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도, 벌할 수도 없다…1억3000만 ‘우주 무법자’

2021.06.06 21:38 입력 2021.06.06 21:46 수정

‘속수무책’ 우주쓰레기

지구궤도에 떠 있는 크기 1㎜ 이상 우주쓰레기의 모식도. 과학계에선 약 1억3000만개로 추정한다. 우주쓰레기의 속도는 총탄보다 약 8배 빠르기 때문에 우주선이나 인공위성과 충돌하면 피해를 일으킨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지구궤도에 떠 있는 크기 1㎜ 이상 우주쓰레기의 모식도. 과학계에선 약 1억3000만개로 추정한다. 우주쓰레기의 속도는 총탄보다 약 8배 빠르기 때문에 우주선이나 인공위성과 충돌하면 피해를 일으킨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수명 다한 인공위성과 부산물들
총탄 8배 속도로 지구 궤도 돌아
크기 1㎜짜리도 심각한 ‘위협’

최근 우주정거장 로봇팔 파손 등
아찔한 충돌 사례 늘어도 ‘무방비’
청소용 위성 상용화 갈 길 멀고
사고 시시비비 가릴 기구도 없어

1957년 10월4일, 구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졌다. 냉전이 본격화됐던 당시, 스푸트니크 1호는 과학기술에서 소련보다 한 수 위라는 자부심을 뽐내던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 뒤 미국과 소련은 물론 유럽 등 다른 국가들까지 경쟁에 가세했고, 지구 궤도에 쏘아올려진 인공위성은 8500여기에 이른다. 위성 수명은 최장 15년 정도다. 수명이 다해도 바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지구 궤도를 도는 힘을 유지한다. 이 기간이 길게는 수백년이다. 바로 ‘우주쓰레기’가 생긴 배경이다. 때로는 위성끼리 부딪치며 더 작은 우주쓰레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기권 밖으로 나온 로켓의 부산물이나 우주비행사들이 작업 중 놓친 공구도 우주쓰레기가 된다. 우주쓰레기가 지구 주변을 도는 속도는 자동소총에서 발사되는 총탄의 약 8배다. 맞으면 크든 작든 피해가 생긴다.

문제는 우주쓰레기로 인한 피해를 조사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쓰레기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파악할 기술적인 방법과 사고 경위를 알아낼 국제적인 조사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쓰레기로 인한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가해자를 추적하거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최근 우주쓰레기에 맞아 동체에 구멍이 뚫린 국제우주정거장(ISS) 로봇팔의 모습. 열을 막는 차폐막도 찢어졌다.  캐나다우주국 제공

최근 우주쓰레기에 맞아 동체에 구멍이 뚫린 국제우주정거장(ISS) 로봇팔의 모습. 열을 막는 차폐막도 찢어졌다. 캐나다우주국 제공

■ 우주정거장 로봇팔에 ‘쾅’

실제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주 캐나다우주국은 고도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외부에 달린 로봇팔에 우주쓰레기로 인한 지름 5㎜짜리 구멍이 뚫렸다고 밝혔다. 구멍 주변에선 열을 차폐하는 직물 조각이 찢어진 모습도 발견됐다. 피해를 본 ISS의 로봇팔은 길이가 18m에 이르는데, 여러 개의 관절로 이뤄진 작업용 크레인이다.

로봇팔은 캐나다가 개발했으며 우주공간에서 물체를 집거나 ISS를 보수하는 데 쓰이는 중요 장비다. 이번 충돌로 로봇팔 기능에는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로봇팔이 손상을 입은 시점은 분명하지 않다. 정기점검 기간인 지난달 12일에 우연히 발견돼서다. 당연히 누가 만든 우주쓰레기로 인한 상처인지도 알 길이 없다.

■ 늘어만 가는 쓰레기 위협

문제는 치명적인 파손을 피한 이런 ‘행운’이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ISS는 지난해에만 우주쓰레기 때문에 3차례 긴급 기동했다. 유럽우주국(ESA) 소속 인공위성은 2018년에만 28차례 회피 기동을 했는데, 90%가 우주쓰레기 때문이었다. 2019년에는 한 달 새 두 번이나 충돌이 일어날 뻔했다. 9월2일 유럽우주국(ESA) 지구관측위성이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쏜 초소형 위성과, 같은 달 18일에는 미국 위성과 러시아 위성이 충돌 위기를 넘겼다. 실제 충돌도 있었다. 2009년 러시아 위성이 미국 위성과 부딪쳐 작은 우주쓰레기 2000여개가 생겼고,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는 2007년 선체에 구멍이 뚫렸다.

ESA에 따르면 지구 궤도에 떠다니는 크기 1㎜ 이상의 우주쓰레기는 1억3000만개에 이른다. 이렇게 작은 크기까지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공할 속도 때문에 먼지 수준의 작은 우주쓰레기도 얼마든지 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016년 ESA의 한 위성은 크기 1㎜짜리 우주쓰레기에 맞아 태양전지판이 40㎝ 파손됐다.

■ 사고 나도 진상조사 ‘불가능’

하지만 우주쓰레기를 없앨 뾰족한 대책은 없다. 각국이 우주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용 위성을 개발 중이지만, 폭넓은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특히 우주법학계에선 우주쓰레기로 인한 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릴 방법이 분명치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충돌사고가 생겨도 진상조사를 할 기술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어느 나라의 우주선이나 위성에서 시작된 우주쓰레기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말했다. 우주쓰레기가 워낙 속도가 빠르고 크기가 작은 데다 숫자도 많아 지구에서 통하는 일반적인 조사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도 미비하다. 우주쓰레기로 인한 법적인 문제를 중재할 재판관이 유엔에 선발돼 있지만, 사고 조사를 담당할 기구는 없다. 법원은 있지만 경찰이나 검찰은 없는 격이다. 우주쓰레기에 의한 피해를 구제할 관리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향후 지구 궤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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