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세상을 4원소의 ‘밀당’으로 이해한 고대 철학자는 탁월했다

2018.03.15 22:08 입력 2018.03.15 23:25 수정

응집물질물리 - 엠페도클레스의 추억

세상 만물은 흙, 공기, 물, 불로 돼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한 엠페도클레스. 출처 | 위키피디아

세상 만물은 흙, 공기, 물, 불로 돼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한 엠페도클레스. 출처 | 위키피디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만물이 흙, 공기, 물, 불의 4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4원소설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모든 물체들은 이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다. 이들은 사랑의 힘으로 결합하고, 다툼의 힘으로 분리되며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원소 자체는 변하지 않고 영원히 유지된다. 물론 지금 우리는 엠페도클레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세상 만물은 4원소가 아니라 원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원자들은 어떻게 결합하고 분리될까? 물론 사랑과 다툼의 힘 때문은 아니다.

원자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전자기력이다. 전자기력은 전기력과 자기력을 하나로 부르는 말인데, 원자 간 결합에 있어 전기력이 더 중요하다. 전기력은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다른 전하끼리는 서로 당기고, 같은 전하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엠페도클레스가 말했듯이 마치 사랑하고 다투는 것 같기도 하다. 양전하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은 양성자이고, 음전하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은 전자다. 양성자가 전자보다 2000배가량 무겁지만, 이들이 갖는 전하량은 같다.

양성자는 서로 뭉쳐서 원자핵을 형성할 수 있다. 양성자 92개가 지름 100조(兆)분의 1m라는 극도로 작은 구형(球形)의 공간에 한데 모이면 우라늄 원자핵이 된다. 우라늄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원료다. 양성자 하나의 지름은 이것의 10분의 1 정도 되니까,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들이 그야말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양성자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떠돈다. 양성자처럼 한데 뭉치지도 않는다. 우라늄 원자에서는 핵 안의 양성자 개수와 같은 92개의 전자가 핵 주위를 떠돌고 있다. 양성자와 전자의 개수가 같아야 전체적으로 중성이 되기 때문이다.

4원소설의 개념도. 출처 | 위키피디아

4원소설의 개념도. 출처 | 위키피디아

우라늄 원자에서 전자가 차지하는 공간은 원자핵의 1경(京)배에 달한다. 전자는 양성자보다 훨씬 작다. 즉 원자 내에서 전자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기는커녕 서로 간에 잘 보이지도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전자들 사이에 전기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92개의 전자들이 우라늄 원자핵 주위 어디를 어떻게 떠돌고 있는지는 양자역학이 설명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탄소는 원자핵에 6개의 양성자가 있고, 주위에 6개의 전자가 떠돈다. 양성자수가 79개면 금이고, 78개면 백금, 즉 플래티넘이다. 양성자 수로만 보자면 골드와 플래티넘은 크게 다르지 않다.

■ 모든 원자들이 만드는 총체적 구조

응집물질물리는 일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응집물질물리가 탐구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이미지. 출처 www.canterbury.ac.nz

응집물질물리는 일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응집물질물리가 탐구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이미지. 출처 www.canterbury.ac.nz

지금까지 원자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자들이 어떻게 세상 만물을 만드는 걸까? 이런 질문을 탐구하는 물리 분야를 ‘응집물질물리’라고 한다. 원자들이 결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만나야 한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둘러싼 전자들로 되어 있으니, 서로 가까워지면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은 전자다. 따라서 결합의 주인공은 전자다. 전자가 원자 주위를 떠돌고 있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자는 양파처럼 층층이 쌓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결합에 참여하는 것은 이웃 원자의 전자들과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껍질 근처의 전자들뿐이다.

껍질 전자들은 어떻게 원자들을 한데 묶을까?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의 3차원 구조에 따라 다양한 답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단순한 상황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디테일보다 본질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물리 교과서를 보면 마찰이 없는 빗면 위를 움직이는 점 입자가 등장하는 이유다. 우선 원자들이 아주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해보자. 탁구공 100만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우주’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성 원자들이 규칙적 배열을 갖는 물질을 ‘결정(crystal)’이라 부른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수정(水晶)이 그 예다.

결정을 이루는 각 원자 껍질의 전자들은 새로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껍질의 전자들은 이웃 원자 껍질 전자들과 몸을 맞대고 찌그러져 있을 것 같지만 양자역학은 놀라운 가능성을 알려준다. 껍질 전자는 물질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이 만든 총체적 상태에 있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서울시의 각 구(區)를 원자라고 하자. 구의 경계에 사는 주민들만 따로 뽑아내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시 상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살도록 한 거다. 이들은 구라는 한계를 벗어나 서울시 전체의 상태에 거주하게 된 거다. 이런 전자의 상태를 ‘띠(band)’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띠란 물질을 이루는 원자 전체가 만들어낸 가상의 구조물이다. 적어도 결정으로 된 물질은 이웃한 두 원자를 접착제로 붙이는 방식으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띠는 물질의 특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 물질의 특성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를 것이다. 얼마나 단단한지, 어떤 색깔인지, 먹을 수 있는지 등등. 하지만 물리학자는 단순한 상황부터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본질을 보기 위해서다. 원자들이 결합하는 것은 전기력이라는 힘이 있어서다. 따라서 물질의 특성과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전기장을 가했을 때 물질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 도체와 부도체

물질에 전기장을 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물질의 한쪽에는 전원의 양극, 다른 쪽에는 음극을 연결하는 것이다. 원자핵은 양(+)전하니까 음극으로 끌려가고, 전자는 음(-)전하니까 양극으로 끌려갈 거다. 하지만 이들은 원자라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형성하고 있다. 원자핵과 전자가 원자구조를 무너뜨리며 끌려갈 수는 없을 거다. 그러면 물체를 전원에 연결하는 순간 바로 박살날 테니까. 흥미롭게도 여기서 세상의 물질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원자핵과 전자가 각각 음극과 양극으로 끌려가기는 하지만 자기 위치에서 조금 벗어나는 정도로만 끌려간다. 그 움직임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런 물질을 ‘부도체(不導體)’라고 부른다. 플라스틱, 나무, 돌멩이 등이 그 예다. 반면 어떤 물질은 전류가 흐른다. 전류란 전자의 흐름이다. 아니, 원자를 이루는 전자가 어떻게 원자를 벗어나 물질 내부를 물 흐르듯 움직일 수 있을까? 금속이 보여주는 익숙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자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물질을 ‘도체(導體)’라고 부른다. 구리, 알루미늄, 철 같은 금속이 여기 속한다.

도체와 부도체의 구분은 띠의 특성이 결정한다. 도체 내부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전자는 분명 개별 원자에 묶여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모든 원자들이 만든 총체적 구조, 즉 띠에 놓인 전자가 전류를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 이걸로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부도체는 왜 존재하나? 여기도 띠에 존재하는 전자가 있다. 띠에도 추가적인 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제대로 설명하면 너무 어려우니 비유를 들어보겠다.

소포를 싸본 사람은 알 거다. 상자 내부에 물건을 빼곡히 채워야 물건이 망가지지 않는다. 빈 공간이 있으면 소포가 흔들릴 때 물건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딪치기 때문이다. 부도체는 물건이 빼곡히 들어찬 소포다. 전원을 연결하는 것은 소포를 흔드는 거다. 부도체의 경우는 소포를 아무리 흔들어도 물건의 이동이 없는 것과 같다. 물건과 상자는 한몸처럼 움직일 뿐이다. 따라서 물건의 이동, 즉 전류의 흐름은 없다. 반면 도체는 빈 공간이 있는 소포다. 소포를 흔들어주면 물건들이 움직인다. 마치 도체 내부의 전자가 움직이듯이 말이다. 도체의 띠를 ‘전도띠(conduction band)’, 부도체의 띠를 ‘원자가띠(valence band)’라고 부른다. 띠가 갖는 이런 추가적인 속성은 양자역학이 결정한다.

당신은 오늘도 쉴 새 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자판 밑에는 두 개의 도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하나의 도체에는 양극, 다른 도체에는 음극이 연결되어 있다. 자판을 누르는 순간 두 도체가 연결되며 전류가 통한다. 전류는 신호가 되어 스크린에 적절한 단어를 띄우거나 당신이 원하는 명령을 수행한다. 전류가 흐르는 동안 도체 내의 전자는 금속 내부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다. 물질이 원자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렇게 자유로이 흐르는 전자를 ‘자유전자’라 부른다. 자유전자는 모든 원자들이 만든 총체적 구조를 타고 흐른다. 빈 공간이 있는 소포를 흔들어서 내부의 물건들이 움직이듯이 말이다.

■ 기나긴 저항의 역사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18) 세상을 4원소의 ‘밀당’으로 이해한 고대 철학자는 탁월했다

도체에 전원을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 전원의 전압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전류가 흐른다. 도체에 따라 증가비율은 같지 않은데, 그 비(比)를 전기전도도라 부른다. 전도도가 클수록 전기가 잘 통한다고 보면 된다. 전도도의 역수(逆數)를 ‘저항’이라고 부르는데, 저항이 작아야 전기가 잘 통한다. 공기는 저항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벽에 있는 돼지 콧구멍 같은 콘센트의 전기가 사방으로 흐르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100여년간 응집물질물리의 역사는 바로 이 저항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전기저항 관련 연구만 추려보면 트랜지스터(1956년), 초전도이론(1972년), 터널링(1973년), 고체물성이론(1977년), 양자홀효과(1985년, 1998년), 고온초전도(1987년), 거대자기저항(2007년), 그래핀(2010년), 위상상전이(2016년) 등이 있다.

도체의 저항은 왜 생길까? 전류는 원자 전체가 만든 전도띠에 전자가 있을 때 생긴다. 즉 하나의 전자가 모든 원자의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는 기괴한 양자역학적 상태다. 상태 자체가 전자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렇다면 전도띠의 전자는 자유롭게 움직여야지 왜 방해를 받을까? 전도띠의 시각에서는 저항이 왜 있는지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띠에 대해 설명할 때 중요한 가정이 있었다. 바로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원자라는 규칙적인 방해물이 있을 때,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운동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기괴한 결과다. 즉 전도띠의 전자는 장애물이 있으나 없으나 육상기록이 똑같다는 거다.

만약 원자배열의 규칙성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구리에 아연이나 니켈 같은 불순물이 들어가면 말이다. 그러면 저항이 생긴다. 장애물들이 똑같이 생겼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다르게 생겼다면 운동에 방해된다는 뜻이다. 온도가 높아져도 저항이 커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요동치는데, 이는 원자들의 규칙적인 구조가 더 많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물이 똑같이 생겼더라도 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흔들거리면 방해된다는 뜻이다. 결국 불순물 하나 없이 순수한 결정 물질의 온도가 절대 0도가 되면 저항은 사라진다.

인생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불순물이 들어 있는 도체의 온도를 절대 0도로 낮추는 실험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온도가 0도에 이르기도 전에 도체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초전도라 부르는 현상으로, 1911년 처음 발견되었고 1950년대에 가서야 설명된다. 하지만 정말로 인생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1986년 아주 높은 온도에서도 특정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것은 기존의 초전도 이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데, 이를 고온초전도라 부른다. 이 현상의 발견자들에게는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졌지만, 아직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고온초전도야말로 응집물질물리 분야의 성배라 할 만하다.

엠페도클레스는 뛰어난 학자였다. 그릇을 뒤집어 물에 집어넣으면 그릇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것을 보고 공기의 존재를 추론했다고 한다. 이때 우리는 단군조선시대였다. 그는 세상이 기본 원소로 구성되며, 이들의 밀고 당김으로 세상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올바른 추론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서 정말로 세상 만물을 이해해가고 있다.

물리는 물질의 근원,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 우주의 시작과 끝을 탐구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응집물질물리야말로 진짜 물리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18) 세상을 4원소의 ‘밀당’으로 이해한 고대 철학자는 탁월했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포스텍, 카이스트,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BK조교수, 부산대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의 양자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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