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쉐다곤 파고다, 그리고 한국

2007.09.30 17:42

〈양권모 국제부장〉

아마도, 서구인에게 현대 버마의 음영을 영화로 알린 것은 존 부어만 감독의 ‘비욘드 랭군(Beyond Rangoon)이다. ‘비욘드 랭군’에 담긴 버마는 찬연하고, 처연하다.

강도의 손에 가족을 잃은 미국인 여의사가 관광차 버마를 찾은 뒤 민주화 시위 현장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가의 탈출을 도우면서 동참해 가는 과정의 배경을 이루는 버마의 풍광은 실로 아름답다. ‘지구촌 최대의 불교 유적지’임을 실감시키는 파고다(佛塔 사원)들, 반군의 근거지인 동부 정글 지역은 버마가 왜 ‘지구촌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는지를 확인시킨다.

영화의 배경은 찬연하지만, 그것이 담아내는 버마의 실상은 참혹하다. 시민과 학생, 승려들이 ‘민주’를 외치며 폭압적 군사정권에 맞서는 양곤의 거리와 골목들은 버마의 현실을 일깨운다. 민주화에 대한 버마 민중의 열망은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빛 후광과 맞물리면서 처연히 빛난다.

‘쉐다곤 파고다’는 아프간 탈레반 인질 사태가 고비에 처해 있던 지난 8월1일 외신에 돌연 등장했다. AP통신 등은 버마의 민주단체 회원들이 ‘쉐다곤 파고다’에서 탈레반에 억류 중인 한국인 인질의 조기 석방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개최했다고 전했다. 1988년 ‘8888민주항쟁’을 이끈 민주단체 회원들은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양심수 석방을 위한 주례 기도회를 쉐다곤 파고다에서 가져왔다. 고문과 살해, 폭력과 강간이 일상처럼 자행되는, ‘지상 최대의 형무소’로 일컬어지는 버마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 기도회를 갖는 이들이 한국인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인질 석방’ 기도하던 버마인들-

외신들이 이를 타전한 것도 바로 이 ‘의외성’에 있었을 터이다. 생명 존중과 인권이라는 가치는 종교와 국경을 넘어 공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했기에 ‘뉴스’가 됐을 것이다.

그 ‘쉐다곤 파고다’가 다시 ‘민주’를 외치는 버마 민중의 외침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군정은 실탄을 발사하고, 곤봉을 휘두르며 민주화 시위를 군홧발로 짓밟고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무장 군인들에 의해 유린당했다.

군정은 버마 외부로 통하는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을 끊었다. 버마 민중은 고립 속에서 다시 공포의 날들을 맞고 있다.

그들은 바라고 있다. 폭압적인 군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평화적 민주화 시위에 대한 연대를 갈구하고 있다. 버마 민중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군정의 야만을 비판하고, 제재를 위해 나서고 있다. 국제사회의 양심적 인사들과 시민단체들도 연대의 어깨를 겯고 있다.

다만 예외인 몇몇 국가가 있다. 한국도 그 목록에 들어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눈치만 봤다. 국제사회가 군정의 유혈 진압을 규탄할 때 침묵하던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외교부 성명은 “미얀마 정부와 국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화와 국가발전을 이룩해 나가기를 강력히 기대한다”였다. 평화적 방식을 통한, 정당한 민주화 요구를 피로 짓밟고 있는 건 분명 군부세력임에도 성명은 정부와 국민을 함께 거론했다.

사실 버마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면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엔에서 인권결의안이 채택될 때는 기권했다. 한국에 망명한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의 난민 지위도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2006년 ASEM회의에서 버마 인권 문제에 관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폭압적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투쟁을 벌이던 한국 민중에게 국제적 연대와 지원은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얼마나 소중했던가.

-‘군정 폭압’ 더이상 침묵 말라-

식민 지배와 내전, 그리고 군부독재와 민주화투쟁. 국내에 망명 중인 버마의 운동가들은 “한국은 독재에 시름하는 버마 민중에게 민주주의의 상징 같은 나라”라고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그 기대를 배신했다. 군정을 지탱하는, 천연가스전 개발 같은 이해에 붙잡혀 민주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시아인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탈레반 인질 사태 때, ‘쉐다곤 파고다’에서 한국인 인질의 석방을 위해 기도한 버마 민주화운동가들 중 일부는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군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에게 한국 정부의 침묵과 사실상의 방조는 어떻게 비쳐질까. 뻔히 보이는 그 답을 구하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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