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으로 ‘뚝딱’···이 달콤함, 장난 아니다

2024.01.05 06:00 입력 2024.01.07 13:00 수정
정연주

(1)불멍의 꽃말은 ‘군고구마’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불장난으로 ‘뚝딱’···이 달콤함, 장난 아니다

캠핑을 떠나는 주가 되면 제일 먼저 어떤 불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에 맞춰서 메뉴를 구성하고 원료를 준비해야 하니까.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불멍을 할 예정이라면 캠핑장에 가서 장작을 사면 되고, 숯불을 피워 바비큐를 하고 싶다면 인터넷이나 캠핑용품 전문점에서 어떤 숯을 사용할지 고르고 주문해 가져간다. 캠핑장에서 판매하는 숯이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에 열정의 불을 댕기는 열원은 단연 장작이다. 켜고 끄는 것이 간편한 부탄가스는 내 노력의 여하에 따라 요리를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덜하지만, 반면 장작은 바로 ‘하이 리스크’다운 부분이 도시인의 낭만에 날아와 꽂히는 것이다.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세미’ 야생적인 요리 환경에 나를 던져 놓고 진정한 요리 실력을 테스트하는 기회라고나 할까? 비록 내 본체는 새벽 배송이 난무하는 도시에 안주하는 허약한 현대인이지만, 통제된 야생 속에서 마치 자연인인 양 살아있는 불을 상대할 수 있는 척하는 것이다.

캠핑을 시작하고 나서 제일 만족스러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름 프랑스 요리 학교도 나왔고 오븐에 피자 스톤으로 빵 굽는 기술도 연마하고 있지만, 손잡이를 돌려가면서 강한 불과 약한 불을 조절하는 것과 방염 장갑을 끼고 장작을 넣었다 빼가면서 온갖 식재료가 타지 않고 설익지도 않고 완벽하게 조리되게 하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도파민 분출의 차이가 존재한다! 불이란 원래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보통 이런 뿌듯함은 초반의 좌절을 한 번 거쳐야 맛볼 수 있다. 제일 처음 캠핑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먹으려고 했던 날에는 해가 아득히 진 후에나 젓가락을 들 수 있었다. 생각보다 숯이라는 것에 불을 붙이기 힘들었다. 이게 지금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참 토치를 들고 숯을 지졌는데도 고기가 익을 만큼 열이 팔팔 오르지 않았다. 아마 숯을 너무 적게 쓴 때문인 듯했다. 하여튼 그렇게 쓴맛을 보고 나서야 이것저것 자료도 찾아보고 착화기도 구입하면서 조금씩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숯불 관리처럼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터득하려면 조금 요령이 필요한 대표적인 캠핑 음식이 있으니, 바로 군고구마다.

다들 ‘먹보’이기 때문인지 알뜰해서인지, 캠핑장에서는 장작에 불만 붙이면 다들 이 불이 아까워서 뭐라도 굽고 싶어 안달을 낸다. 가만히 앉아서 불멍을 즐기고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마시멜로도 굽고 고기도 굽고 야식으로 라면도 끓인다. 텐트마다 다른 냄새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돌아다녀 보면 공통적으로 고구마를 알루미늄 포일에 둘둘 말고 있다. 우리를 배고픔에서 구원해주던 구황작물이여, 우리가 불멍을 즐기는 동안 불구덩이 속에서 너는 군고구마가 되어라.

이렇게 고구마를 구울 때면 항상 ‘이걸 한 번에 다 넣으면 불이 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접에 가득 찰 만큼 잔뜩 준비한다. 가족들이 고구마를 유난히 좋아해서가 아니다. 캠핑 초반에는 불 조절에 실패해 군고구마 대신 숯덩이만 잔뜩 떠안았기 때문이다. 장작불에 파묻어 놓고 수다를 떠느라 새까맣게 잊어버려서, 마음속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쿠킹 포일 속의 숯덩이들.

그 기억 때문에 매번 고구마를 한 대접씩 굽고 있다. 뭐라도 하나 타지 않은 것이 있어야 내 입에 들어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변명 같지만 고구마를 맛있게 굽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그러니까 고기를 한참 굽고 밥을 차릴 즈음의 장작불에 고구마를 넣으면 익기 전에 정말 새까맣게 타버리기 일쑤다. 물론 불구덩이에 음식을 넣으면 뭐든 쉽게 타겠지만 고구마는 특히 속까지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이다.

그리고 고구마를 굽고 삶다 보면 확연히 속살의 당도가 높고, 흘러나온 수분이 캐러멜처럼 달콤하게 굳을 정도로 맛있어질 때가 있다. 고구마의 전분은 아밀레이스라는 효소 작용을 통해 맥아당으로 전환되는데, 이 효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도가 57~77도이기 때문이다. 익히면서 이 온도대를 오래 유지할수록 고구마가 확연히 달콤해진다. 다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려서 속이 조금 터질 뿐이다.

오븐 조리를 한다면 공기는 열전도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븐 온도를 70~80도까지 낮출 필요는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은 160도로 1시간, 180도로 1시간. 그러면 속까지 달콤해진 채로 수분이 껍질을 터트리며 시럽처럼 흘러나오는 완벽한 군고구마가 된다. 그렇다면 캠핑에서는 이 원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고기를 한 번 굽고 난 뒤 가장 뜨거운 시기를 지나 은근한 불을 품고 있는 숯 사이에 파묻는 방법이 있다. 화목난로라면 상판과 양쪽 날개 철망을 이용해서 가장 뜨거운 곳과 서늘한 곳 사이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골고루 익히는 것이 제일 좋다. 어느 쪽이든 가끔 뒤집고 돌려가면서 관심을 보여야 전체적으로 잘 익은 군고구마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군고구마 굽는 요령을 터득하자, 한 대접씩 준비한 고구마가 남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렇다고 ‘먹고잡이’인 내가 굽는 고구마의 양을 줄였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음날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으니까. 구황작물을 그냥 내놓으면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우리 가족도 잘 먹는 레시피다.

우선 식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벗긴다. 잘 씻었고 타지 않았으면 껍질째 먹어도 상관없으니 적당한 크기로 깍둑 썰자. 그리고 베이컨 두어 줄을 적당히 썰어서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볶는다. 잘 지은 밥 혹은 전자레인지에 갓 돌린 즉석밥이 뜨거울 때 버터를 한 조각 올리고, 간장이나 쯔유를 살짝 두른 다음, 베이컨과 군고구마 썬 것을 넣은 뒤 잘 섞어보자. ‘단짠’의 매력이 제대로 느껴지는 군고구마 베이컨 버터밥이 완성된다. 베이컨에서 맛있는 기름이 많이 배어 나왔다면 조금 같이 둘러주는 것도 좋다. 이번만큼은 건강하자고 먹는 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밥에 단 것을 섞는 것이 취향이 아니라면, 군고구마로 그냥 먹는 것보다 훨씬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어보자. 군고구마를 세로로 길게 반으로 자른다. 그리고 자른 단면에 설탕을 수북하게 얹는다. 황설탕이건 백설탕이건 상관없지만 대체당이나 올리고당은 안 된다. 우리가 만들려는 것은 군고구마 브륄레라서 잘 녹고 잘 굳는 설탕 특유의 성질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구마 단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탕을 소복하게 얹어야 브륄레가 잘된다. 처음 해보면 탕후루를 먹는 아이들의 건강이 더욱 걱정될 것이다. 하지만 맛을 보고 나면 탕후루에 중독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복잡한 심경이 된다.

어쨌든, 고구마에 설탕을 듬뿍 올리고 난 뒤 토치에 부탄가스를 끼우고 불꽃이 제일 약하게 나오도록 조절한 다음 설탕을 살살 녹여서 캐러멜화시킨다. 한군데만 가열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녹여야 고르게 잘 녹고, 설탕을 태우기 직전까지 지질수록 캐러멜 맛이 진하게 난다. 그리고 시럽이 되어 녹은 설탕이 식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파삭파삭한 캐러멜층이 부드러운 고구마 속살과 어우러져서 아주 달콤한 데다 질감의 대조까지 느낄 수 있는 군고구마 브륄레가 완성된다.

솔직히 이건 불장난을 하고 싶어서 만드는 디저트기도 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는 불멍에서 시작해, 다음날 토치 불꽃으로 지져 완성하는 군고구마 브륄레까지. 자연 속의 고요한 휴식과 더불어 안전한 불장난과 혈당 스파이크라는 자극적인 캠핑의 매력을 고조시키는 중독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불장난으로 ‘뚝딱’···이 달콤함, 장난 아니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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