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통한 평화’라지만…국방예산 50조원 돌파의 그늘

2019.12.24 06:00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예산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방위력개선비는 평균 11% 증가했다. 국방비 증액은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에 대한 카드로 미국산 무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공동기자회견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예산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방위력개선비는 평균 11% 증가했다. 국방비 증액은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에 대한 카드로 미국산 무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공동기자회견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40조
2년 반 만에 약 10조원 늘어
단계적 군축 합의와 ‘다른 결’
북 “뒤에선 군비증강” 반발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 증액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40조3347억원이던 국방예산은 이후 연평균 7.5%씩 증가세를 보이다 2년 반 만에 약 10조원 늘어나 내년에는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한다. 2020년 국방예산안은 지난 10일 국회 의결을 거쳐 지난해보다 7.4% 증가한 50조1527억원으로 확정됐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기조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지난해 남북이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군사적 긴장완화·신뢰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 등 합의와는 결이 다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은 ‘앞에서는 평화타령, 뒤에서는 군비증강’이라며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를 명분으로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 등 각종 도발적 무기 시험들을 진행했다.

‘50조원 돌파’ 자체를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정부가 국방예산 50조원 돌파라는 상징성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예산 편성을 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여기에 여야 ‘4+1’(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바른미래당+대안신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로 국회에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국방예산이 정부안과 동일한 규모로 확정됐다.

국방부는 2020년대 중반쯤 국방예산 규모가 사실상 일본에 거의 상응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50조원을 넘어서는 2020년은 국방예산 역사에 남을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록히드 마틴 사의 스텔스 전투기 F-35A.

록히드 마틴 사의 스텔스 전투기 F-35A.

■ 고무줄 증액

방위사업청이 요구도 안 한
배상금 예산 319억 증액 등
예산 타당성 검증하기보다
특정액수 맞추려 노력한 듯

정부가 국방예산 타당성을 제대로 검증하기보다는 특정 액수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예산부처가 방위사업청이 요구하지도 않은 배상금 명목으로 319억2000만원을 증액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방위사업청은 내년도 업체들과의 소송 배상금 예산으로 당초 1000만원을 잡았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민홍철 의원과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최근 3년간 배상금 평균치 등을 감안해 약 110억원의 예산을 반영해줬다.

그런데 막판에 정부가 2020년도 배상액을 기타행정지원 명목 예산 319억2000만원으로 대폭 늘려서 확정했다. 이에 대해 “상임위·예결위에서 요구된 증액 규모의 3배를 정부가 임의로 증액한 것은 기획재정부가 실질적으로 증액‘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헌법상의 증액‘동의’권을 초월한 권한행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술정보통신체계(TICN)에서도 13억원이 근거없이 증액됐다. 2019년 사업타당성 중간점검에서 소대장 무전기는 협대역 무선방식(NNW) 개발 이후 양산하기로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업비 13억원이 삭감되지 않은 채 전술정보통신체계 예산에 포함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방위력개선비 평균 증가율은 11.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정부 9년간 평균 증가율 5.3%의 약 2배다. 국방부는 “핵심 군사력 건설 소요가 빠짐없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초 방위력개선비를 ‘고무줄 늘이기’식으로 늘렸다가 지적을 받자 일부 예산을 전력운영비로 이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방위력개선비는 국회 심사과정에서 정부 증액 요구액 가운데 111억원이 줄어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전력운영비가 똑같은 액수인 111억원 늘어났기 때문이다.

해상작전헬기 사업은 정부안 2298억원에서 153억1000만원이 줄어든 2144억9000만원으로 확정됐다. 당초 야당인 한국당은 2019년도 해상작전헬기 예산 433억3900만원 전액이 집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예산으로 연차별 투자계획 1777억4200만원보다 520억5400만원을 증액 편성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이월규모 등을 감안해 953억원을 내년 예산에서 감액할 것을 추진했으나, 여야 ‘4+1’ 예산안 강행처리로 좌초됐다. 방사청이 해상작전헬기를 전력화가 시급한 ‘핵·대량살상무기(WMD) 대응전력’으로 분류한 것도 의문이다. 예산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꿰맞추기식 분류로 보인다.

2028년까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보라매사업(KFX)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방사청은 내년도 예산에서 당초 중기재정계획보다 보라매사업비를 3018억3300만원 증액했다. 한국당은 이 액수가 인도네시아의 KFX 분담금 미납액 3010억원을 벌충하기 위한 예산이라고 의심하고 이를 삭감하려 했으나 예산안 강행처리로 불발됐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3018억원은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미납액으로 인한 것이 아닌 시제기 제작 등 현 사업 진행 단계를 고려한 실소요 재원이라고 설명했다. 개발 일정상 2020년에는 시제기 제작에 재원이 집중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KFX 총사업비는 8조8304억원으로 국고에서 60%(5조3627억원)를,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각각 20%(1조7338억원)를 부담할 예정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2019년 상반기까지 당초 납부 예정액 5282억원 중 2272억원(43.0%)만 납부해 미납액이 3010억원에 달하고 있다. 향후 분담금 미납에 따른 연구·개발비 부족으로 사업 추진상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인도네시아 분담금 미납 사태에 대비해 임의적으로 예산을 증액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보잉사의 대형공격헬기AH-64E 아파치 가디언.

보잉사의 대형공격헬기AH-64E 아파치 가디언.

■ 미제 무기 종속

국방예산은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국방예산이 20조원에서 30조원을 돌파하는 데 6년(2005~2010년), 30조원에서 40조원 시대를 여는 데 다시 6년(2011~2017년)이 걸렸다. 하지만 50조원 시대는 이의 절반인 3년 만에 다가왔다.

한국이 국방예산, 즉 ‘국방비’라고 부를 수 있는 금액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부터다. 국방비가 처음 집계된 1970년 국방예산은 1024억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50년 만에 490배로 늘어났다.

2006년 방사청 개청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 따라 국방예산은 크게 증가했다. 국방비는 매년 1조원대 상승폭을 기록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조5000억~2조원대 증액이 이뤄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3년 동안 방위력개선비는 평균 11.0% 증가했다. 이는 앞선 두 정부(2009~2017년)의 연평균 증가율인 5.3%의 2배 수준이다. 이는 무기 도입 비용이 급상승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의 국방예산 규모는 세계 10위 수준이다.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약 2.5%가 국방예산이다. 일본 국방예산은 GDP의 1% 수준이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요국이 GDP의 1~2%만을 국방예산으로 편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경우 경제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해외 무기 구매의 약 78%를
미국산 무기 사는 데 사용
막대한 운용비 드는 첨단무기
배보다 배꼽 커지는 상황 우려

국방비 증액은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군의 무기체계와 군사전략이 미제 무기체계와 군사전략에 더욱더 종속돼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13년 동안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미국산 무기를 많이 구매했다. 국방기술품질원 등의 자료를 보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전체 해외 무기 구매액의 약 78%인 35조8345억원을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했다.

한국은 이미 미국 록히드 마틴의 스텔스전투기 F-35A, 노스롭 그루먼의 고고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 보잉의 대형 공격헬기 AH-64E 아파치 가디언과 해상초계기 P-8A, 각종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수백발 등을 구매했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록히드 마틴의 F-35B 도입을 염두에 두고 경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1조~2조원이 투입될 지상감시정찰기 사업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카드로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 역시 록히드 마틴의 MH-60R 시호크 도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해군은 레이시온의 이지스함 탑재 미사일인 SM-3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첨단 무기는 도입 이후 운용·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총 유지비가 도입비용을 넘어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