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2020.05.21 06:00 입력 2020.06.02 17:13 수정 안희경 재미저널리스트

7인의 석학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우리의 감정은 온전히 사적이지 않다.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에 박혀 있던 혐오 또한 세분화되어 분출되고 있다. 그리고 연민과 보살핌, 성찰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섰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성찰의 출현이 편견과 혐오를 넘어 사랑의 정치로 가는 발판임을 강조한다. 이번 회에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어떤 가치를 가져가야 할지, 안전과 자유, 그리고 정의에 대해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시카고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4월23일 보내온 e메일 답변이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는 ‘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 속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를 이야기한다. 2017년 5월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의 연구실에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누스바움. ⓒ 아담 싱스인더마운틴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는 ‘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 속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를 이야기한다. 2017년 5월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의 연구실에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누스바움. ⓒ 아담 싱스인더마운틴

인간의 ‘동물과 다르다’는 인식
약자들에게 ‘동물적 특성’ 투사
코로나 위기는 혐오 강화시켜

안희경(이하 안) = 코로나19 위기는 경제위기, 정치위기, 그리고 윤리위기로까지 번졌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무엇인가요. 삶 속에서 마주했던 역사적 사건들에 견주어 현재의 위기가 당신에게 다가오는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이하 누스바움) = 그동안 꽤나 평온한 삶을 살아왔구나 하고 여깁니다. 그 순탄한 시간 속에서 일상의 모든 것이 가장 거대하게 뒤틀어졌던 시간은 베트남전쟁 기간이었어요. 그 속에서 일어난 문화적 붕괴는 사회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때의 위기는 지금의 위기와 매우 다릅니다. 베트남전쟁은 명백히 잘못된 참사였고 어쩌면 피할 수 있던 재난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종결될 수도 있었을 거고요. 이 모든 이유로 당시 우리 세대는 명확한 역사적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군대 징집을 거부하고 항의했어요. 그 전쟁에서 실제 벌어진 최악의 상황 중 하나는 중산층 남성 대부분이 징집에서 제외됐다는 겁니다. 그들은 쉽게 열외로 빠졌습니다. 전쟁의 짐은 오로지 노동계급과 비주류 남성들에게만 지워졌죠. 제 주위에서 실제 징집된 사람은 단 둘뿐이었습니다. 여성인 저 또한 그 징집에서 면제됐고요. 그러니까 개인에게 부과된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시 우리들은 계급별로 격리되었죠. 그 부조리만큼 위험에서 비켜난 이들이 져야 하는 항의의 의무는 더 컸습니다. 문화 전체를 가로질러 격변이 일었습니다. 청년들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군사·산업 복합체’에 맞섰습니다. 나이 든 세대는 저항하는 청년들을 힐난했고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자식들은 부모들의 사고를 경멸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인도차이나반도에서는 베트남인들과 미국인들이 아무런 당위성 없이 죽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베트남전쟁이 실수였다는 것과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속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맞닥트린 코로나19 위기는 거짓과 게으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구나 쉽게 진실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위기는 우리 사회를 50년 전만큼이나 양 갈래로 찢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위기 속에서 함께합니다. 저는 우리를 에워싸는 공동체 정신을 보며 놀라움을 느끼고 있어요. 여러 서로 다른 사회단체들이 연대하며 서로의 요구를 해결하고자 애씁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카고시의 슬로건이 매우 상징적이죠. ‘Together Apart(따로 함께하자).’ 텔레비전 공익광고에 각각 작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100여명의 시카고 시민들 얼굴이 나옵니다. 나이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요. 그러니까 정확히 분리된 상자 안에 각자가 떨어져 있는 상황을 동의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상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호숫가 정경입니다. 시카고 시내에 있는 제 아파트에서는 아름다운 미시간호수가 내려다보입니다. 물가를 따라 자전거길과 조깅 트랙이 둘러져 있고 공원이 있죠. 시카고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장소입니다. 지금 그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장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거죠. 제가 증언합니다. 베트남전쟁 기간에는 이러한 화합된 모습은 없었습니다.

미국 내의 불평등한 조건 인한
인종별 불균등한 사망률 주목
대중들, 의문 갖고 비판하게 돼

안 = 팬데믹은 우리의 숨겨진 편견과 혐오를 드러냈습니다. 서구에서는 아시아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고,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막 퍼지기 시작한 아프리카에서 온 방문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뉴스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이득을 취합니다. 혐오, 어떻게 작동하나요.

누스바움 = 당신은 나와는 매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편견과 혐오가 숨겨져 있다고 말하니까요. 제 인생을 통틀어 편견과 혐오가 숨겨져 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특히 이 미국에서는 더더욱요. 제가 소녀였을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했어요. 그들은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도 투표할 권리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받는 이들은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유대인은 로펌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요.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학으로부터 입학을 거부당했고, 대부분의 직장에서 경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게이와 레즈비언은 정체성을 숨겨야 했으며, 악의적인 핍박을 받았죠. 이 중 어떤 부분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이런 형태의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은 매우 다른가요? 제가 한국을 방문했던 2008년에 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여성 교수들이 제게 매우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편견이 결코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후에도 성적지향과 법에 대한 책이 한국에서 번역될 때 서문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발행인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다룬 기사들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저는 한국 상황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당사자들 또한 자신들을 향한 혐오가 결코 숨겨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제가 제2의 조국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대놓고 자행됩니다. 2002년 대량학살을 유발했던 혐오 방식은 지금도 떳떳이 살인을 자행하는 명분으로 더욱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겠죠. 만약 이 세상에 어느 나라라도 편견과 혐오가 완벽히 숨겨져 있는 곳이 있다면 저는 정말이지 놀라움 그 자체로 잠식되고 말 거라고요.

‘사랑의 정치’ 향한 선결 과제
자기 비판·성찰 정치의 촉발

안 = 2002년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성지순례를 다녀오던 힌두교도들이 열차 화재로 숨지며 일어났습니다. 이슬람교도가 불을 낸 것이라고 힌두교도들이 선동했고, 이들은 3개월 동안 1000명 넘는 이슬람교도를 살해하는 무차별 보복을 자행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분노를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정치 방식은 대중정치에서 점점 더 교묘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민주주의마저 왜곡하는 집단 혐오가 대중의 마음속에서 위력을 발휘할까요.

누스바움 = 두 가지 차원의 혐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몸에서 배출되는 분비물, 노폐물에 대해 느끼는 혐오입니다. 대소변, 피, 콧물 등 우리의 동물성에 대한 거부 표현으로 모든 사회에서 작동하죠. 시체는 확실히 혐오스럽습니다. 이 혐오에는 일종의 원시적인 두려움이 있어요. 거기에 ‘나는 동물과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갖고 동물적 본성을 혐오하는 겁니다. 이런 사고 속으로 또 다른 종류의 혐오가 자리합니다. 문화 차원의 혐오로 저는 ‘투사 혐오(projective disgust)’라고 불러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패, 냄새, 분비물 같은 역겨운 특성을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에 투사하여 그들을 종속시킬 전략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혐오는 대체로 약한 집단을 향합니다. 그들을 동물적이라고 묘사하죠. “동물적인 성적 취향은 그들에게나 있지 나한테는 없다. 고약한 냄새는 그들에게서만 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미국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동물로 취급했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다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깁니다. 이렇게 타인을 종속시키려는 전략으로 작동하는 혐오는 흑인, 여성, 성소수자 등을 동물적인 존재로 만들면서 모든 인간이 갖는 동물성을 부정해왔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몇 가지 혐오들을 다시금 강화시켰어요. 당신이 언급했듯이 미국에 있는 동아시아계 사람들은 편견과 낙인의 대상이 되었죠.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던 혐오입니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편견과 낙인이 심각하지 않았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지금의 위기 속에서 어떤 편견은 오히려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편견과 혐오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대중들이 의문을 갖고 비판하도록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매우 불균형적으로 바이러스에 취약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흑백 분리 거주가 뚜렷이 자리 잡은 시카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더 많이 죽어가는 사실이 드러났죠. 불평등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전역에 걸쳐 매우 의미 있는 대화를 촉발시켰습니다. 주거지와 주거 상태, 건강보험 가입 여부,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얼마나 건강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시카고와 일리노이주에서 보는 것은 혐오 정치의 이면입니다. 이는 자기비판 정치라고 불릴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의 정치를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자아성찰 정치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위기 때와 코로나의 차이
취약함 나누며 공감하는 몸짓
‘모두가 하나의 세계 속의 일부
다같이 이겨나가자’는 메시지

안 =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 앞에서 취약해졌듯이 인간은 모두가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깨침이 확산된다면, 이 코로나19 위기에서 혐오 정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지는 세대 간의 골은 안타깝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베이비부머 제거제)’라고 부릅니다. 이는 노년 세대에 대한 내재된 혐오 아닐까요. 노인 혐오에서 읽히는 사회적 심리는 무엇일까요.

누스바움 = 저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긴 누가 제 앞에서 그 말을 쓰겠어요! 확실히 제 얼굴을 맞대고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노인,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 질색하는 그런 종류의 혐오는 있습니다. 이 또한 결코 숨겨져 있지 않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낙인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동물성에 연결돼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실제로 죽음에 가까이 있죠. 그리고 이 죽음을 직접적으로 대표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혐오에 비해 문화적인 요인이 적게 작용합니다. 그냥 그 주름진 몸이 나의 미래와도 연결된 죽음의 그림자이기에 나와 분리시키는 직접적인 반응으로 표현됩니다. 반면에 소수자 그룹이 동물성과 죽음을 상징하고, 그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서사를 품은 일종의 문화적 판타지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거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 든 몸에 대한 낙인이 모두 사실인 것도 아닙니다. 노년 세대의 몸 역시 꽤 괜찮게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은 78세입니다. 그와 경쟁했던 샌더스는 79세이고,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80세입니다. 그나저나 만약에 그 끔찍한 표현인 ‘부머 리무버’가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에요. 미국에서는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을 80세 이상으로 보는데, 이들은 베이비부머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73세인 트럼프, 그리고 5월6일에 73세가 된 저야말로 베이비부머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죠.

안 = 코로나19로 많은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가 인간으로서 취약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감염병 재난 겪으며 현실 속 ‘차별’ 부각…사회적 성찰의 계기 될 것”

마사 누스바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드러낸 혐오와 편견이 이 세계에서 한순간도 숨겨져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종교적 혐오가 대량학살로 번졌던 2002년 3월 인도 구자라트주의 힌두교도들이 아마다바드의 거리에서 이슬람교도들과 대치한 채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사 누스바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드러낸 혐오와 편견이 이 세계에서 한순간도 숨겨져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종교적 혐오가 대량학살로 번졌던 2002년 3월 인도 구자라트주의 힌두교도들이 아마다바드의 거리에서 이슬람교도들과 대치한 채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확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전국 시민사회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한 혐오 조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확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전국 시민사회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한 혐오 조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로 첨예해진 ‘자유와 안전’ 문제…안전 위한 개인 사생활 희생,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 논의해야
향후 사회 위해 지금 구현해야 할 정의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역량 개발하도록 존중하는 것
모든 이가 삶의 기본 보장받는다면 두려움과 혐오 줄어…사회안전망 강화 중요

누스바움 = 저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자비로움을 봅니다. 오늘의 위기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베트남전쟁 때와는 다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자비로움이 없었어요. 심지어 미국 군인들이 죽어나가고 있어도요. 목숨을 잃은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에는 단 한 명의 미군 전사자 이름도 쓰여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었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는 매일매일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에게 전하는 따스한 말과 마주합니다. 가족들이 전하는 감동 어린 기억들과 함께요. 바로 이 자비로움 속에 모두가 취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함께 있습니다. 좋은 예 중 하나는 CNN 방송인 크리스 쿠오모의 모습입니다.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말 심각한 상태였어요. 거의 3주 동안 앓았는데, 매일 밤 자기 집 지하실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가족들과는 격리된 상태였죠. 오한이 나서 몸을 떨고 땀을 줄줄 흘려도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혼자 있었어요. 크리스는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자기가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지 고백했습니다. 이는 연민과 포용의 몸짓이었습니다. 취약함을 함께 나누며 공감하고자 하는 몸짓은 요양원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매일 밤 텔레비전 뉴스에는 요양원에 있는 85세 이상 노인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일부로 살아가며 다 같이 이겨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함께합니다. 저는 이 바이러스가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들에게도 동정심을 갖게 만드는 그 어려운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특히나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 보리스 존슨인데요. 저는 제가 그에게 어마어마한 자비심을 보내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예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심지어 침대에서 나오기도 전에 구글 검색창에 적습니다. ‘보리스 존슨 건강.’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를 어릿광대일지언정 뼛속 깊이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였겠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방법이란 없습니다. 연민의 마음을 거부하기란 여전히, 정말로 힘이 듭니다.

안 =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위험스러운 이분법으로 혼란을 겪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인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관해 서구 언론들은 유교적 전통에서 나온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국가의 성격이기보다 ‘국가와 시민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가’ 아닐까요.

누스바움 = 저는 서구 언론에는 멍청한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유교적 가치”라고 단정하지 못합니다. 전통을 공유하며 산다고 해서 그 사회 속에 어떤 하나의 사상만 있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것처럼요. 꽤 분명하게 공자는 소크라테스만큼 난해합니다. 두 분 모두 직접 쓴 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전통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부해서 아주 많은 종류의 정치적인 사상을 담고 있어요. 아시아 사람들의 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에 대해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분야인 철학에서 아시아의 전통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느끼며 자주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교토상을 수상할 때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아시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빈약한 인식을 2021~2022년 열리는 ‘비서구 철학과 법’에 관한 워크숍에서 바로잡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의 관계라는 주제는 엄청난 정치철학적 질문입니다. 이곳에 풀어놓기 시작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많은 풍부하고 흥미로운 답들이 비서구와 서구 전통에 있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차분히 비서구와 서구의 전통, 그리고 그 전통에서 나온 수많은 위대한 저작들을 공부하시기를 권합니다. 서구와 비서구를 모두 공부하고 그런 다음 스스로의 생각을 찾아가는 길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책도, 제 수업도 저만의 생각으로 채워내지 않습니다.

안 = 현재의 위기에서 자유와 안전은 충돌합니다. 안전을 위해 개인정보가 공개되고 있고요. 사회학자들은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국가의 통제 관행은 퇴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지난 40년간 시장 주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시장의 힘은 우리의 소비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일상생활이 빅데이터가 되어 정부와 기업으로 흘러가죠. 자유와 안전의 균형,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누스바움 = 사람들이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나요? 이것은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법학계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법원도 디지털 시대에 개인정보를 보호할 권리를 정의하기 위해 애씁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영장 없는 스마트폰 조사를 헌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투항하고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세심하게 인지해야만 합니다. 그나마 개인 의료정보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심각한 부분인데요. 왜냐하면 이 분야의 움직임은 꽤 잘 파악되고 있고, 우리들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법이 이 분야의 우리들 권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독감 예방주사를 놓을 때도 접종자의 권리를 상세히 설명하는 양식에 서명하지 않으면 주사를 놓지 못합니다. 반면에 마케팅 부문에서 소비자들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여 축적하는 방식은 더욱 교활하여 방심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구매 정보부터 소셜미디어 기록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속 정보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죠. 우리는 이를 걱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우려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죠.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우리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세심하고 더 나은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각 나라는 안전을 위해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지에 대해 논의해야만 합니다. 보안 카메라는 있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이 카메라들이 꽤 많은 범죄를 감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안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밟아나가야 할 과정이 많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안 = 만약에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기존의 이윤 중심 질서를 고쳐나가겠다고 여론을 모은다면, 지금의 위기는 되레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사회적 정의는 무엇일까요.

누스바움 = 저는 시장경제를 내던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경제성장의 큰 동력이고 빈곤과 불행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습니다. 우리의 평균수명도 1900년보다 두 배 길어졌고요. (저는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이 쓴 <위대한 탈출>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 규제할 필요가 있죠. 확실히 미국은 건강보험 문제에 있어서 잘못해오고 있어요. 그리고 앞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낳은 결과가 차별에 대한 성찰을 촉발했듯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정의에 대한 논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정의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도록 존중하는 것입니다.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은 제가 주장하는 역량 순위에 있습니다. 인간의 역량을 창조하는 조건을 10대 핵심 역량으로 정리했지요. 평균수명을 누릴 수 있는 조건, 건강을 보호할 권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신체 보전, 자존감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조건 등입니다. 모든 항목에서 최저 기준을 채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불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는 질 낮은 교육을 받아도 되고, 일할 기회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 평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건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기란 참으로 복잡한 일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매우 품위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못 끔찍할 수 있거든요. 저는 노동계급의 삶이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엄청나게 성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겁니다.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들죠. 우리 자신이 취약할 때 다른 집단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모두가 교육받을 기회를 누리는 안전망이 갖추어진다면 불안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요컨대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각 분야 활동가들을 뒷받침하는 용감한 지지자가 됩시다.

다음 석학은 반다나 시바

다음 회는 세계적인 환경 정책가이며 사상가이자 세계 농민운동 지도자인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 박사와 함께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드러난 탐욕의 경제를 분석하며, 하나로 연결된 지구의 온 생명을 지속시킬 해법을 모색한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③마사 누스바움 “코로나가 드러낸 편견과 혐오? 그 둘은 한 번도 숨겨진 적이 없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이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이다. GDP가 아닌 인간의 행복에 주목하는 ‘역량이론’을 창시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과 사회정의란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자유를 부여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론은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의 바탕이 되었다.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뉴욕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서양고전학으로 학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고전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와 고전학과 석좌교수, 브라운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학교 철학과, 로스쿨, 신학교에서 법학·윤리학 석좌교수로 있다. 학문적 탁월성을 인정받아 미국철학회장을 지냈으며 1988년 미국학술원 회원으로, 2008년 영국학술원 해외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저서로는 <시적 정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인간다움의 함양> <성과 사회정의> <선의 허약성> <인간다움으로부터의 은둔> <동물 권리>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정치적 감정> <혐오와 수치심>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등 다수가 있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③마사 누스바움 “코로나가 드러낸 편견과 혐오? 그 둘은 한 번도 숨겨진 적이 없다”


▶필자 안희경은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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