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쌀로 만든 진짜 ‘서울 막걸리’ 드셔보셨나요?··· 30대 청년들이 빚는 한강주조 ‘나루 생막걸리’

2020.03.13 14:46 입력 2020.03.13 15:34 수정
글·사진 김형규 기자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는 서울 강서구에서 재배한 경복궁쌀로 빚는다.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는 서울 강서구에서 재배한 경복궁쌀로 빚는다.

서울의 막걸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초록색 페트병에 든 술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수입쌀에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싸구려’를 서울을 대표하는 막걸리로 꼽자니 조금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아쉬움을 덜어줄 만한 술이 최근 나왔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은 신생 양조장 한강주조의 ‘나루 생막걸리’다.

나루 생막걸리는 서울에서 재배한 ‘경복궁쌀’로 만든다. 서울 땅에서도 논농사를 짓는다는 걸 이번에 취재하며 처음 알았다. 제주 감귤, 나주 배, 문경 오미자처럼 서울에도 특산물이 세 가지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김포평야에서 나는 경복궁쌀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서구 오곡동·개화동의 너른 들에서 우렁이를 활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추청 단일 품종을 재배한다.

가격도 비싼 편이다. 일반 양조용 쌀과 비교하면 두 배쯤 된다. 한강주조는 지난해 경복궁쌀 8t을 사들여 술을 담갔다. 올해 예상 수매량은 20t이다. 서울에서 기른 쌀로 서울의 양조장에서 감미료 하나 넣지 않고 만든 고급 술이니 ‘서울 막걸리’라고 하기에 손색없지 않을까.

성수동 한강주조 양조실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

성수동 한강주조 양조실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

나루 생막걸리의 라벨엔 해와 산, 배를 형상화한 간결한 로고가 그려져 있다. 한강의 나루터를 표현한 것이다. 물자와 사람을 이리저리 실어날랐던 나루터처럼, 다양하고 수준 높은 가양주 문화를 꽃피웠던 우리 술의 찬란한 과거를 현재에 잇고 싶다는 바람을 술 이름에 담았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술의 순기능 또한 나루라는 이름에 썩 어울린다.

나루 생막걸리 병뚜껑에 나루터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나루 생막걸리 병뚜껑에 나루터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맛은 어떨까. 나루 생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도와 11.5도 두 가지로 나뉜다. 6도 제품은 멜론이나 배를 연상시키는 시원한 향이 먼저 반긴다. 한 잔 들이켜면 달큰한 맛이 이내 입안을 꽉 채운다. 과하지 않은 단맛이다. 특별한 안주 없이 술만 마셔도 만족스럽다.

삼키고 나면 가벼운 산미도 느껴진다. 탄산 없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술이라 앉은 자리에서 거푸 잔을 들게 된다. 935㎖ 병이 크다 싶다가도 마시다 보면 어느새 빈 병이다.

요구르트처럼 걸쭉한 질감의 11.5도 막걸리는 향과 맛이 한결 진하다. 소주잔처럼 작은 유리잔에 담아 음미하며 마시기 좋다. 커다란 잔에 얼음을 타서 마시면 조금씩 변하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성수동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작은 양조장이지만 연구실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서울 성수동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작은 양조장이지만 연구실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고문헌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만들었다는 나루 생막걸리는 제조법이 조금 특이하다. 멥쌀만 사용해 세 번 빚는 삼양주인데 발효 기간이 아주 짧다. 밑술을 만들고 고두밥으로 두 번 덧술까지 해도 9일이면 발효가 끝난다. 보통 한 번 빚어 완성하는 단양주 막걸리가 닷새에서 일주일쯤 걸리니 거의 차이가 없는 셈이다.

발효 기간을 이렇게 줄인 건 당 때문이다. 쌀의 당분이 모조리 알코올로 변하기 전에 발효를 끝내면 술에 그만큼 단맛이 돌게 마련이다. 보통 막걸리에 비해 쌀은 더 넣고 물은 덜 넣는다. 이 또한 원재료의 비율을 조정해 단맛을 더하는 방법이다. 완성된 술은 냉장창고에서 최소 열흘 이상 숙성을 거친 뒤 판매된다.

한강주조는 30대 청년들이 지난해 창업한 젊은 회사다. 브랜드 마케터 출신의 고성용 대표(38)는 성수동에서 잘나가는 카페를 5년간 운영했다. 이상욱 이사(38) 등 지인들과 어느 날 술자리에서 ‘우리는 왜 만날 맛없는 소주만 마셔야 되냐’고 한탄하다가 ‘그럼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1년 동안 너댓개의 양조과정을 이수하고 6개월가량 100번 넘는 실험양조 끝에 나루 생막걸리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6월 출시하자마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마련한 ‘강소기업 100 만찬 간담회’의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루 생막걸리 가격은 6도짜리가 7000원, 11.5도 제품(500㎖)은 1만1000원이다. 지난달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으면서 이달 말부터는 홈페이지(hangangbrewery.com)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전국의 전통주전문점과 한식당 등 120여곳에서도 맛볼 수 있다.

모내기를 앞둔 경복궁쌀과 나루 생막걸리. 한강주조 제공

모내기를 앞둔 경복궁쌀과 나루 생막걸리. 한강주조 제공

나루 생막걸리는 이달 말부터 한강주조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한강주조 제공

나루 생막걸리는 이달 말부터 한강주조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한강주조 제공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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