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남긴 후폭풍이 대만해협을 감싸고 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떠나자마자 대만을 포위하고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시작했으며 경제 보복도 이어갈 태세다. 펠로시 의장은 1박2일간 대만을 방문하고 떠났지만 그 후폭풍은 모두 대만이 감내해야 할 처지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일을 민족주의 정서와 통일 여론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을 전망이다. 미국 내에서도 득보다 실이 많은 행보라는 비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3일(현지시간) 대만 방문을 마치고 낸 성명에서 “우리 의회 대표단의 방문은 미국이 대만과 함께하겠다는 강력한 언명으로 봐야 한다”며 “중국이 대만의 국제회의 참여를 막을 수는 있지만 세계 지도자나 누군가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안보 측면에서 우리는 침공에 맞서 대만이 자유를 수호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회의 약속을 재확인했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우리의 반도체 지원법이 어떻게 양국 경제를 강화할지 설명하고 ‘21세기 무역 프레임워크’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고 방문 성과를 설명했다.

펠로시 의장은 앞서 대만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는 대만에 대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다”며 “대만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데 이번 방문은 미국과 대만 간 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차이 총통도 펠로시 의장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 훈장을 수여하며 “펠로시 의장은 대만의 가장 굳건한 친구이며, 대만에 대한 미 의회의 확고한 지지를 보여줬다”고 화답했다.

미국과 대만 입장에서 펠로시 의장의 이번 방문은 중국의 위협에 맞선 양측의 연대 의지를 보여준 의미가 있다. 하지만 후과도 만만치 않다. 특히 대만은 고조되는 군사적 위협과 경제 단절 등 폭풍우처럼 들이닥칠 중국의 보복을 감당해야 한다. 대만인들 사이에 펠로시 의장 방문을 놓고 환호와 불안이 공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반도체법 등이 “더 나은 경제 교류의 문을 열 것”이라며 미국과의 경제 교류 확대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만이 전체 수출의 45% 정도를 중국(홍콩 포함)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당장 피해가 불가피하다. 자오춘산(趙春山) 대만 담강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는 “대만 방문의 최대 승자인 펠로시 의장은 대만을 떠나면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남겼다”며 “중국은 경제 제재와 군사훈련 등 일련의 수단을 동원해 대만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홍콩 명보에 말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전문가 윤선은 CNN방송에서 중국이 예고한 군사 훈련은 “대만을 쥐어짜겠다”는 뜻이라며 “중국 대응의 핵심은 대만 응징이다. 왜냐하면 미국을 응징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군사적 위협까지 가했음에도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강행하면서 체면을 구긴 면이 있다. 이는 올해 3연임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에 상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최근 ‘제로 코로나’ 정책의 장기화와 경기 침체 등으로 악화한 민심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민족주의 정서와 통일 여론을 고조시키면서 장기집권 명분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인민의 격론과 분노에 휩싸였다”며 “이런 엄청난 관심과 동시적 감정은 국가 통일에 대한 14억 인민의 의지를 보여주며 통일 과정의 속도를 앞당길 것”이라고 여론을 부추겼다.

미국 내에서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펠로시 의장 자신은 중국에 맞선 정치 지도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조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안보 차원의 실익은 없고 중국과의 불필요한 긴장 고조에 따른 부담만 커졌다는 것이다. CNN은 “펠로시 의장 방문이 후과를 감내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쌓여가고 있다”면서 “만약 그의 방문이 이미 나빠진 미·중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악화시킨다면 이는 거대한 착오”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이 개인의 업적을 쌓기 위해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만 방문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LA타임스는 “펠로시 의장에게 대만 방문은 중국 비판자로서의 긴 경력에서 최고의 성취로 기록될 유산을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