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8 좌절’ 재연되나…버마사태 어디로

2007.09.30 18:26

승려들의 선홍빛 물결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넘쳐나던 버마는 30일 간헐적인 반정부시위에도 불구, ‘강요된 침묵’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시위를 총탄과 곤봉으로 유혈 진압했던 군부정권의 지속적인 ‘숨통 조이기’와 공포 정치로 사태는 표면적으론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군정의 주장처럼 시위가 사그러드는 것인지, 아니면 주말 동안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숨고르기인지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군부의 움직임과 버마 내부의 기류 등을 감안할 때 결국 실패로 끝난 1988년 민주화운동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시위 잦아든 버마=한때 10만명에 달했던 최대도시 양곤 등의 반정부 시위대 규모는 30일 크게 줄어들었다. 군부의 검거 선풍과 군부대 추가 투입, 무자비한 진압에 기세가 크게 위축됐다. 대신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의 버마 방문에 맞춰 북부 카친주에선 군정을 지지하는 대규모 관제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버마 현지상황을 전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잦아들면서 양곤 거리가 군정에 대한 ‘공포’라는 일상을 되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흘간 이어진 유혈사태와 인터넷·이동통신의 두절 등으로 시민들 사이에선 3000여명이 희생된 ‘8888 민주화항쟁’ 때처럼 이번에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좌절감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군부의 폭정이 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 40년간 이어지면서 공포감과 무력감이 몸에 배인 것 같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여기에다 민주화 항쟁을 주도하던 일명 ‘88 세대’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몸을 숨기면서 구심점을 잃은데다 유일한 버팀목이던 승려들 역시 군정에 의한 사원 봉쇄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데도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곤시내 호텔에서 일하는 한 남성은 “시민들이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쉽게 시위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예전처럼 결국은 무력으로 탄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 불붙은 정치적, 경제적 억압 체제에 대한 깊은 분노는 쉽게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시민들의 저항이 이대로 흐지부지될 거라는 전망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마크 캐닝 버마 주재 영국대사는 “거리 시위가 강제로 억눌려 있다고 하더라도 불씨는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언제든 시위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사망자 규모 논란=국제사회가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군의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숨진 사망자 숫자와 고의 사격 여부 등을 둘러싸고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군정이 파장을 우려,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상당하다.

군정은 지난 26일 무력진압을 시작한 이래 사망한 시위참가자가 9명이라고 관영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외신에따르면 미국 워싱턴 소재 반(反) 군사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 운동’은 유혈 진압으로 최대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와 밥 데이비스 버마 주재 호주대사 등도 앞서 “유혈진압으로 사망한 숫자는 군정의 발표보다 몇 배는 더 많다”며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도중 숨진 일본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에 대한 부검에서도 “시위대에 쏜 유탄에 맞았다”는 군정의 발표와는 달리 고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파장이 일 전망이다. 더타임스는 “나가이 기자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영상이 일본 TV를 통해 방영됐다”며 “군중 속에 있던 기자가 군인에게 떼밀려 쓰러진 뒤 정면에서 총을 맞는 장면이 담겨있다”고 전했다.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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