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기적, 어쩌면 마법

2017.10.23 21:34 입력 2017.10.23 21:42 수정

[베이스볼 라운지]어쩌면 기적, 어쩌면 마법

어쩌면,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휴스턴은 지난 22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에서 뉴욕 양키스를 4-0으로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962년 창단 이후 2번째 월드시리즈다.

올가을, 홈에서 치른 6경기를 모두 이겼다.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홈 2경기를 이기고 원정 3경기를 내리 내줘 벼랑 끝에 몰렸지만 홈으로 돌아와 2경기를 따내 극적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지난여름, 허리케인 하비에 신음한 연고지 휴스턴 시민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의지도 중요했지만, 홈 경기 승리를 지켜주는 ‘천사의 기적’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적의 증거’가 양키스와의 2차전 때 나왔다.

0-0이던 4회말 휴스턴 카를로스 코레아가 때린 타구는 미닛메이드파크 오른쪽 담장을 향했다. 키 2m의 양키스 거구 우익수 애런 저지가 공을 따라갔다. 담장 높이는 겨우 2m10. 손만 뻗으면 홈런 타구라도 잡을 수 있었다. 그때 휴스턴 셔츠를 입은 꼬마 소년이 글러브를 내밀었다. 공은 글러브 안에 들어갔다가 관중석 안으로 떨어졌다. 비디오 판독 끝에 홈런이 인정됐다. 휴스턴은 2차전을 2-1로 이겼다. 결정적인 홈런이었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그 홈런에서 1996년 데릭 지터의 타구를 홈런으로 만들었던 소년 제프리 마이어를 떠올렸다. 양키스는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18년 만에 우승했다.

더 슬픈 이야기가 그 홈런에 담겨 있었다. 휴스턴 크로니클의 맷 영이 홈런과 그 공을 잡은 소년의 가족 이야기를 전했다. 공을 잡은 소년의 이름은 칼슨 라일리(12)다. 아버지 마이크와 어머니 아만다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칼슨의 형 케이드(15)는 함께 오지 못했다. 케이드는 4주 전 산악바이크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이 집에서 약 3시간 거리의 야구장을 찾은 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위로 여행이었다. 케이드는 학교 풋볼선수였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했다. 어렵게 구한 1차전 표는 3루 파울라인 쪽, 2차전 표는 오른쪽 외야 담장 바로 앞줄이었다.

아만다는 “슬픔을 잊으려고 왔지만 여기저기에 큰 아들의 존재가 느껴졌다”고 했다. 1차전 가족이 앉은 바로 앞에 양키스 3루 코치가 서 있었다. 조 에스파다의 등번호는 53번이었다. 1.2이닝을 막아낸 휴스턴 마무리 켄 자일스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등을 돌렸을 때 그 등에 적힌 번호도 53번이었다. 세상을 떠난 케이드의 풋볼 등번호도 바로 53번이었다.

2차전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케이드의 가족이 오른쪽 외야 담장 앞 자리를 찾아 갔을 때 근처에 또 다른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그 가족도 케이드의 가족처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둘이었다. 휴스턴 모자를 썼는데, 모자에 아들들의 이름이 써 있었다. 놀랍게도 이름이 똑같았다. 케이드와 칼슨. 아만다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 마이너리그 팀 라운드록 익스프레스 경기를 몇 차례 보러 간 적이 있지만 칼슨은 한 번도 공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은 훈련 도중 선수들이 공을 던져줬다. 휴스턴의 호세 알투베와 랜스 매컬러스, 양키스의 체이스 헤들리가 훈련 때 쓴 공을 칼슨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4회, 승부를 가르는 홈런 공이 칼슨에게 날아왔다. 칼슨의 글러브에 맞고, 어머니 아만다의 무릎에 맞은 다음, 아버지 마이크의 발을 맞고 떨어졌다. 마이크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건 신의 계시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세상을 떠난 형이 동생과 가족에게 준 선물. 휴스턴은 그렇게 홈에서 다 이겼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