 의의
동물 보호나 생명 존중의 가치에서 봤을 때, 동물권은 ‘비례의 원칙’ 적용하는 게 맞아

2018년 2월 산양 28마리가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를 설치하지 말아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이 ‘별난’ 소송은 법원의 각하 결정으로 1년 만에 끝났다. 소송은 동물권연구 변호사 단체 PNR(People for Non- human Rights)이 주도했다. 당시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대리한 소송은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엔 얼룩말 세로의 동물원 탈출 소동이 동물원 존폐 논란으로 번지며 다시금 동물권 논쟁이 일어났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명 시대, 한국사회의 동물권 감수성은 진일보했다. 하지만 한쪽에선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고, 동물학대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얼마 전 경기 양평에서 1200여마리의 개·고양이 사체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농장주는 경찰 조사에서 “사료 가격이 비싸 굶겼다”고 진술했다. 뻔뻔한 항변 그 이면에는 동물이 ‘물건’이라는 인식에 근거해 만들어진 법이 있다.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은 시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지난해 11년 만에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지난달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 개정을 위해 열심히 싸운 박주연 변호사를 지난 16일 만났다. 박 변호사는 동물권 소송과 입법 제안 등의 활동을 펼치는 ‘동물권 변호사’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그는 “동물권은 동물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약자인 동물이 학대받는 세상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젠, 정부가 과감하게 개식용을 철폐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동물권은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정부, 개식용 철폐할 때”

-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2011년, 동물단체가 발간한 잡지 속 사진을 본 것이 시작이에요. 2007년 경기 이천에서 군부대 이전 반대 집회를 연 참가자들이 살아 있는 새끼 돼지의 네 발을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장면이었는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돼지가 사지가 늘어진 채 피와 내장을 쏟고 있었어요. 사람이 동물에게 이렇게까지 할 권리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로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나 역시 동물을 좋아만 했지 동물의 삶이나 권리까지 신경쓰고 살진 않았으니까요.”

- ‘동물이 인간보다 중하냐’는 반박도 있습니다.

“ ‘동물권’을 이야기할 때마다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예요.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사람보다 자본이 더 우위인 시기가 있었죠. 아직 인권 사각지대는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데 토를 달지는 않잖아요. 그다음 순서가 동물권인 것이죠. 동물권을 강화하자는 것은 사람의 복지에서 뺏자는 게 아닙니다. 동물과 인간을 대비해서 인간의 문제를 전부 다 해결한 뒤에 동물권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워요.”

- 현재 우리나라 동물의 법적 지위는 어디쯤인가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동물은 법적으로 물건이에요. 민법 제98조는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물건으로 정의하는데, 동물은 유체물에 포함돼 물건이에요. 그렇다 보니 동물을 다치게 하면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적용하고, 보험금을 산정할 때도 대인이 아닌 ‘대물’ 배상으로 다루거든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문제제기가 많았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법무부가 개정안을 발의했어요. 민법 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란 내용의 2항을 신설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4월 여야 합의로 민법 개정안을 우선적으로 심사·처리하는 데 합의를 이루긴 했으나, 심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답답합니다. 동물학대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을 개선하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 동물학대 행위를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하면 경찰이나 관할 구청 민원센터에 신고부터 해야 합니다. 단순 신고에 그치지 않고 고발장을 제출해야 경찰이 수사를 해요. 현장 사진이나 영상 등 객관적인 증거를 남기는 것도 중요해요. 온라인에서 마주한 동물학대 사진·영상은 해당 화면을 캡처하는 것으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요. 학대 행위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피해 동물을 발견했다면 경찰에 요청해서 근처 CCTV를 통해 동물의 상해가 학대로 인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번거로운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동물학대를 목격하고도 신고나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시비에 휘말리기 싫어서’ ‘신고 후 절차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란 이유가 많지만, 동물보호에 관한 의식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죠.”

- ‘동물판 n번방’ 같은 동물학대 행위는 심각해 보입니다.

“동물학대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공유하는 ‘동물판 n번방’ 같은 사건은 그 파급력이 크고 모방 범죄를 야기합니다. 현재 청소년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돼 있고, 학교폭력처럼 학대 대상만 바꿔가면서 괴롭히는 양상이에요. 심각성은 학대에 너그러운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 혐오를 더욱 용인하고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동물학대가 훗날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고 진술했잖아요. 2019년 1월, 동물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판사가 이례적으로 검사 구형보다 더 강한 처벌을 내린 적이 있어요. 제게 큰 울림을 준 유정우 판사의 판결문 일부를 소개하고 싶네요. ‘동물에 대한 보호와 학대 방지는 단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에서 가지고 있는 도덕적 의식과 의무감에서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전체 사회 구성원의 존중과 배려 및 보호라는 관점에서 인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다.’(울산지방법원 2020.5.8.선고 2019고단3906 판결)”

2017년 9월13일 동물권연구단체 PNR 공동대표 서국화·박주연(오른쪽) 변호사가 ‘인천 개 전기도살 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들고 있다. 박주연 변호사 제공

2017년 9월13일 동물권연구단체 PNR 공동대표 서국화·박주연(오른쪽) 변호사가 ‘인천 개 전기도살 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들고 있다. 박주연 변호사 제공

- 기억에 남는 판결이 또 있나요.

“1·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을 거쳐 동물보호법 위반 유죄가 확정된 ‘인천 개 전기도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개농장주가 도축 시설에서 개를 묶어놓고 개의 주둥이에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대 감전시키는 방법이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잔인한 행위’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죠. 2017년 당시 항소심을 앞두고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제 변호사 경력 10년 통틀어 가장 열심히 쓴 문서라고 자부합니다.”

- 결국 입법이 중요한데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무엇이 달라졌나요.

“눈에 띄는 점은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인데요. 기존 법이 ‘잔인한 방법’ 또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 법에서 열거하는 행위만 처벌했다면 개정법에서는 ‘정당한 사유’를 명시함으로써 그 이외의 죽음은 모두 학대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려인의 동물 사육·관리 의무를 명시하고, 이를 어길 시 동물학대로 처벌할 근거를 마련했어요.”

- 주목할 대목이 또 있나요.

“동물의 죽음에 잔인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 학대로 명시한 것이 희망적인 부분이에요. 이전에는 목을 매달거나 전기봉을 이용한 잔인한 방법의 도살만 금지했다면, 개정 이후에는 잔인성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죠. 개식용 금지 관련 조항과 ‘학대자의 사육금지처분’이 끝내 개정법에 담기지 못한 건 실망스러워요. 학대자가 아무런 제재 없이 동물을 다시 키우고, 심지어 학대받은 동물의 반환을 요청하면 이를 막을 방안이 없는데, 이번에도 무산됐습니다. 동물보호보다 학대자의 재산권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봐야겠죠. 기존 등록제였던 동물수입업·동물판매업·동물장묘업을 허가제로 전환하고, 무허가·무등록 영업의 처벌 수준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입니다.”

- 왜 개식용을 금지해야 하나요.

“개식용 문화가 사라지면 이와 엮인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요. 개농장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문제는 공론화된 지 오래입니다. 사육 환경과 도살 행위는 제가 목격한 동물학대 중 잔인한 걸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혀요. 개들은 땅바닥에 발이 닿을 수 없는 뜬장 속에서 끓이지도 않은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자라고,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됩니다. 분뇨 배출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개농장이 야기하는 환경오염, 개식용을 둘러싼 갈등도 모두 개를 먹기에 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문제는 축산법상 개는 가축이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는 개는 가축이 아니라서 규제 근거가 모호하다는 겁니다. 개고기는 불법인데 개농장은 합법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요. 사회에서 논쟁이 반복되는 동안 개는 어느새 반려동물 지위를 획득했고요. 개식용은 결국 철폐 시기의 문제 같아요. 과거 어쩔 수 없이 먹었다면, 이제는 너무나 많은 대안이 있는 시대 아닌가요? 개고기만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개식용부터 금지하고, 소·닭 다른 가축동물 복지로 나아가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개농장 관련 종사자들의 생계대책은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 동물권에 대한 반감은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 ‘비례의 원칙’을 가지고 이야기 할게요. 비례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 사이에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과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의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누구의 권리를 더 우선해야 하는지를 따집니다. 그게 정말 보호할 가치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한쪽의 권리가 제한이 돼야 되는데 그 제한이 적당한가? 그 방법이 적당한가?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하자 등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현재 법제에서 동물권과 인간의 권리가 대립하지는 않지만 동물 보호나 생명 존중의 가치에서 봤을 때 이 원칙을 적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원의 동물, 마차를 끌어야 되는 말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동물이 평생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인데 저는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 며칠을 굶긴 산천어를 잡는 축제를 즐긴다니 끔찍한 일 아닌가요.”

박 변호사가 반려견 래미를 입양할 당시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올라온 공고. 글항아리 제공

박 변호사가 반려견 래미를 입양할 당시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올라온 공고. 글항아리 제공

- 반려동물 유기 문제가 심각한데요.

“반려동물 유기가 지속되는 건 반려동물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구조가 원인이에요. 펫숍 등 반려동물을 상업적으로 매매하는 행위가 만연하기 때문에 책임 의식을 갖기 어렵죠. 또 하나의 이유는 소유자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동물을 데려오기 때문이에요. 입양 전에 반려동물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장기간 여행에 제약이 생기는 건 괜찮은지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보호자는 물론 관련 업체들의 책임의식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고요. 반려동물을 버리는 건 범죄입니다.”

- 동물권 논의는 어디까지 와 있나요.

“1978년 유네스코는 ‘모든 동물은 동일하게 생존의 권리와 존중될 권리를 가지며, 어떠한 동물도 학대 또는 잔혹행위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선포했습니다. 동물권이 반려동물에 한정된 논의는 아님에도, 아직 우리는 반려동물에 멈춰 있어요. 사실 동물권 신장은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대상으로 논의돼야 합니다.”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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