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 생활, 장마당 없이는 안 돌아간다”

2019.01.09 06:00 입력 2019.01.09 07:18 수정

탈북자가 본 북한의 변화

아버지 월급으론 쌀 1㎏도 못 사

어머니가 국수장사로 생계 보태

북한 평양 낙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이 인파와 상품들로 꽉 차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평양 낙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이 인파와 상품들로 꽉 차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중국 지린성 옌볜인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 김미옥씨(25·가명)는 2015년 탈북했다. 가족의 ‘배고픈 삶을 지탱해준 터전’은 북한 시장경제의 씨앗으로 평가받는 장마당이었다. 북한은 이미 시장경제 없이는 돌아가기 힘든 경제가 됐고, 한반도 긴장 완화 뒤 남북 경제협력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금 북한 내부 변화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을까. 김씨와 인터뷰를 통해 북한 사정을 들어봤다.

1994년 김씨가 태어났을 때 북한은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1991년 소련 해체를 비롯한 사회주의권 붕괴로 지원이 끊기고 홍수·가뭄까지 겹치자 북한 사회를 지탱한 계획경제의 기둥인 배급제가 무너졌다. 주민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자력갱생해야 했다. 대표적 활로가 시장경제적 요소인 장마당이다. 김씨는 지난 5일 경향신문과 만나 “북한 주민의 생활은 장마당 없이는 돌아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일성 주석이 “나라의 보배”라고 불렀다는, 북한의 최대 철광인 무산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 월급으로는 쌀 1㎏ 사기도 힘들었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그나마 큰 광산에 다녀 하루에 1인당 600g씩 주로 옥수수로 배급받았지만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주민들은 식량 등 생필품을 구하려고 자연스레 장마당으로 모여들었다. 김씨는 “광산에서 쓰는 기름, 철 등 자재를 빼돌려 장마당에 판다. 한두 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식이라 단속이 어렵다. 단속하는 사람들도 훔치도록 놔두고 벌금처럼 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국수장사를 해 돈을 벌었다. 옥수수를 들고 가면 국수를 뽑아주는 기계를 갖춘 작은 공장이 있었다. 김씨는 “무산군에선 남쪽의 라면 같은 것이 강냉이국수”라며 “세 끼 중 한 끼는 강냉이국수를 먹었다. 면발을 뽑을 때 열가공 처리가 안돼 면발이 거칠었다”고 말했다.

◆“화폐개혁 망해봐서 안다…자유로운 경제활동 이뤄졌으면”

하나둘 늘어나던 매대가 장마당 골목을 다 채우고 밖에까지 커져갔다. 사실상 장마당이 공식화되면서 자릿세를 받는 관리원도 나타났다. 처음 매대를 살 때도 돈을 내고, 매일 장세를 내야 했다. ‘장마당에는 고양이 뿔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필품 외에 가전제품 등 공산품도 사고판다.

접경지역인 무산군 장마당은 주로 중국 위안화로 바로 거래가 이뤄진다. 특히 의류, 콩기름처럼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은 위안화 거래가 일반적이다. 2009년 11월30일 갑작스러운 화폐개혁(구권 100원=신권 1원) 이후 북한 돈에 대한 주민들 신뢰가 떨어진 것도 위안화 거래가 늘어난 배경이다.

화폐개혁으로 집마다 신권 2500원을 줬다. 5000원 하던 쌀이 50원이 됐으나 그 뒤로 51원, 52원 등으로 계속 올랐다.

김씨는 “당시 장사가 잘 안된 부모님이 돈이 없어 돼지 한 마리를 팔았는데 나중에 계속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돼지를 판 돈이 양말 한 켤레 값도 안됐다”고 말했다. 현물을 가진 이들은 부자가 됐고 북한 돈을 가진 이들은 가난해졌다.

김씨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한 국영기업소로 배치됐다. 그러나 김씨는 “국영기업소에는 적만 두고 출근하지 않는 대가로 매월 수만원을 냈다. 출근 대신 장마당에서 어머니를 도와 국수를 파는 등 별도로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기업소에 매월 일정 금액을 내는 대신 출근 및 사회적 과제 동원을 면제받는 이른바 ‘8·3 노동자’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협동농장이나 기업소에 자율권을 일정 부분 주는 개혁조치를 취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시장경제 확산과 개혁·개방 가능성은 높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김씨도 “평양 같은 데는 모르겠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화폐개혁 등으로 망해봐서 나라 말을 믿지 않는다”며 “다들 자기 잇속부터 채우려고 한다. 시장경제로 갈 거 같다”고 말했다. 또 “김일성·김정일 우상주의도 세대가 바뀌면서 통제가 안될 것 같다”며 “이제 사람들이 악도 나고, 울분도 나서 모이면 ‘백성 피땀으로 배가 불렀다’는 이야기도 한다. 예전에는 못했는데…”라고 지방의 분위기를 전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김씨는 개혁·개방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김씨는 “북한은 쌀밥도 먹을 수 있게 절대빈곤 자체를 해결할 필요가 있어 (외국자본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는 기계화, 자동화가 돼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많이 배우지 못해 다 자기 힘으로 해야 할 텐데 일자리가 줄지 않을까,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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