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존재가 소중한 건 인간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2018.05.17 20:47 입력 2018.05.17 21:01 수정

물리학, 우주 그리고 인간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20)존재가 소중한 건 인간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물체는 그저 원자들의 집합체
지구가 돌거나, 물체가 자유낙하하는 것은
기쁘거나 슬픈 일이 아니다
우주는 의미 없이 그냥 그런 것일 뿐


물리(物理)는 물(物)의 리(理)를 다루는 학문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기본입자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으며,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우주가 연극이라면 물질과 시공간은 각각 배우와 무대가 된다. 물리의 배우와 무대는 연극과 달리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질은 질량을 갖고, 질량은 중력을 만들며, 중력은 시공간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우주라는 연극에서는 배우가 움직이면 무대가 휘어지고 뒤틀린다.

■ 쿼크에서 원자까지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는 쿼크, 렙톤, 게이지보손, 스칼라보손으로 구성된다. 괴상한 이름들이지만 당신의 몸도 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와 렙톤은 물질을 만드는 레고블록이다. 이들을 서로 붙이고 이어주는 것이 두 종류의 보손이다. 2013년 노벨물리학상은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는데, 힉스입자가 스칼라보손이다. 쿼크가 모이면 양성자, 중성자와 같이 익숙한 입자들이 만들어진다. 전자는 렙톤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 다이아몬드는 탄소로 되어 있는데, 탄소의 원자핵은 양성자 6개, 중성자 6개로 구성된다. 원자핵은 살아있다. 외부로 에너지를 방출하며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사능이라 한다. 우라늄같이 거대한 원자핵은 중성자를 흡수하여 둘로 쪼개지기도 한다. 원자폭탄은 이때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다. 원자핵은 서로 융합하여 더 무거운 원자핵이 되기도 하는데, 이때도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 이것이 태양과 같은 별의 빛을 만드는 에너지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에서는 수소들이 융합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원자핵은 양(+)전하, 전자는 음(-)전하를 띤다. 따라서 전기적 인력으로 서로 당긴다. 태양과 그 주위의 행성들이 서로 중력으로 당기는 것과 비슷하다. 원자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며, 그 모습은 태양계와 흡사하다. 이런 사실을 처음 깨달은 러더퍼드가 전율을 느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자와 인간의 크기 비(比)는 인간과 태양계의 크기 비와 비슷하다. 원자는 소우주였던 것이다.

원자와 태양계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우주는 크기에 따라 적용되는 규칙이 바뀌기 때문이다. 원자세계에서는 양자역학, 거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으로 기술해야 한다. 이 두 역학은 형태만이 아니라 근본철학조차 완전히 다르다. 고전역학은 17세기 후반 뉴턴이 만든 오래된 체계다. 여기서는 시간에 따라 물체의 위치가 연속적으로 변해간다. 힘이 존재하면 운동의 양상에 변화가 생기며, ‘F=ma’라는 한 줄의 짧은 식이 그 변화를 기술한다.

양자역학은 물체의 위치를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기술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물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 것과 우리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분리된다. 우리가 알게 되는 과정을 ‘측정’이라 한다. 예를 들어 원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은 원자가 이미 점하고 있던 위치를 확인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과정이 아니다. 측정 이전에 원자의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대상의 크기에 따라 이들의 중요성이 달라진다. 핵력은 오직 원자핵 내부에서만 중요하다. 원자핵은 원자보다 십만 배 이상 작다. 원자 크기 이상에서는 핵력보다 전자기력이 중요하다. 사실 원자보다 아주 큰 규모에서도 전자기력은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원자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대개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따라서 지구적 규모가 되면 가장 약한 힘인 중력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조화시키고 네 가지 힘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우주를 단 하나의 이론체계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 원자에서 우주까지

원자는 양성자의 개수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 양성자수를 원자번호라 부른다. 양성자가 하나면 원자번호가 1번이고, 수소다. 2번은 헬륨, 6번은 탄소, 79번은 금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자들은 대개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으로 만들어진다. 때로 별이 폭발하며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데, 이때 큰 원자번호를 갖는 원자들이 생성된다. 이런 식으로 원자번호 92번 우라늄까지 만들어진다. 이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자는 인공 핵변환으로 만든 것이다.

원자는 쿼크나 전자같이 더 작은 기본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시각에서 보자면 원자야말로 물질의 근본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산소를 호흡하고 일산화이수소(물)를 마시며 탄화수소를 먹는다. 어찌 보면 세상은 원자들이 끊임없이 쪼개지고 결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원자의 결합과 분열에 의미는 없다. 그냥 물리법칙에 따라 그렇게 할 뿐이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몸도 원자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원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은 전자기력이다. 원자 주위를 날아다니며 원자의 모든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전자의 몫이다. 원자핵은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보유한 채 깊숙이 처박혀 있다. 소듐과 염소 원자가 만나면 소듐의 전자 하나가 염소로 이동한다. 왜 그런지는 양자역학이 설명한다. 일단 이렇게 되면 전자를 잃은 소듐은 양(+)전하를 띠게 되고 전자를 얻은 염소는 음(-)전하를 띠게 된다. 이들 사이에 전자기적 인력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결합된 고체를 염화소듐(소금)이라 부른다.

수소 두 개가 만나면 한쪽 전자가 양쪽 원자핵 주위에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형성된다. 지구 두 개가 만났을 때 각각의 달이 두 개의 지구를 한꺼번에 도는 거랑 비슷하다. 이를 공유결합이라 부른다. 당신 몸을 이루는 물질 대부분은 공유결합으로 되어 있다. 물질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전자들을 한꺼번에 공유하는 경우, 도체(導體)가 된다. 대부분의 금속은 도체다. 이렇게 모든 원자에 공유된 전자들은 도체 내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당신이 지구상 모든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원자들이 결합한 것을 분자라 한다. 분자는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 보이는 물질의 대부분은 눈에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분자나 고분자들의 집합체인 경우가 많다. 지구상의 물질은 대개 복잡한 고분자 알갱이들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암석이나 흙은 알루미늄, 소듐, 포타슘 같은 금속산화물과 규소염의 복합물이다. 지구 내부로 들어갈수록 철, 마그네슘, 니켈같이 무거운 원자들이 많아진다. 쉽게 말해서 지구는 금속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수성, 금성, 화성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암석 행성이다. 하지만 암석형 행성은 우주의 비주류다. 태양계 질량의 대부분은 태양이 가지고 있는데, 태양은 기체덩어리다. 태양계 내의 거대 행성인 목성, 토성 등도 기체행성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는 특별한 재료로 되어 있지 않다. 그냥 원자들의 모임일 뿐이다. 우주의 모든 물체가 그러하듯이.

■ 원자에서 생명까지


이제 우주를 이루는 물질에 대해서 큰 틀은 다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아직 이야기할 것이 남아있다. 분자들 가운데 탄소화합물은 특별하다. 복잡하고 긴 구조물을 쉽게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탄소화합물은 산소와 결합하며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를 연소라 부르는데, 쉽게 말해서 타는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부터 38억년 전 지구상 어딘가에서 탄소화합물로 이루어진 화학반응의 복합체가 탄생한다. 그 복합체는 에너지를 생산하여 자신의 구조를 유지할 뿐 아니라 그 구조를 같은 형태로 복제하는 능력을 가졌다. 바로 ‘생명’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포도당이라는 탄소화합물을 산소와 결합시켜, 쉽게 말해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다. 고상한 말로 산화시킨다고도 한다.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인간의 경우 호흡이 그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숨을 쉬지 않으면 에너지를 얻을 수 없으므로 바로 죽는다. 우리가 포도당을 보면 환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도당이 뭐냐면 사탕처럼 단맛이 나는 것들이다.

인간과 같은 동물은 포도당을 합성하지 못한다. 그것은 식물의 몫이다.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화학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분해하여 당으로 재조립한다. 광합성이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명을 지탱하는 화학반응이다. 포도당이 산소와 결합하며 에너지를 내놓는다는 것은, 거꾸로 포도당을 만들 때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에너지보존법칙 때문이다. 식물이 에너지를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고 태양에서 그 에너지를 얻는다. 정확히는 태양빛으로 물을 분해하여 얻은 수소를 이용하는데, 산소는 부산물로 그냥 내다버린다. 결국 동물은 포도당과 산소 모두를 식물에서 얻는 셈이다.

이런 화학반응체계가 경이롭기는 하지만 개별과정은 모두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체계가 자연에 일단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굴러가며 자신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조금씩 발생하고 구조에 결함이 생길 것이다. 결국 작동을 중단하게 될 텐데, 쉽게 말해서 죽는다는 말이다. 이런 화학반응의 복합체가 왜 자신의 구조를 유지하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조를 영원히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을 무수히 복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어딘가에 저장하고 그 정보로부터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지구상 생명체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다. 유전자도 물론 원자로 되어있다. 놀랍게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구조의 유전자에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이용한다. 생명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 이것이 우연일 리 없다. 모든 생명체가 단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분화한 것이다.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볼 때, 진화는 놀랍지 않다. 에너지를 생산하며 자기구조를 유지하는 분자기계가 있고, 이것이 자기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면 진화는 필연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밈’까지 가지 않더라도 진화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나 인공지능은 쉽게 만들 수 있다.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여 결국 인간에 이르렀다.

생명은 화학반응의 집합체다. 생존과 복제가 모두 화학반응에 불과하다. 그런 화학반응들이 어떻게 한데 모여 집합을 이루었는지가 미스터리다. 하지만 개별 화학반응은 원자들이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결합과 분열에 불과하다.

■ 물리에서 인간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기본입자에서 분자, 인간을 거쳐 태양과 은하에 이르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사건을 훑어봤다.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리는 한 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인 것은 우연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물체가 1초에 4.9m 자유낙하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라는 숫자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 4.9가 아니라 5.9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시리즈 끝>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20)존재가 소중한 건 인간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포스텍, 카이스트,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BK조교수, 부산대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의 양자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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