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깎아지르는 주상절리…선상에서 다시 본 제주도 ‘감동 그 자체’

2018.03.22 21:12 입력 2018.03.22 21:19 수정
문경수 과학탐험가

바다에서 본 월평동굴과 주상절리 그리고 한라산

월평동굴은 갯깍 주상절리처럼 파도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동굴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형태다. 정면으로 3개의 동굴 입구가 보인다.

월평동굴은 갯깍 주상절리처럼 파도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동굴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형태다. 정면으로 3개의 동굴 입구가 보인다.

“중문 대포포구 근처에 월평동굴이라는 동굴이 있습니다.”

주상절리 탐험을 마무리할 무렵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중문 대포포구에 있는 요트회사 담당자라고 소개하며 허윤영씨가 연락한 이유를 설명했다. 요트투어를 할 때마다 선상에서 보이는 해안 동굴이 어떤 지형인지 한번 봐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한가한 시간에 내려오면 요트를 타고 월평동굴 근처까지 접안이 가능하다고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형탐사를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여러 각도에서 지형을 보는 것이다.

특히 주상절리나 해식동굴 같은 지형은 전망대에서만 봐서는 정확한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해안지형은 파도에 깎인 암석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또한 파도가 심한 곳엔 해식동굴 지형이 발달하고 다양한 해양 동식물의 서식처가 된다. 무엇보다 선상에서 한라산의 남쪽 면을 보고 싶었다. 바다와 해안지형 그리고 오름, 한라산을 한눈에 보는 것이야말로 제주도의 원형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혼자 가는 것보다 전문가들과 함께 답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탐험대를 꾸리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화산학자인 전용문 박사다. 제주도 화산연구의 중심에 있는 그가 합류한다면 더 의미 있는 탐사가 될 것이다. 또 한 사람,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백두성 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박물관 전시기획을 하는 그가 본다면 단순한 풍경여행이 아닌 과학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무엇보다 나와 호주, 알래스카 등을 함께 탐험한 경험이 있어 손발이 잘 맞았다. 그리고 제주에 사는 아마추어 천문가 안세진씨에게 연락을 했다. 제주 토박이인 그는 이번 탐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형사진을 촬영해 줄 것이다. 연락을 받고 하루 만에 화산학자, 지질학자, 천체사진가, 탐험가로 탐험대를 꾸렸다.

백두성 팀장과 제주로 내려가는 비행기에서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세계 어디를 가든 지질학적 명소가 주요 관광지 역할을 하지만 시각적인 경이로움에 비해 의미를 알고 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일단 수십억년 전에서 수천만년까지를 아우르는 지형의 연대 설명에서 많은 이들이 식상함을 느낀다.

암석은 다 비슷해 보이고 층층이 쌓인 퇴적층도 여행객의 시선엔 그저 색깔이 다른 지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요즘엔 스토리텔링 개념을 도입해 흥미요소를 이끌어 내지만 한계는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연구만큼이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

해상 탐사에 이용한 요트.

해상 탐사에 이용한 요트.

마지막 요트투어 시간인 오후 4시에 맞춰 요트회사가 있는 대포포구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제주의 화산지형을 연구한 전 박사도 큰 배를 타고 해안지형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모두 기대감이 컸다. 50명이 탈 수 있는 배에 승무원을 포함해 8명이 탑승했다. 이중선체로 만들어진 요트는 5000년 전 대양 항해를 위해 만들어진 폴리네시아인들의 카누를 닮았다. 그들은 카누 덕분에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하와이까지 항해를 했다. 폴리네시아 해양협회는 이중선체 카누의 복제선인 호쿠알라호를 제작해 타히티부터 하와이까지 항해에 성공해 이를 입증한 적이 있다. 덩달아 모두 비글호의 선원이 된 것처럼 설렜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도 우연한 기회에 비글호에 승선한다. 영국 해군 조사선인 비글호의 선장인 피츠로이는 지루한 항해에 적합한 젊은 생물학자를 찾았다. 당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식물학을 가르치던 헨슬로 교수는 피츠로이에게 다윈을 추천했고 헨슬로의 강의에 매료된 다윈은 비글호 항해에 합류한다. 오랜 항해는 다윈의 건강을 악화시켰지만 그는 진화론의 토대를 만드는 중요한 경험을 한다. 화석으로만 보던 동물을 실제 관찰했고 갈라파고스 제도 탐사를 통해 섬에 따라 새의 부리 모양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해 종의 진화를 눈으로 확인했다.

과학기자로 일하던 시절 한국판 비글호 항해 프로젝트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지질학자인 권영인 박사가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비글호 항해를 따라 탐험에 나섰다. 중학생 시절 비글호 항해기를 읽고 해양 탐험을 꿈꾸던 그는 언젠가 꼭 비글호 루트를 따라 탐험할 것을 기약한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요트부에 가입하고 본격적인 항해술을 익힌다. 지질학자로 20년을 근무하던 그는 연구소를 퇴직한 뒤 사재를 털어 장보고호를 만들어 항해에 나선다. 다윈에 대한 동경을 넘어 현재 인류가 직면한 지구온난화의 현장을 조사해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탐험은 시대에 따라 목적과 의미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당시 그가 보낸 원고를 몇 편의 기사로 만들며 그의 탐험을 흠모하던 기억이 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한 달 전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중도포기했다. 그가 귀국하던 날 선배기자와 함께 작은 플래카드를 만들어 마중을 나갔다.

권 박사는 언젠가는 좌초된 지점에서 다시 탐험을 기약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대답이야말로 진정한 탐험정신이라고 느꼈다. 탐험은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미지의 세계를 마주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크건 작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망대에서는 주상절리 전체를 보기 어렵다. 해상에서 파도가 잔잔해지면 수면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주상절리 전체를 보기 어렵다. 해상에서 파도가 잔잔해지면 수면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잠시 후 집채만 한 요트가 움직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다. 늘 전망대 위에서만 보던 주상절리를 선상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가장 완벽한 구조의 지형을 보는 것도 좋지만 월평동굴 주변의 주상절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과학은 늘 의심하고 탐구하는 태도다. 완벽한 이론이 있어도 이를 흔들 만한 증거가 발견되면 왕좌를 내어준다. 요트가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멀찌감치 대포해안 주상절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상절리 부근에 이르자 파도가 심해져 가까이 접안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선상에서 본 주상절리의 모습은 더욱 장관이다. 전망대에 서서 봤던 주상절리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대포항에서 대포해안 주상절리에 이르는 해안 절벽은 모두 병풍처럼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다. 파도가 잔잔해진 틈을 타 좀 더 가까이 가니 바닷속까지 이어진 주상절리 구조가 보였다. 전 박사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해수면이 낮은 시기에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바다 아래까지 이어져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바다에 가까운 쪽 주상절리는 파도에 침식돼 단면이 드러난 절리구조가 선명하게 보였다. 셀 수 없이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를 조사했던 전 박사도 선상에서 주상절리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설명보다 감상에 심취했다. 전망대에서 주상절리를 보던 여행객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선상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서쪽 사면. 완만한 능선을 따라 바다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장관이다. 독일인 겐테는 1901년 한라산에 오른 뒤 독일에 소개했다.

선상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서쪽 사면. 완만한 능선을 따라 바다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장관이다. 독일인 겐테는 1901년 한라산에 오른 뒤 독일에 소개했다.

월평동굴은 중문대포해안 반대편에 있어 서둘러 배의 기수를 돌렸다. 배가 방향을 틀자 구름에 가렸던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라산 서쪽 사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주상절리와 용암을 만든 오름 그리고 완만한 경사면의 한라산과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마도 한라산을 서양에 알린 독일인 겐테가 봤던 풍경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던 배를 타고 제주 근해를 지나갈 때 봤던 한라산을 보고 탐험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흔히 전망대를 생각하면 높은 지대를 떠올리지만 전체를 보려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월평동굴로 향하는 해안절벽은 새로운 지형으로 가득했다. 중문대포 주상절리와 다르게 주상절리가 여러 각도로 휘어져 있었다. 큰 규모의 두께를 가진 용암층이 서서히 식을 때, 외부의 힘이 작용해 용암이 움직이면 기울어진 형태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다고 전 박사가 설명했다. 그 옆으로는 입구가 수평으로 넓게 이어진 동굴이 보여 전 박사에게 물으니 처음 보는 형태라고 말했다. 파도에 의해 깎인 형태가 아니라 외부의 다른 힘에 의해 만들어진 동굴 같다고 했다.

잠시 후 월평동굴에 이르자 전 박사가 동굴 주변을 한참 쳐다봤다. 갯깍 주상절리처럼 파도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동굴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형태라고 말했다. 선상에서 정면으로 3개의 동굴입구가 보였고 모든 동굴 내부 방향이 비슷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파도가 세고 수심이 낮아 가까이 접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세진씨가 가져온 망원경으로 지형을 관찰했다. 우리는 후일 육로를 통해 월평동굴을 추가로 탐험하기로 했다. 직접 월평동굴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권영인 박사의 탐험처럼 우리도 다음 탐험을 기약했다. 월평동굴을 관찰하는 사이 어느새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대포포구로 귀항하는 선상에서 본 태양은 마치 고리를 두른 토성 같았다. 역사 속 수많은 탐험가들이 노을을 보며 잠시 탐험의 고충을 잊었을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제주 해안을 돌며 천천히 풍경을 보고 싶다. 시선이 바뀌니 익숙했던 일상이 달리 보였다. 망원경이 우주를 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것처럼 선상탐험은 제주의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필자 문경수

[전문가의 세계 - 문경수의 탐라도 탐험] (8) 깎아지르는 주상절리…선상에서 다시 본 제주도 ‘감동 그 자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한 과학탐험가다. 지난 10여년간 과학을 주제로 서호주·몽골·알래스카 등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우주항공국(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2010년)를 했고, <효리네민박>(JTBC), <어쩌다 어른>(tvN), <세계테마기행>(EBS)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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