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지금 해야 비용 가장 적다”

2021.10.31 10:01 입력 2021.10.31 10:02 수정
*경향신문은 한국의 외교안보, 경제, 군사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분석’, ‘다음 정부를 위한 정책 제안’ 등을 담은 연속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인터뷰는 ‘외교안보에는 좌우가 없다’는 원칙하에 다양한 진단과 대안을 가감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겠습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한반도를 둘러싼 현상 변경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대화는 아직 미완성”이라며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여러차례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밝힌 만큼 이번 정부의 마지막 역점 사업은 대북정책이 될 것이라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한미는 해당 문제를 둘러싼 의견을 주고받는 등 논의를 진행 중이다. 종전선언 ‘문안’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종전선언은 여러 이견도 낳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성과 외에 평화를 위한 실질적 변화는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플라자 프로젝트’ 5회는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와 ‘한반도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26일 국립외교원에서 진행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대북정책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봉근(이하 ‘전’) “정부는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입구라고 생각한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어 불확실한 상황이다. 긍정적인 면을 말한다면, 종전선언 자체가 정치적 선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공감대만 형성되면 합의에 도달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있다.

“보통 국가 간 선언이 나오려면 정치적 조율 작업이 있어야 한다. 문안 협의가 사실이라면 미국의 지지를 이미 확보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문안을 만든 뒤 양국 정상의 최종 확인을 받고, 이를 북한에 보여주고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한국에 종전선언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따라 평화체제를 위한 구체적 조치가 필요하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실질적 조치라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불가역적인 영구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하고 싶은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종전선언이 선결조건인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 문제와 관련된 2개의 큰 축이다. 그런데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불가능하고,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도 어렵다. 애초에 평화체제 수립 이야기가 왜 나왔나.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 북미, 북일 관계가 모두 적대관계다. 그러니 핵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비핵화 진전은 적대관계에 대한 정상화, 즉 평화체제 수립과 같은 것이 된다. 현재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가 어려우니 핵시설 동결과 폐쇄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평화체제 측면에서도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종전선언이다. 다만 나는 북핵 동결선언과 남북,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맞바꾸는 패키지 타결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기 마지막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기 마지막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을 협의할 유인이 있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이미 ‘비핵화 합의’를 너무 많이 어겼다. 미국은 ‘북한이 파는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대로 북한 입장을 보면,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전에 스스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등의 선제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엄청난 기대감으로 하노이에 갔는데 거기서 합의가 안 이뤄졌다. 북한 나름대로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합의안에 대한 보장이 없다면 앞으로 이러한 행동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합의가 어려운 것 아닌가.

“대부분 안 될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기회는 있다. 북한은 나름대로 핵 활동 동결이라든지 비핵화 초기 단계를 언제든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 대미 도발 역시 굉장히 절제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경제, 식량, 보건 위기가 있다. 지난 7월에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위급 정치포럼(HLPF)’에 ‘자발적 국가검토(VNR)’ 보고서도 제출했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밝히고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역시 보상 준비가 돼 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이 미국이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 정책을 택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할 뜻을 밝혔다. 미국 나름대로 북한과의 대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결국 북미 모두 서로에게 내어줄 것은 잘 갖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인데 한국이나 중국이 이를 잘 조율한다면 기회는 열려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를 계승한 것 아닌가.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취하며 북한과 대화를 거부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오바마는 취임하며 냉전시대 적대관계에 있었던 미얀마, 이란, 쿠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중 북한과만 관계 정상화를 못 했다. 오바마의 의지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당시 김정일 사망, 김정은 승계 작업이 이어지며 북한이 외교에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 보수 정부 역시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주문하며 미국의 대북 개입이 멈춰선 것이다.”

-그렇다면 북미 대화의 재개는 언제, 어떻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

전 “대화를 촉발할 매개가 있어야 한다. 한국이 중계자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북미가 직접 물꼬를 트는 방안이 더욱 현실적이다.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서’다. 새로운 내용이 없어도 된다. 싱가포르 합의를 승계한다고 했기 때문에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추진 의사를 재확인하고,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면 된다. 북한은 스스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실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러한 북한의 의지를 믿는다는 메시지도 담기면 좋다. 궁극적으로 이를 진전시키기 위한 실무협상을 열자고 한다면 김정은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 있어 북한 비핵화는 주요 국정과제다. 미국이 준수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측면에서도 북한은 최대 위협 요인이다. 편지 한통 써서 이러한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면 이보다 가성비 좋은 외교는 없을 것이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 트럼프까지 미국 대통령치고 북한에 친서를 보내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다. 또 다른 방법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다. 오바마는 냉전 시기에 성립된 적대관계 청산에 강한 의지가 있다. 그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특사 역할을 한다면 상징성뿐만 아니라 효율성 높은 외교가 될 것이다. 현재 북미관계는 누군가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사람이 필요하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 10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사진공동취재단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지난 10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사진공동취재단

-중국 입장은 어떤가.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비핵화, 평화와 안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입장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냉전의 유산’이라든지 ‘유엔사가 왜 필요하냐’는 식이다. 한국 내 미군의 역량 강화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과 우리의 입장이 일치했지만 앞으로는 중국의 압박에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은 국가적인 축제를 앞두고 주변국에서 분쟁이 생기길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북중 국경이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봉쇄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 상태라면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가 어려울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동북아 보건방역협의체’를 제안한 바 있다. 북한 방역 문제를 동북아 방역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것인데 이를 지역 기구화할 수 있다. 협의체에 북한 참여를 유도해 방역 문제를 해결한다면 북한 선수단이 동계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 또는 남북미중 고위급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주문하는 국내 여론도 많다.

“지난 30년의 추세를 보면,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 역량을 증강시켜왔다. 우리는 기다리면 이길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략적 방치’ 정책도 취해봤다. 압력을 가하면 북한이 망하거나 비핵화를 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북한은 망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때는 북한이 핵무기 한개 가질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북한에 핵무기가 50개 정도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북한은 8년마다 핵 역량이 2배씩 증강되는 상황이다. 또 8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것인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 경제·외교적 보상은 불가피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미루지 말아야 한다. 지금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것이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술핵 도입은 어떤가. 대선 공약으로도 나왔다.

“북핵 대응이 불안하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다. 실현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전술핵 대부분을 회수했다.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회수한 후 단 한 번도 재도입을 말한 적이 없다. 관리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방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제로다. 설사 전술핵을 도입한다고 해보자. 전술핵을 어디에 가져다놓을 것인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지방자치 문제로 난리인 상황에서 전술핵을 대체 어디에 갖다 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전술핵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은 왜 생긴다고 보나.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해 있다. 과거에나 핵이 강대국 지위의 상징이었지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비도덕, 파괴의 상징에 더욱 가깝다. 한국이 중견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규범이다. 우리가 이를 스스로 깰 이유가 있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180도로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전술핵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것이다.”

전봉근 교수 책 <비핵화의 정치>

전봉근 교수 책 <비핵화의 정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잠정합의를 통한 단계적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미 국무부 장관인 토니 블링컨이 트럼프 정부 시절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논평을 쓴 적이 있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타고 싶다면 이란 핵합의를 보라’는 내용이었다. 이란 핵합의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한꺼번에 하면 안 되니까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 대부분은 이란 핵합의가 만들어질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도 단계적 방식으로 보조를 맞추면 좋다. 하노이회담 등에서 나왔던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을 모아 1단계 잠정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18년 판문점 선언 이 2개 합의의 문구를 합치면 훌륭한 남북기본협정이 만들어질 것이다. 상호 내정불간섭, 군사위원회 등을 만들자고 하는 내용을 포함해 협정을 체결하고 국회가 비준한다면 남북관계가 안정화될 것이다.”

-다음 대통령에 조언한다면.

국제정치와 한반도 상황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외교안보정책은 대통령 고유의 영역이고, 역할과 재량권이 절대적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지도자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에 대한 비전과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난 70여년간 한국외교는 초강대국 미국을 후원자로 두며 손쉽게 국가안위와 번영이 보장되는 외교를 했다. 하지만 오늘 한국은 공세적인 중국, 과거사는 잊고 한국을 통제하려는 일본, 핵무장한 북한, 부활하는 러시아에 둘러싸인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미국은 미중 경쟁에 집중하며, 한국에 줄서기와 상호성을 요구한다. 미국이 더 이상 관대한 후원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진보는 평화우선, 보수는 안보제일의 기조하에 대북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두 정책의 절충점이 필요하다. 안보만 강화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보딜레마를 통한 군비경쟁만 심화시킬 수 있다. 평화우선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가 북한과 화해한다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대북정책에 있어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져야 한다. 대전략은 어느 한 개인이 주장하는 전략이 아닌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전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지속가능한 전략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민주당의 대북정책, 국민의힘의 대북정책이 따로 있다. 이중에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대전략은 없다. 대전략이 확립되면 민주당, 국민의힘 어디가 정권을 잡든 대북정책이 왔다갔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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