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축구 해서 좋은 점? 잘 싸우게 됐다…집주인이랑

2019.10.18 16:21 입력 2019.10.18 16:28 수정
김혼비|에세이스트

축구와 집주인

[김혼비의 혼비백서](6)축구 해서 좋은 점? 잘 싸우게 됐다…집주인이랑

어떤 중요한 사실은 머리를 거치기 전에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9월 초 어느 북토크 행사에서였다. 한 독자가 “축구를 해서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는다면 뭐예요?”라고 물었다. 정말 오랜만에 받는 질문이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축구하는 이야기로 책을 냈으니 저런 질문을 자주 받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만, 바로 그 예상 때문에 사람들은 저런 질문을 오히려 잘 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내가 이미 책 한 권으로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축구를 해서 ‘가장’ 좋은 점 ‘하나’라니.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이럴 땐 조금 생각해보고 답을 해도 될 텐데, 이상하게 북토크나 강연만 가면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답이 나와야 할 것 같은, 말하자면 ‘오디오가 비는 상태’를 만들면 안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미처 더 생각해보기도 전에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답은 이랬다.

“잘 싸우게 됐어요. 가령……집주인이랑.”

대답해놓고 나도 살짝 당황했다. 나는 더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러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지구력이 강해졌다든지, 기술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몸에 새겨지는 성취의 감각이 일상의 다른 일을 하는 데에도 고양감을 불러일으킨다든지, ‘보여지는 몸’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기능적인 몸’으로서 나의 몸을 감각하게 되었다든지 등등, 할 말은 차고 넘쳤다. 그 많은 말들을 밀치고 ‘잘 싸우게 됐다’는 답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나는 올 초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함께한 팟캐스트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차고 넘치는 할 말들 가운데 일부로서 했던 말이었지 이렇게 단독으로, ‘가장’에 해당하는 장점으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이어서인지, ‘집주인’이라는 TMI에 가까운 뜬금없이 구체적인 단어 때문이었는지, “대체 집주인이 어땠길래요?” “집주인이랑 치고 박고 하신 거예요?” 같은 잇단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이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는데, 시간 관계상 정작 그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여러 집주인을 거치면서 ‘내 집’ 없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인복은 집주인복이라는 지론을 갖게 되었다. 법은 절대 세입자 편이 아니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결국 집주인 복불복 같은 애매한 것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어처구니없었지만 어쩔 도리도 없었다. 나는 집주인복이 있는 편이었지만 결코 잊지 못할 집주인도 두 명 만났다. 남다른 인품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알려주었는지! 그들은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증오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주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진동 딜도처럼 부들부들 떨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작성한 계약서가 얼마나 무력하고 무용한지를 보여줌으로써 종이에 적힌 글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신인작가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까지 뼈에 사무치게 해주었으며, 그때마다 쓴 수십통의 내용증명은 습작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나보다 20~30살 더 많은 남자들로 하나같이 말이 통하지 않았다(혹은 말이 통하지 않는 척했다). 계약서대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그 상태로 몇 달을 방치하는 건 자기들이면서, 그에 대해 따져 물으면 원래 다 이런 거니 빡빡하게 굴지 말라며 버럭 고함을 지르거나, 눈을 부라리며 성질을 내거나, 그중에서도 성질 더럽기로 악명 높아 그 동네 편의점 점주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던 집주인은 자꾸 이러면 너도 이 꼴 날 수 있다는 듯이 들고 있던 물건을 땅바닥에 패대기쳐 박살 내는 것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어디 가서 말싸움으로는 잘 지지 않는 나였지만, 정상세계의 논리가 통하지 않고 여차하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함의가 다분히 담긴 언행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단 집주인뿐이 아니었다. 큰소리를 내는 건 상대방인데도 큰소리가 나면 주변의 이목이 부끄러웠고, 거기다 대고 조분조분 논리를 들이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한심했고, 혹시 모를 폭력의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워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라운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싸움을 벌이다 감정이 격해진 상대 선수가 어쩌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면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갔다. 아니, 그러기 전에 몸싸움의 일환으로 상대 선수를 밀치거나 잡아당겨야 할 때가 있는데(엄밀히 말하면 반칙이지만 엄연히 플레이의 일부다) 차마 그러지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되레 당하고 말았다. 보통은 살면서 타인을 밀고 잡아당기고 발 걸고 때리고 밟을 일이 없지 않은가! 누구 몸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문명사회의 법칙이 나를 꽉 죄고 있어서 손도 발도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어쩌다 내 몸에 부딪혀 누군가 넘어지면 자동적으로 ‘미안해요’라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야, 너 그 미안하다는 말 좀 하지 마! 우리한테는 안 미안해? 네가 몸싸움에서 자꾸 지니까 우리가 힘들잖아!” 팀원들에게 늘 한소리 들으면서도 그놈의 ‘미안하다’를 입에서 떼어내기까지 일 년이 걸렸다. 그래도 상대방이 주는 만큼 나도 돌려주는 ‘기브 앤드 테이크’식 몸싸움은 소심하게나마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아까 나를 세게 밀었으니 나도 그 정도로는 밀어도 되겠지? 아까부터 실수인 척 아닌 척 내 정강이를 걷어차고 있는데 나도 해볼까? 그랬다가 상대방이 벌컥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면 나도 그만 억울해져서 “언니도 계속 그랬잖아요!”라고 같이 소리를 지르게 됐고, 판정 시비가 붙었을 때 심판이 큰 목소리로 거칠게 항의하는 쪽 말을 듣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간파한 후에는 내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목소리 데시벨만큼, 밀어서 누군가를 넘어뜨리기도, 밀려서 나자빠지기도 하면서 몸싸움도 야금야금 늘었다.

불시에 날아오는 가격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보통 몸싸움 과정에서 서로 지나치게 딱 붙어있는 바람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휘두르는 팔꿈치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아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애매하게 서 있다가 상대가 있는 힘껏 내뻗은 다리에 배를 차여 쓰러지기도 하고, 공을 놓고 다투다가 정강이뼈끼리 부딪혀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것들은 축구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못 견딜 것 같지만 결국 견디고 지나가는 고통들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크고 작은 경험들이 몸과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쌓였다는 걸 깨달은 건 집주인과 싸웠을 때였다. 축구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집주인이 공사 문제를 두고 약속한 걸 어겨 계약서를 들고 따지러 갔다가 대뜸 호통부터 쳐오는 그에게 맞고함을 치며 싸운 것이다. 우리가 내는 요란한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가 마치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위협적인 몸짓으로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올 때도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다. 주변에 폭력의 발생을 증언해줄 사람이 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맞아봤자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당하거나, 배를 차이거나, 정강이뼈끼리 부딪히는 아픔 같은 거겠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나도 하다 못해 물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날은 확실히 나에게 어떤 분기점이었다. 주인이 처음으로 사과해서만은 아니었다(그동안 좋게 좋게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재빠른 사과에 허탈하면서 괘씸했다). 이날 이후 나는 조금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잘 싸우게 됐다. 고함치는 게 뭐라고 그동안 이거 하나를 제대로 못했는지.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를 뚫고 나도 더 크게 소리 지를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비로소 새겨진 감각이었다. 공포를 체감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라운드나 밖이나 마찬가지였다. 피하지 못했을 때 당하는 수밖에 없다면, 여차하면 나도 몸으로 방어할 거야, 때릴 수 있다면 때릴 거야, 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공포가 조금 줄었다. 진짜로 그럴 수 있든 없든. 그런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을 때는, 백지처럼 새하얘진 머리로 그대로 얼어붙은 채 ‘분명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당할 거야’라는 무력감이 밀려와 더 얼어붙곤 했다.

당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이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른다는 것도 공포의 한 요인이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고통(‘이 세상 고통’이 아닐 것 같은 고통)을 떠올리며 더욱 얼어붙곤 했다. 그런데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맞는’ 경험치가 쌓이다보니, 당장 닥칠지도 모를 고통의 크기를 내가 이미 겪어본 고통들과 비교해 가늠해볼 수 있었고, 그렇게 고통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니 그것만으로도 두려움이 한결 줄었다. 적어도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올가을 한 스터디 모임에서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를 읽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싸우는 여성’에 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만 어려서부터 육체적으로 싸우도록 훈련받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싸움에 대처하는 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갑자기 들이닥친 신체적 폭력 앞에서 공포에 압도된 나머지, 해볼 수 있는 어떠한 시도조차(심지어 주머니 속에 버젓이 무기가 들어있는데도 꺼내볼 생각조차) 못한 채 고스란히 당하는 피해자들이 이 책 속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여성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것이 공포와 ‘때리는 것’을 금기시하는 내면의 억압이라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영화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알았지?”

수전 브라운밀러와 영지 선생님의 말은, 마음대로 누구를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선을 지키면서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금기에 가로막혀 손써볼 생각도 못하고 당연한 듯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뜻이다. 은희는 왜 맞서 싸울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왜 맞서 싸울 생각을 못했을까? 큰소리 내면 안돼, 때리면 안돼, 폭력은 나빠, 여자는 지게 되어 있어, 나대지 마, 같은 것들만 잔뜩 배우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만 도가 트느라, 고함 치고 때리고 맞는 원초적 싸움에서 나를 주체로 놓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다. 많은 경험을 통해 그것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손발을 결박하는 공포와 금기의 사슬을 조금씩 끊어낼 수 있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도망치든, 도와달라고 소리치든, 주머니 속 무기를 침착하게 꺼내든, 맞서 싸우든 방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그라운드에서나 밖에서나 웬만해서는 싸움을 피하고 몸을 사리는 소심한 플레이어다. 상대방이 얼마나 ‘막 나가는’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괜히 일을 키웠다가 위험하거나 귀찮은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맞대응할지 피할지 판단하는 것도 싸움의 시간들이 쌓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무조건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맞대응’이라는 선택지를 붙들고 있을 때 보이는 것들을. 그러니까, 나는 그날 북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예전보다 잘 싸우게 됐는지. 잘 싸울 수 있다는 감각이 무엇을 조금이나마 바꿨는지. (시간이 더 남는다면 그 집주인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까지!)

그리고 궁금하다. 축구도 이럴진대 합기도나 복싱 같은 본격 격투 스포츠는 싸움에 대해 무엇을 더 알려줄까? ‘지옥의 운동’이라고 악명 높은 필라테스 같은 운동으로 코어 근육을 다지면 어떤 방식으로 단단해질까? 다양한 감각들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최대한 길게 뻗어보는 것처럼, 내 마음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최대한 길게 뻗어보고 싶다. 나는 더 잘 싸우고 싶다.

▶필자 김혼비

[김혼비의 혼비백서](6)축구 해서 좋은 점? 잘 싸우게 됐다…집주인이랑


퇴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틈틈이 이런저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이다. 축구와 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2018년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2019년에 <아무튼 술>을 썼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