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자연의 축복과 인간의 손길…‘한 잔’이 이렇게 행복한 거였구나

2018.10.24 20:41 입력 2018.10.24 20:57 수정

삶의 향기를 품은 와이너리 칠레 콘차이 토로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에는 와인을 통해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축복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 풍경과 산책하는 방문객들. ⓒ 이승원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에는 와인을 통해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축복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 풍경과 산책하는 방문객들. ⓒ 이승원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세 시간 남짓
낮술도 와인도 즐길 줄 모르기에
두렵고 자신없던 와이너리 방문

얼마 전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와이너리의 삶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물론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와이너리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면 낭만과 여유로 가득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포도농장을 힘차게 일구고, 매일 향기로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삶. 하지만 와이너리를 가꾸고 보살피는 가족들은 당최 쉴 틈이 없다. 한 해의 절반 이상은 농부로 살아야 하고, 그 나머지 절반은 와인을 만들고 숙성시키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 바쁜 와중에 경영난과 세대 간 갈등까지 겹치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머리로는 ‘정말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가슴속에서는 은근한 찬탄과 경외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도 포도 품종과 생산연도를 알아맞히는 초인적인 미각과 후각, 늘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와이너리라는 장소 자체의 사색적인 분위기, 거대자본의 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을 믿고 포도의 수확 시기와 와인의 숙성 시간을 가늠하는 과감한 결단력까지. 와이너리를 가꾼다는 것은 인생을 건 모험이자 자연과 인간의 끝없는 소통을 향해 마음의 안테나를 항상 켜놓는 일이기도 하다.

칠레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를 방문하여 느꼈던 감정 또한 그러한 찬탄과 경외감이었다. 분명히 문명화된 세계를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야생의 세계를 향한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는 사람들의 세계.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향기와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축복이 만들어낸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청해 듣는 느낌이었다.

콘차이 토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노동에 찌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종류의 포도를 마음 놓고 재배할 수 있는 자연의 축복에 늘 감사하고, 와인이 제대로 숙성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림으로써 하루하루를 바지런히 수놓고 있었다. 방문객들에게 와이너리를 안내하고, 포도 품종과 와인의 종류를 설명하고, 포도농장과 와인저장고 곳곳에서 방문객들에게 시음할 와인을 따라주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환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억지로 빚어낸 친절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 어린 미소였다.

콘차이 토로는 세계적인 규모의 와이너리이면서 동시에 외국인들에게 인기 만점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넘게 달려 와이너리에 입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낮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와인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과연 이 드넓은 와이너리에서 도대체 무슨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모든 고민을 일단 책으로 해결하려는 모범생 기질을 발휘하여,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만화책 <신의 물방울>이라도 읽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 세밀리온,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카르미네르 등 다채로운 포도 품종을 심어 놓은 거대한 포도밭을 바라보는 순간, 걱정과 조바심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와인은 사치품’이라는 선입견도 입구에서부터 사라졌다. 입장료도 저렴했고, 시음용으로 나눠주는 지극히 대중적인 와인도 하나같이 향기롭고 맛이 좋았다. 포도알과 잎사귀 하나하나가 황금빛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늘어선 각종 품종의 포도나무들은 마치 거대한 군무를 추는 것처럼 일사불란하면서도 늠름한 모습으로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와이너리 안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조화로웠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방문객들의 스스럼없음이었다. 누구든 와인을 마음껏 시음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누고, 와인잔을 ‘쨍’하니 부딪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를 잘 알고 만나온 동네 주민들의 티파티나 밤마실처럼 자연스러웠다. 서로 처음 만나는 어색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스스럼없는 사교성의 원천은 아무래도 칠레 와인의 맛과 향기인 것 같았다.

그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으로 우연히라도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끼리도 너무도 정답고 화기애애하게 술잔을 부딪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누구도 결코 만취하지 않고 깨어 있는 감각으로 와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만 조금씩 술을 즐기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발랄함’과 ‘차분한 절제’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분위기,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려는 친밀감과 그럼에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예의바름이 공존하는 그런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분명히 와인이라 불리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마치 따스한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듯한 부담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으로 좋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아니라, ‘일단 원샷부터’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차처럼 여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나의 술 공포증을 치유하고 있었다.

와인 시음객들을 위한 잔이 채워지고 있다.ⓒ 이승원

와인 시음객들을 위한 잔이 채워지고 있다.ⓒ 이승원

햇살 아래 찬란한 포도알과 잎사귀
와이너리 사람들의 기쁨 어린 미소
스스럼없고도 예의바른 방문객들
와인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술 공포증마저 치유되는 듯

나는 권위적인 음주 문화에 상처받은 지난날의 경험 때문에, 억지로 마시기가 싫어 아예 술을 멀리해왔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이 진심으로 즐겁다고 느꼈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너는 왜 그렇게 술을 못 마시니?’ ‘못 마시는 척하는 거 아니냐?’ ‘멀뚱하니 앉아 있지 말고 분위기 좀 맞춰봐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누구도 억지로 권하지 않고 자신이 마시고 싶은 만큼만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술을 마신 김에 ‘무언가 중요한 속내를 고백하라’라는 무언의 중압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남의 빈 잔에 반드시 눈치 빠르게 술을 채워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와인에 대해 철저히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한 잔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취해버려서 온갖 비밀을 자발적으로 털어놓는 나 같은 사람도, 이곳에서만은 잠깐이나마 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인은 감정의 사치’라고 생각했던 내 오랜 선입견과 즐거이 작별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내게는 칠레의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적인 노력이 합쳐진 조화로운 협업의 공간 와이너리에서 사람들은 물론 자연도 자신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기회를 찾은 것은 아닐까. 나는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자연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었다. 야생의 자연도 물론 아름답지만 사람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는 자연도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단지 와이너리가 아니라 거대한 야생의 테마파크 같기도 하고, 철저히 보호되고 있는 국립공원 같기도 했다. 완벽한 보살핌을 받는 포도나무들은 물론 온갖 꽃들과 나무들, 호수, 풀밭까지도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자연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일 때만 완전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와이너리와 정원 같은 ‘자연과 인공의 하모니’에 대해서는 무척 야박한 점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따스한 보살핌을 받는 자연, 항상 인간의 애정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은 마치 인간의 간절한 부름에 화답하듯 오랫동안 숨겨온 자기 안의 찬란한 빛과 온기를 뿜어내 보이고 있었다.

콘차이 토로 와이너리를 방문한 뒤 몇 달이 지나서, 드디어 나는 벼르고 벼르던 만화 <신의 물방울>을 읽기 시작했다. 와인의 맛과 향기를 그에 걸맞은 지적이고 우아한 ‘언어’로 표현해야만 미션에 통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고 있었다. 와인의 맛을 감별해내기 위해 연필의 맛, 가죽 허리띠의 맛, 나뭇가지의 맛까지 완벽하게 기억하고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오감을 철저히 단련해온 주인공의 이야기가 마치 예술가의 자기 제련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와인의 잠재력을 깨우는 디켄팅은
글쓰는 사람의 숙명과 비슷하다
통 속 와인이 숙성을 기다리듯
우리 삶도 기다리고 있겠지
찬란한 디켄팅의 시간을

<신의 물방울> 속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키워드는 와인의 ‘잠재력’이었다. 주인공은 섬세하고도 대담한 ‘디켄팅(decanting)’을 통해 오랫동안 좁은 병 속에 갇혀 있던 와인의 숨은 맛과 향기를 끌어내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글 쓰는 사람의 숙명 또한 그런 디켄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에 짓눌려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 나 자신의 검열에 갇혀 끌어내지 못한 내 안의 수많은 잠재력을 ‘글쓰기’라는 몸짓을 통해 대낮의 광장 속으로 불러내는 것. 그것이 작가의 희열이자 창작의 기쁨이 아닐까.

[정여울의 라틴아메리카 기행](15)자연의 축복과 인간의 손길…‘한 잔’이 이렇게 행복한 거였구나

거대한 창고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과 발효를 거치는 와인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와인의 생산 과정 또한 우리 인생과 무척이나 닮았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저렇게 통 속에 갇혀 있는 와인이 완전히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을 꿋꿋이 견디는 기술이 아닐까. 디켄터를 통해 오랫동안 병 속에 갇혀 있어 답답했을 와인에게 산소를 불어넣어주고,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숨죽여왔던 맛과 향을 끌어내는 것처럼. 우리 삶도 내 안의 진정한 잠재력을 불러 깨우는 ‘찬란한 디켄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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