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비서 반대…출근 사흘째부터 이 총리에 잔소리 쏟아냈죠”

2018.11.10 06:00 입력 2018.11.10 11:01 수정

정운현 신임 총리비서실장

정동길 걸으며…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기 전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서울 정동길을 산책하며 역사전문가의 정치권 입성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정동길 걸으며…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기 전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서울 정동길을 산책하며 역사전문가의 정치권 입성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흙 묻은 발로 귀인 침실 습격한 기분…40년 피운 담배도 끊어
그분이 ‘길동무’라고 한 건 친근감의 표현일 것
책임 총리 맞아…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
차기 대권 1위 좋은 거 아니라 하니 본인도 당혹스럽다고 해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59)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딸깍발이’라고 부른다. 도끼를 옆에 놓고 광화문 앞에 꿇어 엎드려 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면암 최익현 같은 사람. 말이 좋아 꼬장꼬장한 선비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판에 박힌 공직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새 일을 즐거워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언론재단에서 쫓겨난 지 만 10년을 백수로 지내며 새벽녘까지 글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진 생활을 하고 있다.

오전 5시20분에 기상, 6시30분에 집을 나서면 7시 반에 광화문 청사에 도착한다. 고3 때부터 만 40년간 피워오던 담배도 거짓말처럼 끊었다. 아직 얼떨떨한 심경을 “흙 묻은 발로 귀인의 침실을 습격한 기분”이라고 했다.

요즘 그가 페이스북에 쓴 ‘길동무’ 얘기가 화제다. 글을 쓰게 된 배경은 다소 뜻밖이었다. 총리비서실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자 지인들조차도 억측을 쏟아냈다. 혹시 이 총리와 사돈 간이냐, 누가 청와대에서 꽂아줬냐며…. 결국 실상을 가감 없이 쓰기로 했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이제 현실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데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소임을 끝내면 미련 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일, 국회 정무위 출석을 마치고 청사로 복귀하던 그를 서울 정동 경향신문 근처에서 만났다. 집무실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담스럽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 정치로 뛰어든 역사학자

정 실장은 역사서적을 약 30권 펴낸 언론인 출신의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다. 3·1혁명 100주년인 내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출간한다. 백수생활 10년을 그는 유명인사 회고록 대필 등 글품을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평생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길이, 그것도 한순간에 펼쳐졌다. 정 실장은 백수 시절에 두 권의 소설을 펴냈다. 소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남북정상회담, 청와대의 광화문 청사 이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을 다뤘다. 심지어 김 위원장이 연세대 강당에서 연설하는 내용도 담았다. 역사가의 상상력은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다. 과거를 끌어와 오늘을 해석했던 역사전문가 정운현. 그는 이제 미래를 당겨와 오늘을 해석해야 하는 ‘정치인’의 운명을 짊어졌다.

- 친일 문제 전문가가 정치권 진입을 택했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 같다.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에 국회의원 출마 등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국정 고위책임자가 나를 알아주고 도와달라는데 이를 거부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어서 돕기로 한 것뿐이다. 이걸 정치하겠다는 결단으로 풀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 총리비서실장은 고위급 공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시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나는 정치의 영역에서 일을 할 뿐이지 의도를 갖고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정치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에 관심 있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총리가 부족하다고 한 부분을 채워주고 보좌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길거리·생활 속에서 살아 뛰는 게 역사, 정치와 다르지 않아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판결 비난하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을사늑약과 한·일병탄조약은 국제법 준수했냐고 묻고 싶어

- 역사와 정치, 차이를 생각해 봤나.

“역사는 학문이고 정치는 현실이라고 여기기 쉬운데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은 3·1혁명 100주년이다. 100년이나 지난 일을 두고 정부, 학계, 시민단체 등이 나서서 거액의 국가예산을 써가면서 널리 알리려 하지 않나. 길거리에서, 현실정치에서, 생활 속에서 펄펄 살아 뛰는 게 역사다.”

- 기자 이력은 그리 비중 있게 소개하지 않은 것 같다. 언론 생활은 정 실장 인생에 큰 의미가 없었나.

“오늘의 나를 만든 뿌리는 기자다. 조사부 기자로 출발해 만 10년간 내근기자로 일했다. 혼자 독립운동단체를 뛰어다녔다. 1990년대부터 30년째 ‘비공인 보훈처 출입기자’인 셈이지(웃음). 80년대 말부터 친일파 연구를 시작했다. 다니던 신문사에서 만든 현대사연구소에서 ‘실록 박정희시대’를 연재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및 좌익경력을 살필 기회를 가졌다. 고서점을 다니며 자료를 사 모으는 과정에서 희귀자료 소장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들을 통해 적잖은 특종기사를 썼다. 조선총독부 청사에 걸려 있던 마지막 일장기를 입수해 소개했고, 파인 김동환의 아들에게서 유명문인들의 육필편지 200통을 받아 신문에 연재했다. ‘자료쟁이’인 조사부 기자와 역사의 만남, 최고의 궁합이 아니었나 싶다.”

- 한·일관계만큼 청산(과거)과 우호(미래)가 교차하는 고차 방정식도 드물다.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대법원 판결인 난 이후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일본 고위인사들의 과도한 언사는 국익 차원일지 몰라도 우리로선 용납할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상 문제가 있다면 을사늑약이나 한·일병탄조약은 과연 국제법을 준수했다고 할 수 있을까.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조약 이후 근대 한·일관계는 비상식적으로 형성됐다.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따라 한·미·일관계로 다뤄지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비합리적인 관계로 변질됐다.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면 얼굴 붉힐 일은 붉혀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의 당당한 대일 자세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 국가보훈처가 5년 동안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전체 독립유공 서훈자는 1만5000여명이다. 이들을 다 조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즉 김구, 유관순, 안중근 같은 분들은 조사할 필요가 없다. 그간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일행적, 완벽한 가짜(동명이인 포상 등), 자료미비,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 소위 ‘문제 인물’은 최대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을 동원하면 1년 안팎이면 가능할 것 같다. 독립유공자 포상 논란은 문재인 정부에서 끝내야 한다. 이런 지저분한 일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선 안된다.”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지난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 내부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지난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 내부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 이낙연 ‘총리’의 비서실장, 총리 ‘이낙연’의 동행자

지난 10월18일 이 총리와 정 실장은 광화문 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약 55분간 단독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리는 정 실장에게 다짜고짜 ‘길동무’가 돼달라고 했다. 총리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거였다. 7년 전 언론계 인사들과 어울린 이후 두번째 만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 총리는 정 실장에게 “정형은 내게 없는 두 가지, 역사지식과 기개를 가졌소”라며 거듭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 ‘길동무’. 노무현 정부 초창기 당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나는 대통령의 말동무”라고 한 이후 공직사회에선 낯선 말이었다. 더군다나 이 총리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에 올라 있다. ‘길동무’라는 단어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정 실장을 단거리(비서실장) 선수로 발탁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 이 총리가 정 실장의 기개와 역사지식을 높이 산다고 했다. ‘정운현의 기개’는 무엇인가.

“별것 아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옳다면 ‘옳은 것 같다’고 둘러대지 않고 분명하게 ‘옳다’고 직설화법을 쓴다. 팩트가 중요한 직업을 오래 해서 그런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치권에 왔다고 해서 기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현실정치에서 ‘기개’가 강하면 자칫 불협화음이 나기 쉽다.

“기개의 바탕은 정직과 용기이다. 왜 학자만 올곧고 기개가 있어야 하나. 기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 누구에게나 다 있다. 다만 제대로 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과거 어두운 시절에는 기개를 펼치다 탄압받기 일쑤였다. 요즘엔 앞뒤를 너무 재다보니 그렇다고 본다. 오로지 출세가 목적인 사람들을 봐라, 대부분 정직하지 않고 비굴하다.”

- 총리비서실장 5일째다(첫 인터뷰 후 며칠 지난 9일 다시 물었다). 발탁 이유를 실감하고 있나.

“출근 사흘째부터 총리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막걸리 좀 적당히 드시라, 좀 쉬어가며 일하시라고 했다. ‘약속대로’ 총리는 잘 경청한다. 여느 비서들과 달리 내가 판단해서 처리하는 일이 많다. 총리가 힘도 실어준다. 장차관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총리가 직접 나서서 소개해줬다.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했을 때도 소감을 말할 기회를 줬다. 좀 심하게 말하면 총리가 나를 수행하는 듯도 하다(웃음). 어깨가 더 무겁다.”

- 정 실장이 본 이낙연 총리, 어떤 사람인가.

“솔직히 말해 잘 모른다. 그간 이 총리는 내게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출신 정치인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겠나. 언론계 출신의 괜찮은 선배 그 이상의 인식은 없었다. 이제 이 총리를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연배, 그 직위에 있는 사람 치고 그렇게 솔직한 분을 보지 못했다. 친분도 없는 후배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다.”

- ‘길동무’는 큰 뜻을 염두에 둔 말로 해석된다. 현재(비서실장)를 넘어 미래(차기 대선)까지 함께할 생각인가.

“아둔해서 그런 뜻까지 있는 줄은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인연이 맺어진 이상 이 총리가 원한다면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내 역할은 입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주 임무일 테지만.”(정 실장은 비서실장을 제안받은 자리에서 “총리님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또 1등입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선배님, 자꾸 1등 하는 게 좋은 거 아닙니다.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어쩌려고 그러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그렇죠, 나도 좀 당황스러워요”라고 답했다. 리더와 비서의 일반적인 대화법은 아니다)

- 이 총리의 ‘동행’ 제안이 미래를 위한 밑그림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나. 호남 출신 총리, 비호남 출신 비서실장 조합도 예사롭지 않다.

“비서실장을 제안받은 자리에선 전혀 그런 생각 못했다. 국회의원 4번, 도지사, 국무총리까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력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사를 보면 이런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장차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갈래가 타지고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나는 정치적으로는 쓸모가 그리 많은 사람은 아니다.”

- 편치 않은 질문 계속하겠다. 비서실장 자리가 ‘잠룡 이낙연의 동행자’라면 대선가도를 역사가와 함께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너무 앞선 가정이다. 이 총리가 ‘길동무’라고 한 건 친근함의 표현일 수 있다. 다만 내 나름의 생각은 있다. ‘역사’는 우리 사회의 크고 뜨거운 이슈다. 특히 장차 남북관계가 진전될수록 그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오랜 외세의 지배와 분단의 세월, 그 치욕스러운 역사의 누더기를 걸치고는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

- 리더와 비서실장 관계의 롤모델로 선조와 율곡 이이를 꼽았다. 율곡은 직언을 많이 한 신하지만 선조는 정치적 기반이 허약한 임금이었다. 이 총리와 다른 스타일 같은데.

“맞다. 선조는 그래서 고집도 셌고 잘 휘둘리기도 했다. 중요한 건 율곡처럼 하겠다는 내 의지다. 율곡은 임금인 선조를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한 조언도 했다. 필요하다면 이 총리에게 극언조차도 머뭇거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

■ 청와대 정부와 실세 총리

내각제 요소(국무총리 직제, 국무회의, 정부 입법권 등)를 가미한 한국형 대통령제에선 국무총리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행정권은 행정부가 아닌 대통령에 집중돼 있다. 책임 총리도 사실상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실세 총리를 강조하며 분권을 강조했지만 이해찬 전 총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통령의 그림자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총리의 정치적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청와대 정부’ ‘보이지 않는 내각’이란 말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이 총리는 실세·책임 총리가 맞나.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총리가 실세 총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몇 차례 국무회의, 긴급현안조정회의 등에서 보면 실세 총리 위상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전 총리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현안점검회의 주재, 각료제청권 행사, 대통령과의 정기적 주례회동 등이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로 거론되는 것도 실세 총리 역할에 플러스가 되는 것 같다.”

- 그러나 현실은 ‘청와대에 가려졌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각각 제 할 일이 있다. 대통령이 총리를 뽑았으면 응당한 권한을 주고 뒷바라지를 잘해줘야 한다. 총리가 역할을 잘해서 세간의 호평을 받게 되면 그 에너지가 청와대로 간다. 반대로 청와대가 총리를 포위하거나 묶어둘 경우 비난은 청와대 몫이다. 힘없고 인기도 없는 총리, 청와대가 과연 그런 총리를 원할까. 아닐 것이다. 둘은 운명공동체다.”

- 총리비서실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총리를 보좌하고 총리실 직원들을 이끄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 이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총리의 손이 닿지 못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 흔히 비서를 두고 ‘얼굴 없는 존재’라고 한다. 의견을 내는 것도 금기시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전통적인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비서는 보필하는 분의 진면목이 드러나도록 적극 나서야 할 필요도 많다고 본다. 요즘 세상에 숨어서 뭘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월권 논란에 대한 의견은.

“비서가 ‘얼굴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데 반대하지만 임 실장 논란은 궤가 다른 문제다. 비서실장이 선글라스 끼고 대통령이 없는 때 장관들을 데리고 움직인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