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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여성 후보 99명 ‘14.7%’ 불과

21대 총선 지역구 19%서 대폭 후퇴

헌정 후 여성 의원 꾸준한 증가세 ‘제동’

거대 양당, 공직선거법 권고 이행 ‘전무’

전문직 한정 · ‘험지행’ 경향도

헌정 이후 꾸준히 증가했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정체하거나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도 한국의 여성 정치인 비율은 전세계 평균을 밑도는데, 이보다 떨어지게 되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교통신호등이 일제히 빨간 불을 가리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교통신호등이 일제히 빨간 불을 가리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 등록 현황을 보면 총 254개 지역구에 등록한 699명의 후보 중 여성은 99명으로 14.7%에 불과했다. 21대 총선 당시 지역구 공천자 중 여성 비율이 19%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들었다.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5대 국회에서 단 3%였던 여성 의원은 16대에서 5.9%로 늘고, 17대 들어 처음으로 두자릿수(13.3%)를 기록했다. 이는 법 개정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여성 할당 비율을 강제한 결과다. 2000년 2월 정당법에 처음으로 여성 후보 공천 할당을 명시한 데 이어 2004년부터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을 개정해 비례대표 여성 할당 비율을 50%로 확대했다.

이듬해엔 비례대표 여성 후보에게 홀수 번호를 부여하는 남녀교호순번제가 도입됐고, 이에 따라 18대 국회에서 41명(13.7%), 19대 47명(15.7%)이던 숫자는 20대 51명(17.0%), 21대 57명(19.0%)으로 늘었다. 특히 직전 총선에서는 정의당이 비례대표 후보 1번부터 3번까지 모두 여성을 추천하는 등 비례대표 후보 중 여성의 당선 비율이 높아지면서 여성 의원 비율도 올라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해운대살리기’ 지원유세에서 주진우 해운대구갑, 김미애 해운대구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해운대살리기’ 지원유세에서 주진우 해운대구갑, 김미애 해운대구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는 여전히 낮다. 19%라는 여성 의원 비율은 국내에선 ‘역대 최다’ 기록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3.8%)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국제의회연맹(IPU)이 발표한 세계 여성 국회의원 순위를 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186개국 중 120위였다.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낮고, 인구의 절반이 과소 대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여성 의원이 적은 이유는 지역구에서 여성을 공천하는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여성 의원을 살펴보면 지역구 29명, 비례대표 28명이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석은 300석 중 총 47석에 불과하고, 그나마 올해는 1석 줄었다.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구에서 여성을 추천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세계 평균 밑도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 이번에는 ‘하락 전망’ [플랫]

현재 지역구에 대해서는 전체의 30%를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상 권고 조항만 있을 뿐, 비례대표 할당처럼 강제 조항은 없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양당은 이 조항이 생긴 2005년 이후 한 번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정당 내부의 자정 작용도 없다. 이들 정당은 모두 당헌에 지역구 선거에 30% 이상 여성 공천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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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정치 영역에서 성별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후보자 공천할당제를 의무화하라고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에게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구 여성 공천은 더불어민주당이 16.7%, 국민의힘이 11.8%에 그쳤다. 30% 기준을 넘긴 건 녹색정의당(41.2%)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선거 운동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왕십리역 광장에서 열린 전현희 부보 유세에 율동과 함께 ‘기호 1번’을 손으로 그리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선거 운동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왕십리역 광장에서 열린 전현희 부보 유세에 율동과 함께 ‘기호 1번’을 손으로 그리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여성 후보들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실제 당선되기 어려운 지역에 공천된 것도 문제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 후보자의 직업을 보면 정치인이 42.4%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국회의원(26.3%), 변호사(8.1%), 약사·의사(3.0%) 등이었다. 남성이 농·축산업, 운수업, 수산업, 회사원 등 다양한 직군에서도 공천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여당-영남, 야당-호남의 지역 구도 속에서 여성 후보자를 당선 가능성이 떨어지는 ‘험지’로 공천하는 경향도 보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지적 관점으로 차별과 혐오 청산을 주요 의제로 삼으리라 예상되는 후보자들은 극히 소수”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 유권자들은 여성 정책을 고려해 투표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월 공개한 ‘여성 유권자의 세대별 투표행태 변화와 정책 투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여성 유권자 52.7%는 ‘향후 선거에서 여성정책을 고려해 투표하겠다’고 답변했다. 가장 필요한 여성정책을 묻는 항목에는 ‘여성 폭력 예방 근절과 피해자 보호’(87.4%·복수응답)를 꼽았다. 신 교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의할 수 있는 ‘정치 공백’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며 “22대 국회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지워진 성평등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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