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여권 인사 100여명이 총집결했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추모의 언어’에 담긴 함의를 통해 오는 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와 문재인 정권 후반기 정치권의 기상도를 짚어봤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이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신 뒤에도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모함을 받고 공작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 검은 그림자는 여전히 어른거리고 있다. 끝이 없다. 참말로 징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언급한 ‘검은 그림자’를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먼저 검찰의 정치보복성 표적수사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던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사기관을 향한 분노를 담은 표현으로 읽힌다. 최근에는 검찰 수사 중인 신라젠 임원들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의혹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보수진영에서 꾸준히 제기하는 상황이다. 검찰이 여권을 상대로 한 추가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배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7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검찰에 미리 ‘경고성 발언’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계획이다.
여권 잠룡들의 추모사에서는 ‘대선의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김부겸 의원은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사에서 지난 16대 총선에서 패한 노 전 대통령에 얽힌 기억을 소환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선거캠프 해단식에서 “한순간의 승리가 모든 것은 아니다. 결코 헛일했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이를 인용하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2012년부터 대구에서 국회의원·시장직에 도전해 온 김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수성갑 지역구에서 승리했으나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봉하마을을 다녀온 뒤 페이스북에 “박원순은 노무현의 영원한 동지”라며 “당신의 뜻을 따라, 생전에 미처 못 다하신 대한민국의 남은 과제를 함께 풀어가겠다”고 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페이스북에 “복잡하고 어려운 갈림길에 섰을 때 당신이라면 어떤 판단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끊임없이 자문한다”며 “그 깊은 마음을 오롯이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부족하나마 당신이 가리키고 만들어 주신 길을 가려 애써본다”고 썼다.
한명숙 전 총리도 봉하마을을 찾았다. 최근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허위 진술을 했다는 고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이 재조명되면서, 여권에서는 ‘한명숙 재조사’ 주장이 분출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추도식 자리에서 ‘나는 결백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한 전 총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다.
권양숙 여사는 21대 총선에서 177석을 확보한 민주당에 대해 “감개무량하다”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권 여사는 이날 민주당 의원·당선인과의 차담회 자리에서 “많은 분이 당선돼 감개무량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노무현재단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의미의 “노발대발”을 구호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